2017년 6월 3일 토요일

런던서 동시다발 테러...최소 7명 사망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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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시내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는 등 테러로 추정되는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최소 7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런던브리지 인근에서 흰색 차량 한 대가 인도로 돌진해 다수의 행인을 들이 받았다.
목격자들은 최소 2명이 사망하고 여러명이 큰 부상을 당했으며, 흉기를 든 한 남성이 도주하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 경찰은 런던브리지를 비롯한 인근 도로를 봉쇄했다.
london bridge
이어 인근 시장인 버로마켓(Borough Market)에서도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의 목격자들은 약 25㎝로 보이는 긴 흉기를 가진 남성을 목격했으며, 세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밝혔다.
런던브리지에서 멀지 않은 복스홀(Vauxhall)에서도 세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정확한 피해자 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현지 매체 더선을 인용해 런던브리지 차량 돌진 사건에서 최소 7명이 사망했으며, 차량 안에는 5명의 용의자가 탑승했다고 보도했다.
보로마켓 사건을 피해자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찰이 두 명의 용의자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london bridge
경찰은 성명을 통해 "이날 오후 10시8분쯤 차량 한 대가 런던브리지에서 보행자들과 충돌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버로마켓에서도 흉기 사건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런던 브리지와 버로마켓에서 발생한 사건을 테러로 규정했다. 다만 복스홀에서 일어난 사건은 테러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경찰과 보안당국의 정보보고에 따라, 런던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이 잠재적 테러 행위로 취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4일 긴급 장관회의를 열 예정이다.
런던 시장은 "계획적이고 비겁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london bridge
오는 8일 조기총선을 앞두고 있는 영국에서는 국가 안보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는 북부 맨체스터 실내 경기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22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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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을 흔드는 자들은 누구인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 양이원영 처장
발행 2017-06-03 20:59:33
수정 2017-06-03 22: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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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당선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탈핵공약 이행을 위한 최소한의 단기적인 조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가 시급하다. 안전성을 확인하지 못한 월성 1호기는 수명연장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 항소로 계속 운영 중이고 신고리 5,6호기는 아까운 건설 비용이 계속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원전이 폐쇄되는 고리 1호기 폐쇄일, 6월 18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역사적인 날에, 탈핵공약의 첫 번째 조치가 발표되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원자력계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이익 감소를 우려하는 원자력계의 준동,
문재인 1등 지지 공약을 흔들어 대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중 ‘문재인 1번가’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았던 공약이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정책’, ‘탈원전, 친환경의 대체 에너지 정책’이다. 특히, 이 공약은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월성1호기 폐쇄와 같이 구체적인 계획이 적시되어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실현을 위한 100대 국정과제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5월 말부터 원자력계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 공약에 대해 국정기획위원회와 청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자력공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가들 230여명과 한국수력원자력(주) 노조가 각각 성명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국정기획위원회 건물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같은 시기에 한 경제지는 문재인대통령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이 파기되었다는 보도로 논란을 부추겼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오보라고 하면서 “에너지 관련 공약에 대해 차질없이 이행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이어서 언론은 국정기획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잠정 중단을 명령했다고 일제히 보도했고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은 이 역시 오보라면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이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중단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공약은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중소기업청 부처업무보고에서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이개호 분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중소기업청 부처업무보고에서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이개호 분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김철수 기자
국정기획위원회가 공약 이행을 위한 산업부 업무 보고를 받는 시기에 원자력계와 경제지가 한바탕 불러일으킨 이번 논란은 이익이 줄어들까 두려워하는 원자력이익 공유체들의 반란이다. 원자력산업과 이해관계자들인 것이다.
원전이 줄어들면 원자력공학자들 연구비용도 줄어들고 학생도 줄어들 것이다. 원전이 줄어들면 한국수력원자력(주) 직원도 줄어들고 승진은 적체될 것이다. 큰 광고주인 원전 건설사와 한수원이 언론사에 뿌리는 돈도 줄어들 것이다.
원전 이익을 나누어 가지던 이들의 몰염치
원자력공학자들은 한국수력원자력(주)가 원전을 가동해서 얻는 이익을 공유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원전가동으로 생산된 전기 1kWh 당 얼마의 돈을 책정해 연간 수천억원의 원자력연구기금을 조성해서 원자력공학자들이 속한 대학과 원자력학회, 원자력연구원에 연구 명목으로 돈을 배분한다. 10조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남기는 한전으로부터 두둑한 정산금을 받은 한국수력원자력(주)는 1~2천억원의 원자력연구개발 자금을 직접 운용하면서 원자력 관련 대학들에게 연구 명목으로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돈을 배분한다. 원자력관련 학과만이 아니라 인문학관련 학과에도 지원하고 있다.
원자력 전문가 230명의 성명을 이끈 주최단체들 중에서 주관을 맡은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는 2016년 11월 4일에 출범했는데 한수원으로부터 3년간 약 70억원 가량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7~8일에는 ‘원자력 지속성 강화 및 탈핵 대응 워크샵’ 같은 것을 하면서 원자력산업의 홍보를 자처하고 있다. 센터를 이끌고 있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 워크샵에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의 역할을 ‘특히 ▲원자력 정책 관련 워크숍, 세미나 등 대국민 활동 확대 ▲SNS 및 각종 매체를 통한 원자력 정보 확산 ▲사실에 입각하고 유용한 원자력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해 오해에 의한 불안 해소 기여 등 원자력 바로 알리기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연구’가 아니라 한수원 ‘홍보’본부를 자처한 것이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에는 원자력학회장 황주호 교수,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 관료 출신의 정범진 교수가 있는데 경희대 미래사회에너지정책연구원 역시 한수원으로부터 수십억원의 지원을 받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원전관련 기술 연구를 한다고 책정된 국민 세금은 연간 수천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원전안전 수준은 최저 수준이다. 원전수출의 주력모델이라는 APR1400은 다른 나라들의 같은 제3세대 원전 노형과 비교해서 중대사고 대처설비가 부족해 유럽에 입찰할 때는 설계를 변경하기도 했다. 원전 설계가 국내용과 수출용이 다른 것이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은 노후원전을 수시로 또는 십년마다 점검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기술기준을 비교해서 원전설비를 업그레이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하면서 업그레이드는 물론 과거 기술기준과 비교하는 것도 안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40년 전 기술기준을 그대로 적용해서 가동하고 있다. 25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고 40년의 원전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서 독자적인 기술기준 하나 없어서 미국과 캐나다 기술기준 준용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 기준들이다. 그것도 바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아서 십년이상 뒤쳐진 것들도 있다.
도대체 연간 수천억원씩 책정된 연구개발비용은 어디에 쓰이는 것인가. 더구나 연구자와 납품업체, 용역업체, 한수원과 규제기관 그리고 그들 퇴직자들이 뒤엉켜 약자인 비정규직을 억압하고 원전안전을 방기하면서 돈잔치하는 비리의 현장은 차마 목도하기 어려울 정도다. 원자력연구의 중추 역할하는 국책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원에서 자행된 위법행위는 또 어떠한가. 핵폐기물을 불법으로 매립하고 소각하고 방출하고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방사능 방출 경보가 울리는 경보기를 끄고 수치를 조작한 이들이 다름 아닌 이런 원자력공학자들이었다. 원자력학회를 비롯한 이들 단체들은 이에 대한 어떤 반성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한수원 노조가 탈원전 정책을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원전 현장에서 정작 한수원 정규직 노동자들은 방사능 피폭을 가장 적게 받는 이들이다. 한수원 정규직 대신 방사능 피폭 더 받으면서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왔지만 정규직 급여의 1/3도 못 받아 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지위확인 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해고될 때 한수원 노조는 무엇을 했을까.
한수원으로부터 협찬금을 받고 광고성 기사, 광고성 영상을 내보내온 신문과 방송은 또 어떠한가. 사실상 기사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2012~2013년까지 원자력문화재단의 신문협찬기사 실태자료를 보면 신문 기고의 경우 건당 30~45만원 선에서 거래되었다. 돈을 받고 지면을 할애해주는 식이다. 조선일보가 2012년 4월 20일자에 ‘원전강국 코리아’기획기사를 내보냈는데 조선일보에 원자력문화재단은 5,500만원을 협찬했다. 조선일보의 천병태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인터뷰는 1,100만원이었다. 그런데 협찬했다는 표시는 없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2012~2013년 홍보차원에서 14개 신문사에 3억 6천만원을 썼다.
2010년 4월 KBS 교양 프로그램 1대100에서는 한수원 직원 92명이 출연했다. 원전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식의 문제가 출제되었다. 한수원은 이 프로그램에 4억원을 협찬했다. SBS 생활경제, EBS 다큐프라임, YTN, MBN 원자력 특집 등에도 5억여원이 쓰였다.(출처:미디어오늘, 신문과 방송의 ‘원전사랑’, 돈 때문이었다).
원전을 둘러싼 이익 공유체들이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까 염려하면서 행동에 나선 것은 너무나 노골적이고 염치없는 것이다. 이를 비중있게 다루는 언론사 역시 균형감각을 잃었다.
월성 1호기 폐쇄와 신고리 5,6호기 중단, 시민들이 다시 나서야
월성 1호기는 내진설계 보강도 불가능한 중수로 원전이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규모 6.5이상 지진이 나면 월성원전의 안전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냐고 했을 때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 압력관의 5%가 파손되는 확률이라는 답을 했다. 원전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답을 하면서 안전성이 확보되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월성 1호기를 수명연장 할 때 최신기술기준과 비교하는 안전성 평가도 하지 않았고 일부는 40년 전 기술기준을 그냥 유지했다. 현재 안전성 평가로는 지진 나고 화재가 일어났을 때 내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법부가 위법한 수명연장 허가라고 판결내린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월성 1호기는 계속 운영 중이다.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 인근에서 역대 최대 규모(5.8)의 지진 발생으로 경주 월성 원전 1~4호기가 안전점검을 위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 1~4호기
지난해 9월 12일 경북 경주 인근에서 역대 최대 규모(5.8)의 지진 발생으로 경주 월성 원전 1~4호기가 안전점검을 위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 1~4호기ⓒ김철수 기자
신고리 5,6호기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 곳에 9번째 10번째 원전 건설 허가를 받은 원전으로 작년 6월말에 공사에 들어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미국은 상당수 부지에 원전이 1기 밖에 없지만 한 부지 2기, 3기 원전이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에 대해서 다수호기 동시사고를 우려해 관련 연구를 진행 해왔다. 우리는 9번째 10번째 원전 건설허가를 내면서 이런 평가는 물론 연구조차 하지 않았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후에 한수원이 그제야 자체적으로 다수호기 확률론적 안전성평가 방법론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인구 밀집지역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법적 조항도 자의적으로 평가해서 4킬로미터로 축소시켰다.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인구 400여만명이 살고 있는데도 인구 밀집지역 거리 제한 규정에 문제없다는 것이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원전 밀집, 인구 밀집 지역에 원전사고 시 확산 시뮬레이션도 없고 대피 시뮬레이션도 없어서 대피 시나리오도 없다. 사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대피하는 시나리오가 가능이나 한지 모르겠다.
탈핵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월성 1호기 폐쇄 요구는 공익을 위한 주장이다. 탈핵 운동을 한다고, 탈핵 주장을 한다고 어디서 돈이 나오는게 아니다. 시민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자신의 비용을 내어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일념에서의 행동이다.
원전을 아예 없애는 것에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원자력공학자들의 연구비, 한수원 직원들의 일자리,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 일자리, 원전 건설로 피해 본 주민들의 구제 방안도 논의 의제로 삼아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월성 1호기를 폐쇄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 이와 상관없이 당장 취해져야 할 조치이다.
돈을 앞세운 원자력계의 준동에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하다. 고리원전 1호기 폐쇄일까지 앞으로 2주, 시민들의 행동이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이다.
1. 6월 8일 탈핵공약 실현 촉구 선언 참여
온라인:https://goo.gl/forms/m9iiuGn2Jo6bPnKp2
선언 기자회견:6월 8일 일시와 장소 추후 공지
2.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 릴레이 1인시위
6월 5일 점심 12시부터 시작합니다. 몇 미터 떨어져서 같이 해도 되니까 신청해주십시오.
필자는 6월 5일부터 되도록 매일 참여할 생각입니다.
3. 페이스북 릴레이 인증샷 캠페인 참여
방법:http://kfem.or.kr/?p=178414
페이스북을 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탈핵메세지로 넘실대게 해주세요.
하고 싶은 말 써서 인증샷 찍고 페북 친구 3명 이상에게 요청하는 겁니다.

22살 대학생의 죽음, 전두환의 ‘뒤집기’는 먹히지 않았다


[프레임전쟁] 8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사건은폐→정권불신→정권퇴진으로 이어진 프레임

이하늬 기자 hanee@mediatoday.co.kr  2017년 06월 04일 일요일
1987년 1월15일 오전 9시50분, 신성호 중앙일보 기자가 대검찰청 이홍규 공안4과장 사무실로 들어섰다. 서서 서류를 보고 있던 이 과장은 신 기자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경찰 큰일났어” 신 기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이어진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아침에 경찰 출입하는 후배 기자에게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조사를 어떻게 했기에 사람이 죽는거야. 구나 남영동에서…”

남영동은 대공분실이 있던 곳이다. 곧 바로 신 기자는 추가 취재를 통해 사망한 대학생 이름이 박종O이고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이후 서울대 출입기자가 박종철 이름과 주소를, 부산 주재기자는 박종철의 부모님이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서울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사 1보가 완성됐다.

기사를 확인한 사회부장이 신 기자에게 물었다. “자신있어? 이런 사건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간너와 나는 물론이고 국장, 사장까지 줄줄이 남산에 불려간다.” 남산은 안전기획부가 있던 곳으로 정권에 불리한 기사를 쓴 언론인들이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석간이었던 중앙일보의 윤전기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신 기자는 “자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금창태 편집국장 대리가 돌아가던 윤전기를 멈춰 세웠다. 해당 기사는 사회면 2단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작은 크기였다. 박종철 사망기사 1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 1987년 1월15일 중앙일보 기사
▲ 1987년 1월15일 중앙일보 기사
“염불 책하고 철이 사진 가지고 전부 올라오그라…”

같은 시각, 서울에 간 아버지로부터 부산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염불 책하고 철이 사진 가지고 전부 올라오그라”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박종철의 누나 박은숙은 가슴이 내려앉았다. 전날 경찰이 찾아오긴 했지만 가족들은 박종철이 경찰에 잡혀 간 정도로만 생각했다. 

14일 오전 6시40분, 박종철의 하숙집에 경찰 6명이 들이닥쳤다. 4명이 박종철을 붙잡아 차에 태웠고 나머지 2명은 하숙집에 남아있다가 오전 7시께 하숙집 주인에게 목격됐다. 박종철을 태운 차는 오전 7시55분께 남영동 대공분실 정문을 통과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대공분실 5층은 철저하게 조사 혹은 고문을 위해 설계됐다. 먼저 창문의 크기가 다른 층과는 달리 좁고 길다. 자살 가능성을 막고 밖을 내다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책상, 침대, 의자 등 4.09평 공간의 가구들은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모두 바닥에 고정돼 있다. 벽에는 ‘흡음시설’이 설치돼있다. 

박종철이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대지 않자 고문이 시작됐다. 박종철은 물고문 중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사망했다. 박종철은 끝까지 박종운의 소재를 대지 않았다. 사실 박종철은 박종운의 소재를 몰랐다. 박종운은 신문 기사를 통해 박종철의 사망 소식을 알게됐다. 훗날 박종운은 한나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 서울대 졸업생과 재학생 등 6백여명의 학생이 반정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고 박종철 군의 대형영정을 앞세우고 박종철 명예 졸업장 수여를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 서울대 졸업생과 재학생 등 6백여명의 학생이 반정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고 박종철 군의 대형영정을 앞세우고 박종철 명예 졸업장 수여를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신경민이는 끝도 없이 단신을 하냐”

중앙일보 1보가 나간 날 오후,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 언론이 취재에 들어갔고 외신들은 중앙일보를 인용보도했다. 결국 이날 저녁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수사관이 주먹으로 책상을 탁 치며 혐의 사실을 추궁하자 갑자기 억하며 책상 위로 쓰러져 긴급히 병원을 옮기던 중 차 안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이 전달됐다. 신문의 경우 사회면 3단, 방송은 영상없는 단신으로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MBC는 15일 저녁 9시 뉴스데스크 말미 ‘간추린 뉴스’ 맨 마지막에 이 소식을 전했고 1월16일 조간인 조선일보, 한국일보는 3단 크기로 보도했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보도지침을 지키면서도 사실을 알리려는 나름의 노력을 보였다. MBC 간추린 뉴스를 진행하던 신경민 앵커는 40초 분량으로 해당 소식을 전했다. 보통 단신은 10~20초 분량이었다. 보도국 내부에서는 “신경민이는 끝도 없이 단신을 하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MBC 보도에는 고문을 추정하는 어떤 단어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전파는 신문보다 빨랐다. 이 단신은 박종철 이라는 이름을 전국으로 알린 최초의 보도가 됐다. 조선일보는 3단 크기를 지키면서도 박종철의 사진을 실어 ‘4단 같은 3단 기사’를 내보냈다. KBS는 해당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 1987년 1월16일 동아일보 기사
▲ 1987년 1월16일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 쇼크사에서 고문사로 프레임을 바꾸다

이런 상황에서 보도지침을 과감하게 깬 언론사가 있었다. 동아일보다. 15일 특종을 뺏긴 동아일보는 지역판에 박종철 사망기사를 키웠다. 지역판에는 그나마 당국의 감시가 느슨했다. 다음날인 1월16일자 서울시내 석간 가판부터는 사회면 중간 톱으로 크게 해당 사실을 보도했다. 이 중에서도 11면 기사가 주목할 만하다.

11면 기사에는 시신을 처음으로 본 오연상 중앙대 용산병원 수련의와 부검 과정을 지켜본 삼촌 박월길의 인터뷰가 담겼다. 오연상은 “도착 즉시 박 군의 눈동자를 살펴보고 심전도 및 호흡상태를 살펴본 결과 이미 숨진상태였다”고 말했다. 병원으로 가다가 숨졌다는 경찰 발표를 뒤집는 것이었다. 

삼촌 박월길은 고문사를 의심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두피를 벗기자 머리 한쪽에 피멍자국이 드러나 보였으며 이마 뒤통수 목 가슴 하복부사타구니 등 여러군데에 피멍자국이 있었다.”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박종철의 죽음은 쇼크사에서 고문사로 프레임이 전환된다. 

고문사 의혹이 제기되자 상황은 급속하게 전개됐다. 1월17일 오후5시 무렵 정구영 서울지검장은 물고문 혐의를 인정했고 이는 이날 석간신문 지방판과 다음날 주요 조간신문 1면 톱기사로 보도됐다. 사회면 2단 기사로 출발한 사건이 사흘 만에 1면 톱기사로 커진 것이다. 보도지침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결국 1월19일 치안본부는 박종철의 사인을 “경찰관의 가혹행위에 의한 질식사”로 발표했다. 조사경찰 2명이 구속됐다. 일간지는 한결 같이 내무장관의 사과문을 전제하고 자숙하는 경찰 내부 분위기를 자세히 보도했다. 이후 전두환 대통령의 유감표명이 부각되는 등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 1987년 2월9일 동아일보 호외
▲ 1987년 2월9일 동아일보 호외

전두환, 김만철로 박종철을 덮다

추가적인 팩트취재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두환 정권은 2월7일로 예정된 추도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프레임을 전환시키려 했다. 일간지 머리기사를 보면 “추도집회 불법규정” ““오늘 추도회…전국 초긴장” 등이다. 박종철 사망 자체보다는 두 집단 간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대로였다.

결국 추도회는 열리지 못했다. 추도회가 무산되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급속하게 묻히기 시작했다. 그 정점이 ‘김만철 일가 탈북사건’이다. 1987년 2월11일 월요일, 신문들은 북한 의사출신의 김만철 일가 11명이 전날 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고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했다. 

“북한탈출 김씨 일가 서울 첫밤” (1987년 2월9일 매일경제 1면 기사)
“이렇게 좋은 옷은 처음…잔치같다” (1987년 2월10일 경향신문 6면 기사)
“데이트 남녀보고 ‘저래도 되느냐’”(1987년 2월10일 동아일보 10면 기사)

전두환 정권에게는 호재가 따로 없었다. 김만철 일가 관련 소식이 연일 보도되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신문 지면에서 사라졌다. 3월3일 계획된 ‘고문 추방 및 민주화를 위한 국민평화 대행진’ 소식도 신문 한 귀퉁이에 작게 보도될 뿐이었다. 사건으로 사건이 덮힌 것이다. 이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김만철 일가가 탈북한 때는 1월22일이었다. 김만철 일가는 배를 타고 탈북해 일본으로 갔다. 이는 이미 이미 언론에 여러차례 보도된 바 있었다. 그런데도 2월9일 대대적으로 보도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박종철 사건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전두환이 일본에 김만철 일가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서중석은 “신문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전으로 되돌아갔다”면서 “김만철 일가 탈북 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반전된 면도 있었지만 보수적인 제도 언론답게 언론이 익숙한 제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렇게 박종철은 세상에서 잊히는가 했다. 

치안본부 총경, 내부고발자로 나서다 

하지만 3개월 뒤 반전이 시작된다. 1987년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 사건의 범인이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구속된 2명 외에 3명의 경찰이 더 있다는 내용이었다. 초기에 사제단의 성명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이를 사회면 2단으로, 중앙일보는 사회면 1단으로 각각 보도했다. 

치안본부는 사제단의 성명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위 사실이며 상식 밖의 주장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반박 하루 만에 검찰은 박종철을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 3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사제단의 성명 내용이 진실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튿날 동아일보에서 결정적인 보도가 나왔다. 치안본부 배아무개 총경이 동아일보 기자에게 “차나 한잔 하러 오겠나”라고 물은 게 시작이었다. 당시 이를 취재한 동아일보 김차웅 기자에 따르면 배 총경은 도청을 의심한 듯 목소리를 나직하게 바꿔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김차웅 기자가 배 총경 사무실에 들어가자 그는 문을 잠근 채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얼마 안 가 또 터질 것이 분명하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밝혔으면 한 번 매를 맞고 끝날 일인데 감추고 감추다가 계속 터지고 있다. 기왕 알려질 것이기 때문에 경찰 조직을 살리기 위해 말해주겠다.” 내부 고발이었다. 

▲ 사진=6월항쟁기념관
▲ 사진=6월항쟁기념관

사건은폐→정권불신→정권퇴진, 프레임의 확대

5월22일 동아일보는 “관련상사 모임에서 범인축소 조작모의”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월18일 비밀회의에서 경찰당국이 체포된 고문 경찰관의 가족을 돌본다는 각본을 세웠고 구속된 조아무개 경위가 폭로할 기미를 보이자 “이를 무마했다”고 폭로했다. 이때부터 사건은 “범인이 3명 더 있다”가 아닌 “윗선에서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프레임으로 바뀐다. 

5월21일부터 5월24일까지 조선, 동아, 중앙, 한국, 서울 신문의 기사량은 209개에 이른다. 기사 제목을 보면 “조작, 몰랐나…속았나” “어떻게 믿겠는가” “얼마나 더 속여야 하나” “끝없는 거짓말” 등으로 정권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정권 불신’으로 프레임이 확대된 것이다. 

이후 언론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지면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5월26일부터 28일까지 5개 일간지의 관련 보도량은 170건인데 철저한 진상규명과 최대규모 개각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퇴진요구” “못 믿을 맹공정권, 누구를 믿을까” 등의 단어도 사용됐다. 

▲ 1987년 12월30일 동아일보에 소개된 오연상
▲ 1987년 12월30일 동아일보에 소개된 오연상

용기있는 ‘Deep Throat’

이렇게 박종철 사망은 6월 항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보도지침에 맞선 언론의 노력도 있었지만 용기있는 ‘Deep Throat’ 들의 역할이 컸다. Deep Throat는 익명의 제보자를 뜻하는 단어로,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이 끝내 취재원을 밝히지 않고 Deep Throat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다. 

먼저 박종철의 시신을 제일 먼저 확인한 중앙대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이다. 사망진단이 내려지자 수사관들은 담요로 박종철의 시체를 싼 뒤 들 것에 실어 용산병원으로 옮기려 했다. 병원 응급실에 갈 때까지 살았다고 주장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오연상은 긴급히 병원으로 연락해 시체를 병원으로 들이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오연상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박군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숨진 상태였고 호흡곤란으로 사망것으로 판단됐으며 (중략) 약간 비좁은 조사실 바닥에는 물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 이후 그는 용산 그레이스 호텔에 끌려가 24시간 동안 경찰조사를 받고 다음날 신길동 대공분실에서 다시 조사를 받았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역시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가능했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 근무하던 안유 보도계장이다. 대공분실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수감된 고문경찰관들을 찾아와 “당신 둘이 죄를 덮으면 1억원씩을 주고 가족 생활을 보장하겠다. 조만간 가석방으로 꺼내 주겠다”며 회유했다. 각각 1억원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유는 이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당시 영등포교도소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된 이부영 전 의원도 있었다. 우연히도 이부영과 안유는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고문경찰관들이 밤새 울고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을 본 이부영이 안유에게 이유를 묻자, 안유는 “먼 훗날 회고록에 쓰라”며 자신이 듣고 본 것을 말했다. 

이부영은 “그러냐”고만 말하고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 출신인 이부영은 이를 기억해뒀다가 종이에 적은 다음 외부로 보냈다. 만약 안유가 이부영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확대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안유의 존재는 25년이 지난 2012년에야 밝혀졌다. 

박종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1과장 황적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황적준은 경찰의 회유와 압박에도 부검 감정사에 ‘흉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고 사인을 기록했다. 황적준의 부검 소견은 그 해 6월10일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1년 후 황적준은 동아일보를 통해 회유와 압박이 기록된 일기장을 공개했다.

▲ 박종철 추모공간으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사진=이하늬
▲ 박종철 추모공간으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사진=이하늬

끝내 먹히지 않은 전두환 정권의 ‘뒤집기’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까지 보안분실로 사용되다 ‘경찰청인권센터’로 탈바꿈했다. 지난 29일 경찰청인권센터를 찾았다. 22살 박종철이 차에 태워져 끌려갔던 그 길은 활짝 열려있었고 센터 입구에는 사람 허리 높이만한 경찰 마스코트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앞 잔디에는 물이 뿌려지고 있었다. 

당시 조사실이 위치한 5층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1층에서 5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통하거나 1층과 5층에만 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조사실 층수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쇠로 만들어진 계단은 발이 닿을 때마다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 길을 살아 내려오지 못한 이가 박종철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종철 사망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정권에 맞선 작은 용기들 덕분이었다. 애초 정권은 박종철 부모에게 9500만원을 주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중앙일보의 1보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고 의사 오연상의 동아일보 인터뷰로 ‘쇼크사’가 아닌 ‘고문사’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에도 전두환 정권은 추도제를 ‘갈등’ 프레임으로 끌어가고 김만철 일가를 일본에서 불러 들이는 등 박종철 사건을 덮으려고 노력했으나 경찰 내부에서 익명의 제보자가 등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사건은 더 확대됐다. 동아일보 기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제보자는 아직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6월 항쟁은 박종철과 이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참고문헌> 
신성호, 특종 1987-박종철과 한국 민주화 
황호택,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  
심재철·이경숙, 국민의제 형성에서 탐사보도의 역할- 박종철 사건을 중심으로
이두석, 사건기자 ‘못다 한 푸념’ 
정구종, 산업·민주·정보화시대 언론인으로 달려온 43년 

수도권 상수원에 '붉은 깔따구' '거머리' 첫 발견


[이명박 4대강 탄핵하자] 수문개방 3일차, 남한강에 가다
17.06.03 13:00 | 글:4대강독립군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적폐청산 1호 '이명박 4대강을 탄핵하자' 특별 기획은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이 진행합니다. 금강 현장은 김종술, 정대희 기자, 낙동강 현장은 정수근, 권우성, 조정훈, 김병기 기자가 취재합니다. 현장 기사는 오마이뉴스 SNS(페이스북 등)를 통해서도 동시에 송고합니다.  <편집자말>
▲ 이항진 여주시의원(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이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삽으로 강바닥에서 퍼낸 뻘에서 발견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거머리 등 4급수 지표종을 보고 있다. ⓒ 권우성
▲ 이항진 여주시의원(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이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삽으로 강바닥에서 퍼낸 뻘에서 발견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거머리 등 4급수 지표종을 보여주고 있다. ⓒ 권우성
[최종신: 3일 오후 5시 25분]
 
"아휴~ 완전히 썩었네."
 
이항진 여주시의원(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허리까지 들어가는 강물 속에서 삽질을 하자 공기방울이 보글거리며 치솟았다. 그가 든 삽 위에 시커먼 펄이 가득 찼다. 4대강 독립군이 있던 강변 쪽으로 그가 걸어오자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렇게 그는 다섯 번에 걸쳐 삽을 펐다.

"하나, 둘, 셋..."
 
김종술 기자는 그가 퍼온 펄에서 핀셋으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거머리를 골라 투명한 용기에 담았다. 총 19마리였다. 환경부가 지정한 최악 수질 등급 4급수 지표종들이 총출동했다. 지난해 여름 4대강독립군들이 실지렁이를 채취한 같은 장소였다. 그 때보다 3배 이상 채취했다.
 
최악 수질에 사는 혐기성 생물종도 늘었다. 당시에는 실지렁이만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붉은 깔따구와 거머리가 발견됐다. 급속도로 수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환경부의 수생생물 수질등급 판정 기준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고, 오랫동안 접촉하면 피부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 공업용수 2급. 농업용수 사용 가능." 
 
[강천보] 시궁창 펄에 실지렁이... "공포스럽다"
 
▲ 이항진 여주시의원(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이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삽으로 강바닥에서 퍼낸 뻘에서 발견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거머리 등 4급수 지표종을 보여주고 있다. ⓒ 권우성
4대강독립군은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우만동 1차선 농로로 들어섰다. 강변 쪽으로 차를 모니 300년 된 느티나무가 나왔다. 그 바로 아래에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하류 2.1km 지점에 4대강 사업으로 강천보가 지어지기 전까지 이 곳은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비경이었다. 이 의원은 말했다.
 
"전에 흰 백사장이 일품인 곳이었다. 여울 옆에는 강물에 닳고 닳은 둥근 자갈도 있었다. 그 너머에 버드나무 숲이 있는 원시적인 강변이었다. 이곳의 물은 그냥 떠먹었다."
 
▲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강천보 상류 2km 지점에서 이항진 여주시의원(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이 삽으로 강바닥에서 뻘을 퍼내고 있다. 이 뻘에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거머리 등 4급수 지표종이 발견되었다. ⓒ 권우성
이날 이항진 의원이 찾아간 곳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강천보가 들어선 뒤부터다. 수려한 경관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강바닥에 있는 모래 위에 시궁창 펄이 쌓이고 있다. 이 의원이 그 펄 속에서 사는 실지렁이를 발견했다. 이곳은 여주 취수장 상류 1.8km지점이었다. 여주시와 이천시민의 식수를 공급하는 곳이다.  
 
"충격적이고 공포스럽네요. 남한강 물이 이렇게 썩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물은 흘러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 이르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시민 2500만 명의 식수원입니다. 이명박 정권 때 4대강 사업을 하면 먹는 물이 4급수로 전락한다는 4대강 반대론자들의 우려를 '괴담'이라고 비판했는데, 그 괴담은 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포보] '해충의 천국' 된 강... 사람을 습격하고 있다
 
▲ 신재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남한강 이포보 하류 강바닥 뻘에서 발견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등 4급수 지표종을 보고 있다. ⓒ 권우성
4대강 독립군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1년 전 실지렁이를 채취했던 남한강 이포보 하류였다. 500m 앞에 이포보가 보였다. 이 의원은 또 삽을 들고 물속에 들어갔다. 허리춤까지 차는 곳에서 떠온 첫 삽에서는 모래가 나왔다. 실지렁이와 함께 1~2급수에서 사는 재첩이 나왔다. 다슬기도 나왔다. 두 번째, 세 번째 삽에서는 실지렁이가 지난해보다 10여배 넘게 나왔다.
 
"우와 무섭다."
"천천히 앉아서 찾으면 한 삽에 100마리도 넘게 찾을 수 있겠네."
 
▲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남한강 이포보 하류에서 삽으로 강바닥 뻘을 퍼낸 뒤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등 4급수 지표종을 찾아내고 있다. ⓒ 권우성
펄 속을 뒤적거리며 실지렁이를 찾던 김종술 기자는 혀를 찼다. 김 기자는 "물가 쪽에서는 1~2급수에 사는 생명체, (강 가운데 쪽으로) 2m만 넘어서면 3~4급수에 사는 지표종이 나오는 것은 이 지역의 수생태계가 교란기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 상태로 보를 그대로 둔다면 수질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4급수로 바뀌고 있는 상황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한강의 4대강 보 수문을 열어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에 젖은 몸으로 운전대를 잡은 이 의원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생태계 교란과 먹는 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곳 주민들은 저녁에 산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동양하루살이가 창궐해서 강변을 산책하기도 어려워요. 여주시 강변 상가들은 일찍 문을 닫습니다. 밤에 가게에 켜놓은 불을 보고 몰려드는 해충들 때문입니다.
 
전에 강의 생태계가 살아있을 때에는 새와 물고기들이 그 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먹이사슬을 형성했습니다. 지금은 강을 깊이 파서 수초 지대가 사라지고 정체된 물 속은 해충들의 천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해충들이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4대강 수문 중 6개만을 개방한 이번 조치가 아쉽습니다."
 
▲ 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남한강 이포보 하류에서 삽으로 퍼낸 강바닥 뻘에서 붉은깔따구, 실지렁이 등 4급수 지표종이 발견되었다. ⓒ 권우성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국토부와 환경부가 4대강의 수문 6개 보를 개방하는 날을 전후로 해서 3박4일 동안 금강과 낙동강, 한강을 돌며 현장을 취재했다. 자유한국당 등 4대강 사업의 주역들과 이에 편승했던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4대강 보의 수문을 열면 가뭄으로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 내고 있다.
 
하지만 4대강 독립군이 만난 농민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대부분 지하 관정을 깊게 팠기 때문에 가뭄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고, 4대강 사업 이전에도 가뭄 걱정은 없었다는 것이다. 낙동강에서 만난 어민들은 썩는 물 때문에 생계를 잃었다. 남한강 주변에서는 준설토 적치장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고, 심한 역행침식으로 인해 국민 세금으로 보강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현장 취재를 마친 4대강 독립군은 6월 중순까지 기획 기사를 이어가면서 4대강 6개보 수문 개방 조치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2신 : 3일 오후 12시 30분]

▲ 3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불온면 흥호리 남한강(왼쪽)과 섬강(오른쪽)이 만나는 지점. 4대강 사업으로 남한강을 3미터 준설했다. 이후 섬강 모래가 남한강으로 쓸려들어가 재퇴적되어, 하중도가 형성되는 등 4대강 사업 이전의 모습으로 자연 복원되고 있다. ⓒ 권우성

"와~ 이게 강이죠."

차 운전대를 잡은 이항진 여주시의원이 탄성을 지르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따라오던 오마이뉴스 4대강독립군 차도 멈췄다. 3일 오전 8시30분경 충청북도와 강원도를 가로지르는 남한강대교 위에서다. 다리 상하류에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 연출됐다.

강물 중간에서 세차게 흐르는 여울에 들어간 사람들이 긴 낚시대를 드리우거나 휘두르면서 플라잉 낚시를 즐겼다.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 위에 허리를 반쯤 담근 사람들이 20여 명쯤 된다. 이들의 차는 강변의 반질반질한 자갈밭에 주차해놓았다.

"다리 밑도 한번 보세요. 물속 자갈이 훤히 비치죠? 저기 물고기도 보이네요. 남한강의 거의 전 구간이 이런 곳이었어요. 그런데 남한강 바닥에서 3500만 세제곱미터의 자갈과 모래를 퍼낸 뒤에는..."
 
▲ 3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과 충북 충주시 앙성면 경계인 남한강대교아래에서 강태공들이 플라이낚시를 즐기고 있다. 이곳은 4대강 사업 구간이었으나, 준설작업을 하지 않아 강 본래 모습인 여울 등이 살아있는 지역이다. ⓒ 권우성
남한강의 원래 모습은 거기까지였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간 곳부터는 쌓이고 깎이고 무너지고의 연속이었다. 그는 비포장길로 차를 몰더니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흙바닥에서 뿌연 먼지가 일었다. 경기도 안성과 장호원을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청미천 하류에 있는 삼합교였다. 그는 다리 교각쪽으로 다가갔다.

"여기 나이테처럼 표시가 나있는 게 보이죠? 이게 4대강 사업 후 지금까지 해마다 모래가 빠져나간 흔적입니다."

그 나이테의 위쪽 끝 지점은 이 의원의 키를 훌쩍 넘겼다. 2m정도 였다. 이곳은 남한강 합수부와 2.5km 떨어져 있다. 남한강 바닥을 3m 준설한 뒤에 역행침식(본류 준설로 인해 지천의 모래가 쓸려 내려가는 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된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해도 여주시 인근의 신진교 등 지천 다리가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 5개 이상 무너졌습니다. 이 다리도 조만간 검사를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 3일 오전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 삼합교 교각의 모습. 이항진 여주시의원이 4대강사업 후 지천의 모래가 쓸려나가 교각 아래부분이 드러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강이 아니다. 물줄기가 없다. 모래와 자갈, 흙이 뒤섞인 거친 들이다. 자갈은 회색빛 펄을 뒤집어 쓴 채 말라 있다.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한 채 강바닥이 드러나 있다. 이 의원은 "4대강 사업이 강물을 마르게 하고 가뭄을 불러왔다"면서 바닥에 남아있는 모래를 파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모래를 파면 물기가 있습니다. 모래는 물저장 탱크입니다. 주변에 있는 논과 밭으로 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모래가 사라지자 주변의 논과 밭이 마르고 있습니다."

그의 차를 타고 청미천과 남한강 합수부로 향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 쌓아놓은 하상 보호공이다. 그물망에 자갈을 넣어 굵은 밧줄로 얼기설기 엮었다. 청미천의 역행침식 방지용이었다. 청미천에서 더 이상 물이 공급되지 않았기에 보호공은 바깥으로 드러나 있다. 그 위에 바짝 마른 조개와 우렁, 재첩의 사체가 즐비했다. 4대강 독립군 김종술 기자는 남한강 본류 물가에서 죽어있는 멸종위기종 2급인 삵도 발견했다.

"이 보호공은 몇 번이나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퇴적토가 쌓여서 양쪽이 수평을 이루고 있기에 쓸모없게 됐습니다. 4대강 공사를 할 때에 바로 앞쪽까지 수심 3m로 팠습니다. 청미천 토사가 밀려와 저기 남한강 중간까지 퇴적됐습니다. 몇 년 뒤에 일어날 일도 예상치 못한 날림공사였습니다." 

▲ 3일 오전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삼합리 남한강변에 4대강사업으로 준설한 모래와 자갈이 20여미터 높이로 쌓여 있다. 2012년 준설작업 이후 현재까지 방치되어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 권우성
청미천은 남한강에서 퍼낸 모래로 인해 '배고픈 강'이 되었지만, 남한강 주변에는 팔리지 않은 준설토가 산처럼 쌓여있다. 합수부에서 50여m 떨어진 골재 적치장으로 올라갔다. 높이만도 30m다. 골재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덮어놓은 녹색 그물망은 군데군데 찢겨있었다. 그 틈에서 잡초가 자라고, 심지어 아카시 나무도 훌쩍 커 있었다. 그 위에 올라간 신재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2016년 12월 말까지 남한강의 준설토는 35%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아직 65%가 남아있어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여주시청은 준설토 적치장의 임대기간을 20년 연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임대 단가는 평당 6천 원입니다. 이곳 농지의 평당 임대 단가는 보통 1500원정도 하는데, 3~4배나 됩니다. 원래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이 돈도 다 국민 세금으로 나갑니다."     

여주시에서 지난 6년간 지출한 골재적치장의 농지 임대료는 300억 원이다. 지난 1일 4대강 6개 수문 개방 조치에서 남한강의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 등 3개 보는 제외됐다. 5년에 준설했던 곳은 다시 퇴적되고 있고, 준설토는 강 주변에 널브러져 있다. 남한강에 토사를 내어준 지천의 물을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국민 세금은 계속 강 주변 보강 공사에 쏟아붓고 있다. 수문개방 3일째 되는 날, 4대강 독립군은 남한강을 취재한다.

[1신 : 3일 오전 0시 38분]
"낙동강에 똥물? 수질개선 대책, 황당하다"
   

"저 똥물로 낙동강 수질을 개선시키겠다고?"

오마이뉴스 4대강독립군이 만난 내성천보존회 송분선 회장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명박 4대강 사업의 마지막 공사였던 영주댐 앞에서다. 작년 10월에 1조1천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준공한 이 댐은 경북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에 있다. 내성천 중류에 있는 댐으로 낙동강 수질이 악화되거나 용수가 부족할 때 물을 흘려보낼 목적으로 만들었다. 맑은 물 공급용이다.

하지만 이 물부터 썩었다. 2일 찾아간 영주댐에 갇힌 물이 녹색 빛이다. 얕은 물속의 바닥에 연둣빛 녹조 알갱이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낙동강보다 먼저 녹조가 시작됐는데, 낙동강을 맑게 하겠다는 목적 자체가 맞지 않다. 더러운 물에 더러운 물을 보태 물을 정화할 순 없다. 이미 8개 댐으로 물을 가둔 낙동강에는 많은 물이 아니라 맑은 물이 필요하다.  

"저기 보이죠. 물속에 떠있는 거. 20여 개나 됩니다. 기포를 뿜어서 녹조 물을 맑게 하겠다는 폭기조입니다. 국민 세금을 들여 모래톱이 형성된 1급수 물을 가둬놓은 뒤 똥물로 만들고 또 국민 세금으로 기계를 설치해 녹조를 해소하겠답니다.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면 이렇게 할까요?"

송 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이어 "내성천은 낙동강에 맑은 물과 고운 모래 50%를 공급하는 천혜의 자연인데 영주댐을 지으면서 낙동강뿐만 아니라 내성천까지 망가지고 있다"면서 "1조1천억 원의 영주댐 공사비를 아까워할 게 아니라 그보다 몇 백배, 몇 천배 가치가 있는 내성천이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내성천은 영주댐이 지어지고 난 뒤부터 눈에 띄게 죽어가고 있다. 영주댐에서 나온 녹조 찌꺼기들이 내성천으로 흘러들어 수질을 악화시키고 있다. 영주댐에 가로막혀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모래 위에 풀이 자라면서 습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모래가 딱딱해지는 장갑화 현상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날 송 회장을 만난 4대강 독립군 정수근 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는 "댐을 빠른 시일 내에 철거하지 못한다면 우선 물과 모래가 흐를 수 있도록 배사문과 배수터널, 막았던 배수구를 뚫어야 한다"면서 "그렇게라도 인공호흡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2일 오후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한 고개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 ⓒ 권우성
4대강 6개보 수문 개방을 맞아 정 기자가 찾아간 낙동강 마지막 구간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 있는 삼강주막 전망대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합수부인데 낙동강은 이곳에서부터 큰 물줄기를 이뤄 흘러가기 시작한다.

특히 절벽 아래 펼쳐진 모래톱이 절경이다. 강물은 원을 그리며 휘돌아가고, 그 안쪽에 거대한 백사장을 만들었다. 그 모래톱은 낙조를 받아서 붉게 반짝였다. 경관미가 빼어난 낙동강 제 1경인 경천대와 비견될만한 풍경이다.   

잠깐 감흥에 젖어 낙조를 바라보던 정 기자는 이곳에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제안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낙동강에서 마지막 남은 모래톱을 물들이는 낙조를 감상하실 수 있다.

정 기자는 "이곳은 아직 물이 1급수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상류에 있는 영주댐이 모래를 공급하지 않고, 하류 20km 지점에는 썩은 물을 가둬둔 상주보가 있다"면서 "4대강 사업 때 만든 낙동강 8개 보를 모두 상시 개방해서 이곳을 낙동강 재자연화의 전범을 삼아 죽어가는 강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4대강 6개 보의 수문 개방을 전후해 2박3일간 금강과 낙동강을 돌면서 페이스북과 기사를 통해 실시간으로 강의 모습을 조명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적게는 20cm에서부터 많게는 1.25m의 수위만 낮춘 국토부와 환경부의 수위조절 대책으로는 수질 개선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 4대강 수문개방을 통한 재자연화와 감사를 통해 적폐 청산을 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와 의지를 배반하는 일이다.

4대강 독립군은 마지막 현장 조사 일정으로 오늘(3일) 6개보 수문 개방 조치에서 제외된 남한강의 3개 보를 취재한다.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인 이곳은 수위 조절도 필요치 않을 정도로 안전한 것인지를 조명할 예정이다.

 4대강 독립군을 성원해 주십시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로 구성된 '4대강 독립군'은 그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려고 죽어가는 강의 모습을 고발했습니다. 정권이 교체된 뒤 문재인 정부가 오는 1일부터 우선 4대강 수문 6개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4대강 독립군은 수문 개방 전과 후의 현장을 전해드리고, 4대강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적폐 청산 1호 '이명박 4대강' 탄핵하자> 기획 보도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진행합니다. 4대강 독립군을 응원해 주세요. 후원 전화 010-3270-3828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