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5일 월요일

‘트럼프 방정식’, 주한미군 철수 공론화와 방위비 협상

  •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9.11.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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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미군기지
1. 주한미군 철군논의 개시
한국 정치권에서 ‘주한미군 철군 논란’이 재개되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전쟁을 경험한 한국의 정치권에서 금기어였다. 그 문제가 한국에서 거론된 것은 1969년 닉슨 대통령과 1977년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 공약’ 등이 계기였다. 1979년 6월30일 청와대에서 박정희-카터 한미정상 단독회담이 열렸다. 최근 공개된 회담 기록을 보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나는 미군이 한국에 영원히 주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미군이 언젠가는 철수해야 하겠지만 북한이 현재 우리보다 우월하며 그들의 (대남)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카터의 철군 정책은 이후 미국 군산복합세력의 방해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한국 정치권에서 주한미군 철군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그동안 남한의 경제력이 북보다 수십 배 커져, 북의 군사력을 압도할 태세를 갖추어서일까? 이제는 한국 스스로 자주국방을 할 능력을 갖춰서 외국 군대를 나가라고 할 때가 된 것인가? 아니면 핵을 보유한 북의 일관된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 요청에 결국 미국이 밀려서일까?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실제 한국 정치권 논의로 본격 번지는 결정적 계기는 주로 한국진보의 투쟁보다 미국 발(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주한미군 철수론과, 그와 연계된 방위비 분담 협상문제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다시 대중적으로 공론화되고있다. 한국 정치권의 금기어가 또 하나 없어지는 순간이다.
수구보수를 대표하는 조선일보 11월13일자 사설을 보자. “트럼프 대통령이 장사꾼 논리로 동맹에 돈을 뜯으려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도 아닌 미군 최고수뇌부 인사가 비용 문제를 들어 주한미군 주둔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지난달 취임한 합참의장(마크 밀리)이 ‘미국이 왜 동맹을 위해 인명과 재산을 희생해야 하느냐’는 의구심을 공개 천명한 것은 이런 ‘최후의 버팀목’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그 경우 한국민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장을 포함한 모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 주한미군은 필요 없다.” 수구보수세력의 불안과 반발 심리가 투영된다.
조선일보에 이어 자유한국당도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 큰 우려와 위기감을 드러냈다. 11월13일 나경원 원내대표의 중진의원회의 발언을 보자.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이야기가 나왔다. 상상하기 싫은 일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바로 ‘주한미군 철수’이다. 정치권도 아닌 군 수뇌부인 미국 합참의장이 주한미군에 대한 의구심을 보였다. 한미동맹이 절벽 끝에 놓였다. 단순히 방위비 분담 압박카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 이런 걱정이 많이 든다.… 이참에 한국을 떼어버리기 위해 방위비 분담으로 균열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든다.”
2. 사대의존 국방정책의 최후
40년 전 박정희-카터 청와대 회담 이후 한국의 자주국방 상황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북한(조선)보다 경제력이 수십 배라고 주장하는 남한이 왜 아직도 자주국방을 못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남한은 북의 군사력에 여전히 밀리고 있는 것인가? 왜 요란한 경제수치는 북 군사력과 ‘실전’ 앞에만 서면 이렇게 힘없이 쪼그라드는 것일까? 한국은 과연 언제까지 주한미군 주둔을 애걸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왜 부자 나라들의 방위와 방위비를 미국 혼자 부담해야 하느냐’는 주장을 논박할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미국에서, 한국이 추가 방위비분담금을 못 낸다면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은 한국 스스로 지키라는 여론이 상당하다면 이를 논박할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적인 무기수입국이었다. 무기체계가 약하거나 현대적 무기가 결코 적은 국가가 아니다. 한국은 최근 세계 최대 무기수입 3~5위권 안에 드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인구·육해공전력·자원·국방예산 등 50개 항목을 종합해 군사력 지수를 산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7위였다. 이는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북과 실전을 치를 경우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북을 이길 수 없는 기이한 존재로 여전히 남아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이 수십 년간 ‘돈 먹는 하마’로 국방비에 국민 혈세를 쏟아부었는데도 자주국방에 실패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한국의 미국 의존적 자세와 방위구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국의 의도를 뛰어넘는 북한(조선)의 비상한 국방·군사지략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한국 군부에 ‘자주국방파’와 ‘(한미)연합방위파’가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언제나 주류를 유지하며 득세한 세력은 미국추종의 연합방위파이다. 현실에서는 초보적 민주정부가 일시적으로 집권할 경우 자주국방파 인물들이 잠시 등용되다가 다시 수구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제거되면서 원위치로 돌아간다.
김종대 <디펜스21> 전편집장의 칼럼(노무현 정부 '자주국방' 정책은 왜 물거품 됐나) 일부를 인용한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군주도-미군지원으로 역할이 바뀌자 한국군 장교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2009년(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에 이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다시 연합훈련과 계획 수립을 미군이 맡는 것으로 군사정책의 퇴행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주적 군사정책을 주도했던 당시 합참 작전처장 신원식 준장(육사 36기), 장경석 대령은 진급에서 탈락하여 야전이나 비작전보직으로 좌천되었다.… 이전에 자주적 군사정책을 주도했던 뛰어난 장교들은 ‘좌파장교’로 낙인찍혔는데, 이들에 대한 음해자료를 작성하고 살생부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은 바로 육사 출신 법무장교 K모(육사 39기) 준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국정원, 기무사와 결탁하여 막후 실세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군의 무수한 장교들이 좌천되거나 제거되었다.… 지난 60년간 그랬던 것처럼 한국군 발전의 싹을 제거하고 주권을 질식시키는데는 미국보다 미국의 앞잡이들인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더 심했다.” 한국에서 자주국방파가 설 자리가 없어 주변으로 밀려나는 현상은 독자적인 군 작전지휘권이 없이 미국에 종속된 한미동맹에 의해 벌어지는 필연적 결과이다.
한국은 지난 3년간 7조6000억여 원을 들여 미국 무기를 사들인 이른바 ‘톱3’ 국가로도 기록되었다. 또 향후 3년간 10~15조 원어치를 구매하기로 한 상태이다. 미국은 한국군을 미국식 무기체계로 채우며 미국 무기를 수십 년간 팔아먹었다. 한국의 경제와 국방산업이 성장하자 미국 무기를 팔기 위하여 한국의 독자적 자주국방 능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방해 제한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정작 필요한 첨단전략정보수집 장비는 팔지 않았다. 한마디로 한국군을 자기 머리로 스스로 작전을 세우고 사고할 수 없는 군대로 만들었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덩치 큰 머저리 종속군대로 ‘사육’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경제와 국방산업이 아무리 잠재력이 있고 현대화되어도 독자적 자주국방체계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이다.
나라의 중추인 국방사업은 미국추종 연합방위파의 요구대로 미국의 2류 무기체계나 검증되지 않은 신형 실험무기를 비싼 값으로 도입하는 관행으로 기형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기구매 로비와 수조, 수천억에 이르는 무기판매의 거대한 떡고물로 먹고사는 ‘군피아’ 집단과 정치커넥션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 F-20 전투기 도입 비리, 율곡비리, 백두금강 정찰기 도입(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 록히드마틴 군사기밀 유출비리, F-X 선정 비리의혹(F35-A 전투기) 등 군피아 비리는 끝이 없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노무현 정부 때 방위사업청이 부랴부랴 설치된 주된 이유의 하나는 때마다 터지는 군피아의 거대 자금 무기뒷거래와 독점적 군수품 조달 복마전을 일단 투명케 하기 위한 긴급조처였다.
3. 기술혁명시대의 군수산업; 기는 한국, 뛰는 미국, 나는 북한(조선)
21세기는 핵무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군수분야 기술혁명도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4차 산업혁명은 군수산업에도 바로 적용된다. 인공지능 무인전투기, 인공지능 함정, 군사로봇, 드론, 레이저 무기, 초소형 핵에너지 무기, 우주무기, 기능성 웨어러블 전자기계 전투복 등 다양하다. 핵무기, 로켓기술은 군 기술혁명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값비싼 20세기 재래식 무기 수천 개도 21세기 현대화된 첨단전술 신무기 1개에 대항할 수 없는 군사기술 혁명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 각국이 현재 공들여 경쟁적으로 개발하는 레이저 무기가 가까운 미래 본격 개발되면 재래식 총·포는 21세기 중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가능성이 높다.
지난 40년 사이 한국 보수가 망한다고 조롱하던 북한(조선)이 와신상담 자력으로 군사정치적 전략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남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사적 차원의 자주적 전략국가라 함은 핵무력의 소형화, 경량화, 정밀화, 다종화를 이루고 전략무기 운반체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전략미사일(SLBM) 등을 자립적으로 완성하였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다 최근 사드(THAAD)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무력화하는 북한(조선)판 이스칸데르라 하는 극초음속 전술(핵)유도무기 시험에 성공해 추가 배치하려 한다. 북은 경제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에도 21세기 과학기술혁명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과학인재를 육성하고 국방정책화해 4차 산업혁명을 국방과학과 군수공업에서 먼저 성공시킨 것이다. 이 기술을 이제 인민경제(민수)로 전환하고 있다. 이것이 장차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북이 21세기 새로운 산업혁명시대에 러시아, 미국과 어깨를 겨루며 초현대적 군사무기를 자력으로 생산하고 경쟁하는 세계의 군사기술패권국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조선)은 우리가 인정하든 안하든 이미 우리가 생각하던 과거의 북이 아니다. 이렇게 전변된 정황이 미국과 새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의 북미관계를 모색하는 직접적 계기로 되었음은 자명하다.
급변하는 지구촌 기술혁명시대에 의존국방·의존철학이 낳은 결과와 자주국방·자주철학이 낳은 결과는 천양지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대로 앞으로 10조 원 이상의 최첨단 미국 전략장비를 더 도입하면 과연 자주국방이 실현되는가? 아마 100년이 가도 2,3등급 무기 수입국가 신세를 면치 못할지 모른다. 한국의 자주국방 문제는 무기 도입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술자 부재의 문제도, 군인의 문제도 아니다. 자주권 회복과 자주정치의 문제다. 방향 전환과 결단의 문제다.
4. 국방 파산의 3중 위기; 한국방위 불능, 볼모 주한미군, 미국 본토방위 위기
북은 지난 5월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부르는 전술유도무기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어 8,9,10월 연속으로 신형 초대형 장거리 유도방사포 시험을 하였다. 국민들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동북아시아 군사력 균형을 깨는 충격적 변화인지 감지하지 못한다. 러시아가 개발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유럽의 안보지형을 바꾸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미사일방어(MD)시스템으로 막을 수 없는 전술미사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과거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략조약(INF)을 탈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이 미국산 ‘에이테 킴스’미사일을 따라 ‘현무’미사일을 개발하고 미국이 러시아와 INF에 머문 사이 북은 저 멀리 날았다.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등장에 미국, 일본, 한국이 충격을 받고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그 전개 속도에 놀랐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커다란 위협이 아니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북의 전술유도무기에 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데 이 무기의 성능을 다시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① 고체연료 사용 유도무기이다. 순항미사일 유도기능과 극초음속(마하6~10) 탄도미사일의 장점을 함께 보유한 신형 스텔스전술미사일이다.
② 사거리 약 700km 범위에 비행고도는 40~60km로 궤도 높낮이 조절과 불규칙비행이 가능한 초정밀 유도무기이다.
③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전술핵무기이다. 특히 전자기파핵탄(EMP탄) 탑재가 가능하다.
⓸ 새로개발된 400mm, 600mm초대형 방사포(사거리 400km)의 성능은 방사포라기보다, 회피 기동능력을 보유한 정밀 연발 전술미사일에 가깝다.
이로 인한 정치군사적 파장은 다음과 같다.
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MD)로는 방어가 불가능하다. 미국산 패트리어트(PAC-2, PAC-3) 미사일과 사드로도 요격이 불가능하다. 국방부가 새로 도입하려는 신형 패트리어트(PAC-3 MSE)의 요격 범위에 들지만 이렇게 불규칙 고속 비행하는 미사일은 거의 요격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 무기가 신형 400mm, 600mm 방사포와 함께 연속 발사된다면 요격미사일이 이를 분리 식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북의 전략 핵무기 말고도 현재 한반도 전역과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가 이 전술(핵)무기에 대해 방어 불능상태에 놓여있다고 봐야한다.
나) 현재 패트리어트(PAC-3 MSE)를 운영하고 있는 평택 주한미군기지도 무방비 상태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의 신형 방사포와 북한판 이스칸데르를 막을 방어수단이 없다. 군사적으로 때리면 맞는 무방비 신세로 전락했다. 해외주둔 미군 사상 초유의 위기사태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진실을 말할 수 없다.
다) 유사시 미 항공모함의 동해 근접은 물론, 대형 함선과 전략물자의 항구 근접도 어렵다. 방어망 부재로 항공기 이륙 전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다. 유사시 항공모함은 오히려 취약한 타격대상으로 전락한다.
국방부의 궁색한 해명과는 다르게 현재 이 무기를 막을 미사일방어망은 한국도, 미국도 없다. 이는 한미가 지역군사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 당분간 (공격전은 제외하고)대북 방어전략을 수립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북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성능과 현재 국방부 무기체계를 아는 군사전문가라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 특히 국방부는 미국산 군사정보수집 자산과 신형 패트리어트미사일을 추가 구입하겠다는 식으로 미국만 찾고 있다.
5. 교착된 북미관계의 출구? 문재인 정부 뒤통수 맞다
최근 진행된 11차 방위비부담금 협상과 관련해 한국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미국의 진의가 무엇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8년도 10차 협상 막바지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애초 3~5년이던 합의안 유효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요구해 관철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기획된 복선과도 같다. 당시 “1년 단위로 매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술수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올해 미국이 방위비 분담액을 5배 이상 증액 요구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 정부는 당황했다. 문 대통령이 북과 합의한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깨는 것을 감수하면서 지난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향후 3년간 10조원 이상 미국무기 구매를 약속했다. 한미방위비 협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뒤통수를 쳤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실제 의지임을 확인하며 더욱 당황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더 급박한 계산은 북미관계로 보인다. 언제나 예스맨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는 고려대상도 못 되는 것 같다.
조선일보는 11월21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5배 인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 주한미군 1개 여단을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19일(현지 시각)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이 기사를 사실이 아니라며 즉각 반박하며 기사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어쨌든 뜻하지 않게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국내외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협상에서 의중과 방점은 다른 곳을 향하는 것 같다. 미국 대통령선거와 우호적 여론을 위한 방위비 인상은 사실 부차적이고, 향후 북미관계에서 불가피한 출구 정비작업(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을 단계적으로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6. 방위비 분담금 줄 것인가, 받을 것인가?
한미관계는 시종일관 불평등하고 종속적이다. 일본과 독일은 패전국이니 미국 방위비를 분담할 수 있다고 치자. 한국은 피해국이다. 그런데도 한미관계는 마치 승전국과 패전국의 입장과 유사하며 독일이나 일본의 분담금 처리보다 더 불투명하고 예속적이다. 그 뿌리는 굴욕적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국의 군 작전지휘권을 미국이 갖고 있는데 있다.
유명한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을 보자.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허락한다.” 이것은 패전국이나 식민지에서나 있을 수 있는 규정이다. 이런 한미관계를 반영해 만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도 종속적이다. 이 조약이나 문서들은 미국이 한국의 자주권을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합법화한 문서들에 다름 아니다. 이를 기반으로 만든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도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종속적이다.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이란 것도 원래 소파 규정을 벗어난 것을 억지로 합법화한 것이다. 이 나라의 한미관계 법령들이란 언제나 미국의 의사와 의도를 충실히 반영해 거의 일방적으로 협상하고 굴욕적으로 용인하게 만들어졌다. 미국이 5배의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고 해도 사실 놀랄 일도 아닌 상황이다. 그것이 미국이 한국을 보는 기본태도이기 때문이다. 아니 트럼프의 말대로 50배를 인상한다고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방법은 처음부터 SMA 준수나 그 무슨 합리적 협상이 아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국민의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인식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 협력시대에 맞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미군이 나갈 테면 나가라고 말해야 할 때가 왔다. 아니 미국은 작전지휘권 이양하고 이제는 나가라고 말할 때이다. 그 돈으로 자주국방하고 서민복지에 돌리자고 해야 한다. 그래야 필리핀처럼 당당하게 미군에게 주둔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무기수입을 중단하고 군축과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고 해야 정상국가이다.

7. 한국 정당의 대응과 트럼프의 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범여권 의원 47명은 11월15일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블러핑(엄포)과 협박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하며 인상 근거 제시를 촉구했다. 이어 우리 정부를 향해 “미국이 협박하면 ‘갈 테면 가라’는 자세로 자주국방 태세를 확립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협박을 이겨낼 수 있다”고 주문했다. 잘한 일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실제 미국 대선을 위해 방위비 인상 성과를 내려는 것으로 보고 있고 따라서 이를 엄포(블러핑)로 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1월18일 “이번 방위비분담금의 합리적인 수준은 물가상승률 정도를 고려한 인상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자주정책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이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발언보다도 시대의 추세에 뒤떨어져있다. 민중당은 “동맹이냐, 날강도냐” “돈 없으면 집에 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민중당은 방위비 분담이 아니라 삭감과 분담금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가장 혁신적 입장이다. 진보진영 한편(평화통일연구소)에서는 “미국의 파괴적 행동으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소파)와 이를 근거로 하는 SMA 체제는 사실상 와해됐다”고 규정하며 “협상 중단과 협정 폐기만이 불법부당한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를 중단시킬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전 같았으면 북미간에 은밀히 나누어야 할 수준의 대화들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실시간 노출되고 있다. 북의 협상원칙은 더 간명해진 것 같다. 북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제안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처지를 배려한 제안을 모두 거둬들였다. 지금은 미국이 먼저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대화에 임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베트남 하노이 제안이 너무 아쉬울 만하다. 북한(조선)은 한국, 주한미군, 미국본토의 3중 방위가 무너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 없는 운명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진보는 도널드 트럼프를 몰락하는 미국 정치권 분열, 분파의 상징으로 본다. ‘평화상생의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대결의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북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최후 선택을 유도하면서도 그 선택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새로운 승리의 길’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북아와 세계사를 바꾼 인물로 남을지, 아니면 역사의 패자로 남을지 모를 긴박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부원장  webmaster@minplu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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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이어 만든 日 강제징용 기념관 30년만에 폐관위기

 이용식 '단바망간기념관' 관장...한국노총 초청으로 서울 방문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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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5  15: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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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은 지난 22일 폐관 위기에 몰린 일본 교토 외곽의 '단바망간기념관' 이용식 관장을 초청해 후원행사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일본 교토 외곽의 '단바망간기념관'. 일제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1989년 故이정호씨가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털어 문을 연 이 기념관이 폐관 위기에 몰려 후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 故이정호씨의 뒤를 이어 30여년 가까이 기념관을 지켜온 이용식(59살) 관장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운영적자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념관 건립에 2억엔이 들었고 20년간 1년 평균 500만엔(약 5,400만원)씩 2억엔의 운영비 적자 등 총 3억엔의 손실이 난 셈이다.
특히 지난 9월 6일 그동안 기념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연금(200만엔)을 기념관 운영비로 내놓았던 어머니(임청자, 85살)가 돌아가시면서 폐관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은 이용식 관장을 한국으로 초청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13층에서 후원행사를 진행했다.
산하 연맹에서 두루 성금을 모아 전달했고 후원행사에 참석한 설훈, 이용득, 송영길 의원등은 "개인이 이런 기념관을 만들어 낸 것은 사무친 역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단바망간기념관의 설립과 운영, 폐간에 이르게 된 사정을 전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역사기행 시민들이 들를 수 있도록 하여 다시는 폐관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힘을 보탰다.
  
▲ 이날 후원행사에서는 한국노총 산하 연맹에서 성금을 모아 전달했고, 각계 인사들이 단바망간기념관을 폐관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다짐을 밝히며 이용식 관장을 격려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후원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21일 오후에는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이용식 관장과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조선아 한국노총 통일국장은 "양대노총이 매년 8월 진행되는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올해에도 단바망간기념관을 방문하여 기념관 운영 지원문제를 다각적으로 협의하려고 했으나 당장 상황이 급박하고 일본을 드나들며 협의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이 관장을 초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양대노총과 단바망간기념관이 맺은 인연과 책임감이 이용식 관장을 서울로 초청해 후원행사를 갖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2014년부터  단바망간기념관을 방문해 일제강제징용조선인 추모행사를 진행해왔다. 이 기념관이 일본 영토내에서 일제의 강제동원노동을 증언해 주고 있는 유일한 박물관이었기 때문이었다. 
2016년에는 단바망간기념관에 첫번째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했다. 일본 영토내에 강제징용 기념물을 세우면 일본 우익 공격 당할 수 있어 우토로 마을 등 다른 장소를 검토했지만 이용식 관장이 "이곳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해도 좋다.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혼쾌히 응해 주었기 때문에 첫번째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단바망간기념관에 건립되게 된 것이다.
일본 교토시내에서 북동쪽으로 50km쯤 떨어진 단바지역에는 1889년부터 1983년까지 90여년간 철도 레일과 포신 등 군수물자 생산에 필수적인 망간광산이 약 300여개 운영되었다. 일본 제1의 망간 채굴지역인 이곳에는 1만5,000개에서 2만개의 갱도가 뚫려 있었고 일제는 이곳에 3,000여명의 조선인을 끌고와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 16살부터 이곳에서 일하다 1980년대 진폐증을 선고받은 故이정호(1932~1995)씨가 일제 강제징용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폐광산을 매입, 정비해 '단바망간기념관'을 세운 것이 1989년 5월 3일이었다.
진폐증으로 고생하던 故이정호씨는 '이 기념관이 나의 무덤이다. 절대로 역사속에 풍화되어서는 안된다. 돈이 없다면 먹는 밥을 줄여서라도 만들면 된다'는 투지로 3년에 걸쳐 도로도 만들고 갱도도 넓히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기념관을 완성했다. 
일제 강제징용의 역사, 광산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진폐증의 역사를 남기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맨몸으로 기념관을 만들어낸 아들 이용식 관장은 개관 6년째 되던 199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지금까지 23년을 단바망간기념관 관장으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009년 5월 31일 운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일시 폐관했다가 뜻있는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2012년 재개관하는 등 곡절도 겪었고 2016년 8월 24일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이곳에 첫번째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상'을 건립하기도 했다.
  
▲ 한국노총은 이용식 관장을 명예조합원으로 위촉하고 위촉장을 수여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단마망간 기념관을 살리자. 역사를 지키자"

다음은 이용식 관장과의 일문일답. 간담회는 일본 오사카 미츠메이칸대학교 김연태 연구원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  기자 : 단바망간기념관 설립 배경과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 이용식 관장 : 단바는 교토구 안에 있는 교토시 서북쪽에 있다. 왜 이곳에 단바망간기념관을 세웠는지 설명드리겠다. 
일본에서 강제징용과 관련된 가장 많은 광산인데, 2만개 정도의 광산 중 절반에 가까운 광산에 강제징용이 이루어졌다.
망간을 캐는 광산이 기념관 주변에 300곳이 있었다. 그 300개 광산에 15,000개 내지 2만개 갱도가 있었다. 그곳에 3천명 정도의 조선인이 모집 또는 강제로 끌려와서 일했다.
광산에서 일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발파를 하면서 굴을 파기 때문에 연기로 인해서 진폐증에 걸린 분들이 꽤 많다. 돌아가신 아버지 고 이정호관장도 진폐증을 앓아 18년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9년전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을 꺼냈다.
3년에 걸쳐서 아버지와 형제들, 가족들이 직접 기념관으로 들어오는 도로도 만들고 건물도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갱도도 만들어 넓혔다.
아버지는 기념관 개관 이후 6년 지나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만들고자 했던 기념관은 강제연행의 역사, 광산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진폐증으로 고생했던 그런 역사를 담고 싶어했던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는 약 5천개의 박물관, 기념관이 있는데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일본인 아닌 군인·군속 관련 박물관은 한 곳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만들고자 했던 박물관은 일본에 대한 레지스탕스와 같은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전후에 두세번의 사죄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3~4천만 아시아의 희생자를 생각하면 그나마 두세번 했다는 사죄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개인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고 기본적으로 침략했던 사실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재일 코리안을 차별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차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 코리안으로서는 우리 스스로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기념관이 있으면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9월 6일 어머니(임청자, 85살)가 대동맥 이상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동안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기념관을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이라고 생각해서 본인이 받는 연금을 기부하고 기념관에서 자원봉사하듯이 일하셨다. 
기념관 유지하기 위해서는 1년에 약 500만엔 정도가 필요한데, 그중 어머니가 200만엔 정도를 기부했다고 할 수 있다. 제가 100만엔 정도를 채웠었다.
그런데 10년전쯤을 생각해보면 약 300만엔 정도의 수입이 있었다. 그땐 사람들이 꽤 왔었다. 지난 10년사이에 한일관계가 안좋아지고 일본이 우경화되면서 학생들의 수학여행, 연수, 노조 방문 등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한국으로부터의 견학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래서 가장 사람들이 많았을 때와 비교하면 1/3정도로 방문객이 줄어든 상태이다. 그런 가운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박물관을 지키고 앉아있을 사람도 새로 구해야 하고...
저도 나이가 있고 이런 저런 지병이 있는 관계로 이정도에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해서 폐관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 이용식 관장은 21일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후계자의 문제와 자신의 건강 및 나이 문제, 운영 적자의 문제를 지금 기념관이 겪고 있는 어려움으로 꼽고 도와 주시는 주변분들과 상의해 좋은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가장 많이 왔을 때 방문객은 몇명 정도였으며, 지금은 얼마나 되나?
■ 2008년이 가장 많아서 연간 5,200명 정도라고 기억이 되고 작년에는 700명 정도가 방문했다.

□  스스로를 차별에 맞선 레지스탕스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일본 우익의 반격은 어느 정도인가?
■ 일본내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를 많이 하는 전국적 단체인 재특회(재일특권을 반대하는 모임)는 '일본에는 강제연행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그런 거짓말을 하는 기념관을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는 전화나 메일이 왔었는데,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건립된 이후에는 매일같이 협박전화나 이메일이 왔다. 주로 '강제연행 거짓말이다. 꺼져라. 나가라' 등 협박성 내용이다.
일본이 저질렀던 가해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일본에 안좋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일본에 대해서 안좋은 이야기이니까 반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안에 원폭기념관을 짓고 추모행사를 크게 하는데, 그럼 일본은 지금 반미를 하는 것이냐고 저는 묻는다.
일본은 원폭박물관을 크게 지어놓고 평화를 위해 지었다고 하고 있지 않나. 저는 단바망간기념관도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평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느냐, 왜 그걸 반일이라고 주장하느냐고 반박한다.
일본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과거에 한 일을 그대로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가해의 역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가해역사를 일본이 만들어서 기념한는 일을 일본이 나서서 한다면 과거 침략했던 주변국가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다시 성실한 관계를 통해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일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  아버지가 16살 때부터 광산에서 일했다고 했는데 언제까지 일했는지, 또 여러 형제 중 이용식 관장이 이어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 아버지는 38살까지 20년 넘게 광산에서 일했다. 그 뒤에는 광산 운영을 했다. 기념관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 다 돈을 모았었는데 10만엔 정도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다르지만...
운영비도 없었기 때문에 기념관을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돈을 벌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면서 기념관을 만들어야 했다. 아버지가 보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던 자식이 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는 3남 2녀 중 넷째이고 아들 중에는 막내이다.

□  본인은 어떤 결심으로 아버지와 기념관 만드는 일을 시작했나.
■ 아버지가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오사카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불러서 도와달라고 이야기하셨다.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느냐고 했더니 아버지가 "마지막 부탁이니까 제발 들어줘라.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진폐증에 걸린 후에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코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고생하셨다. 아버지 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 중에도 산재로 인정받는 일 등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만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게 기념관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없애거나 헐지 못하고 유지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기념관을 만들었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여러 비슷한 처지에 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어서 기념관 일을 계속 해왔다.
처음 기념관을 만들때는 그럴 돈이 있으면 부모님의 노후를 위해서 쓰거나 장례식때 쓰시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진폐증이라 곧 죽을테니 노후 이런 것은 필요없고, 어머니(이용식 관장 할머니)만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혼자 남은 내 무덤을 만들거나 장례식도 필요없으니까 유골은 한국이 보이는 바다에 뿌리고 그럴 돈이 있으면 기념관을 세우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기념관을 만들고 나서 먼저 자신을 일본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간 어머니를 보러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에게는 어머니를 보러 가야하겠다는 생각보다도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도 역사를 더 우선했던 분이라고 기억한다.

□  기념관 일은 몇살에 시작했나. 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가 관장이 된 것이 만 35살때였다. 일본정부로부터 지원은 커녕, 보조금도 1엔도 받은 적이 없다. 결국 방해, 무시의 연속이었다. 
무엇이 기뻤을까. 멀리 한국에서 와서 아버지와 우리가 만들어 유지하고 있는 뜻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순간들이 기뻤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저 뿐만 아니라 재일 코리안들은 계속 차별받으며 살고 있다. 제도적인 차별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전쟁중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일본 사람들은 전혀 공부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말하지 않는다. 왜 일본에 재일 코리안들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도 일본인들은 모른다. 
광산의 역사와 재일 동포들의 역사를 알리는 일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런 재일 동포의 처지를 이해하는 일본인도 조금은 늘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 이 관장은 멀리 한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아버지와 자신이 기념관을 만들고 유지해 온 뜻을 이해해 줄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기념관의 정상운영을 위해 필요한 제안이나 부탁, 요청할 사항은?
■ 다시 생각해보아도 기념관 운영이 참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제가 곧 환갑이 되는데 제 뒤를 이을 젊은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다. 
광산일은 '기술의 백화점'이라고 한다.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곳이어서 속성으로 배우더라도 5년은 걸린다. 그 다음이 돈이다. 
계속 적자인데, 지금 연간 700명까지 줄어들었다. 계속 줄어들면 그 적자는 심하고 커질 수 밖에 없겠지. 거기다가 어머니가 자원봉사로 메꿔주었던 인건비도 채워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사람을 키우기 위한 재정도 필요할 것이다. 
정말 금전적으로 적자폭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만약 기념관이 없어진다면 일본 정부는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초청받아서 왔는데, 상황을 공유하고 논의해 보자는 첫 자리이다. 기부해달라거나 도와달라고 호소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은퇴할 생각도 있는데 그렇게 기부를 받으면 은퇴도 못하게 되지 않겠나(웃음). 멀쩡해 보이지만 당뇨, 천식이 있고 여기 저기 병원을 다니고 있다.

□  돌아가신 어머니는 평소 기념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 어머니는 항상 기념관에 대해 아버지가 만들고 남겨놓은 것이라는 말을 줄곧 하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쉽게 문닫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  방문객을 맞으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 기념관에서 강연형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럴때면 일본이 3천만명 이상의 아시아 사람들을 독일 나치처럼 학살했다고 말한다. 강제연행의 경우 일본 국내로만 300만명을 끌고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군인·군속에 관한 ,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화를 내면서 나가 버리는 일본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과거 가해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일본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왜 그런지를 따져 물으면서도 듣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많은 공부가 됐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한일관계의 화해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조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 정말 기쁘다.

□  일본정부에 지원요청을 한바는 없었는지. 있었다면 반응은.
■ 처음 개관할 때부터 일본 행정관청에 여러번 찾아 갔었다. 교토부 내에 교토시가 있다. 정말 멀리 떨어져 있다. 교토시 북쪽에 케이호쿠 지소가 있는데 여길 여러번 찾아갔다. 박물관 만드니까 보조금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 친구가 "가봐도 의미가 없다. 네가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가봐야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그 뒤로는 저도 아버지도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요청하기 위해 행정관청 쪽에 다니지 않았다. 차별을 당한 것이다.

□  아버지는 어떻게 일본에 정착하게 됐는지. 박물관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말해달라.
■ 아버지는 2살때 일본으로 오셨다. 경남이 고향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선이 식민지가 되고 나서 상황이 어렵고 힘드니까 일본에 가면 조선에 있는 것 보다 좀 더 낫지 않을까 해서 먼저 일본에 건너와 있던 아버지의 형님을 찾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본으로 건너왔다.
학교도 다녔고 유리만드는 형석을 캐는 광산에서 일도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일본에 오자마자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니까 할머니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남동생(작은 아버지)도 조선에서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재혼을 하셨다고 들었다. 주소를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나이많은 형님인 큰 아버지 손에서 자라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배불리 먹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성장했다고 들었다. 일본공산당에서 활동을 하다가 제명처분을 받았고 재일총련에서 활동한 적도 있지만 금방 관두었다. 기념관은 진폐증 걸린 분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다가 만들게 된 것이다. 기념관 건립 전후에는 진폐증이 심해져서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 ‘조건부’ 기망 말라”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 ‘조건부’ 기망 말라”
백남주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9/11/26 [07:1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아베규탄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오늘 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번복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출처-아베규탄 시민행동]     ©

한국정부가 지난 22일 지소미아(GSOMIA) 종료를 조건부’ 중지하기로 한 후 정부 내에서 외교적 승리’ 등의 주장이 나오는 등정부의 사후대책에 대해 진보정당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민중당은 25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조건부 연장에 대해 언뜻 보면 일본이 하는 걸 보고 최종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로 보이지만 그 내용이 불투명하기 그지없다며 지소미아의 발효·개정·기간 및 종료를 담은 지소미아 협정문 제21조의 3항에는 눈 씻고 봐도 조건부 종료나 조건부 연장 조항은 없다고 지적했다

민중당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지소미아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아님 협정문에는 없지만 그렇게 하기로 일본 정부와 합의라도 했다는 말인가?”라고 되 물으며 미국의 전 방위적인 압박에 못 이겨 지소미아를 연장해놓고 이에 대한 비난을 피할 요량으로 조건부 연장이라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는 거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중당은 일본정부는 자신들은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강해서 한국이 물러섰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정부는 조건부 연장이란 말로 국민을 기망하지 말고 외교참사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당도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사후대책이 여론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당은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원칙한 모습국민과의 약속 위반 등도 문제지만 일본 정부의 발표내용도 석연치 않다며 아베 총리는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방침은 변경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당은 이런 일본의 반응에 대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정부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라고 강하게 비난한 것을 두고 정부가 외교적 망신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와 진실게임 양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당은 정부는 자극적인 언사로 여론을 호도하고외교실패를 은폐하며 시간을 끄는 행동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정부와의 진실게임이 아니라 지소미아 종료카드를 다시 꺼내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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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현 대변인 논평지소미아 연장, ‘조건부’ 기망 말고 외교참사 사죄하라

지난 22일 한국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중지하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 제소 중단을 발표했다일본은 수출규제와 관련한 양국 사이의 실무협상을 발표했다.

언뜻 보면 일본이 하는 걸 보고 최종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로 읽힌다그런데 그 내용이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지소미아의 발효·개정·기간 및 종료를 담은 지소미아 협정문 제21조의 3항에는 이 협정은 1년간 유효하며그 후로는 어느 한 쪽 당사자가 다른 쪽 당사자에게 이 협정을 종료하려는 의사를 90일 전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서면 통보하지 않는 한자동적으로 1년씩 연장된다.’고 적시되어 있을 뿐 눈 씻고 봐도 조건부 종료나 조건부 연장 조항은 없다.

정부가 주장하는 조건부 연장이란 무얼 말하는 것인가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지소미아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아님 협정문에는 없지만 그렇게 하기로 일본 정부와 합의라도 했다는 말인가미국의 전 방위적인 압박에 못 이겨 지소미아를 연장해놓고 이에 대한 비난을 피할 요량으로 조건부 연장이라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는 거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정부의 이번 지소미아 결정은 백해무익한 협정을 1년 더 연장한 자체도 문제거니와 그걸 연장해주고 무엇을 얻었는지도 불투명하다일본정부는 자신들은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았는데 미국이 강해서 한국이 물러섰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주권국으로서 수치다외교참사가 아닐 수 없다정부는 조건부 연장이란 말로 국민을 기망하지 말고 외교참사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2019년 11월 25
민중당 대변인 신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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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을 호도하는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GSOMIA) 사후 대응
당장 남은 6시간을 진행시켜 종료를 선언하라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사후대책이 여론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22일 문재인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불과 6시간 앞둔 오후 6시에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표를 통해 지소미아 종료통보의 효력 발생을 정지시킨다고 발표하였다뿐만 아니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에 대한 WTO제소 절차까지 정지시켰다일본이 내놓은 것은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협상창구를 국장급으로 격상시킨다는 하나마나한 약속 뿐 이었으며그동안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해온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와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한 외교적 망신이었다.

그간 문재인 정부가 호언한 것을 믿고 지소미아는 종료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많은 국민들이 망연자실했을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생중계를 통해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겠다며 호언장담한 것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고지난 11월 19일 집권 후반기를 맞아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밝힌 원칙적 입장과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무원칙한 모습국민과의 약속 위반 등도 문제지만 일본 정부의 발표내용도 석연치 않다아베 총리는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방침은 변경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서 정의용 실장이 어제 일요일임에도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정부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라고 이례적으로 감정적이고 비외교적 언사를 동원하며 비난에 나섰다일각에서는 양측의 날선 공방에 대해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강수라고 하는 해석도 나오고 있지만정부가 외교적 망신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와 진실게임 양상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일본은 지난 7월 수출통제를 하면서 한국을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와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더구나 지소미아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위한 한··일 삼각동맹의 상징적 조처다갈수록 심화되어가는 미·중 갈등에서 어느 한 편을 들어 중국의 반발을 불러오는 어리석은 행동이며동북아의 긴장과 대립을 격화시키고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이다.

정부는 자극적인 언사로 여론을 호도하고외교실패를 은폐하며 시간을 끄는 행동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일본정부와의 진실게임이 아니라 지소미아 종료카드를 다시 꺼내드는 것이다이웃 나라 수상을 향해 양심” 운운할 것이 아니라남은 6시간을 경과시켜 지소미아를 종료시키겠다는 선언을 해야 정부의 진정성이 확인될 것이다.

2019.11.25 
노동당 대변인 이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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