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2일 목요일

‘역사전쟁’을 바라보는 진보의 시선

‘역사전쟁’을 바라보는 진보의 시선
우리사회연구소  | 등록:2015-10-22 11:18:16 | 최종:2015-10-22 11:25:56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보수 세력의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8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굵직한 사회적 의제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에 몇 차례의 이념전쟁이 벌어졌다. 복지, 인권, 노동, 통일 등을 둘러싼 ‘프레임 전쟁’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보수 세력에게 번번이 선수를 빼앗겼다. 보수 세력의 주장이 옳아서라거나, 논리적인 타당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보수 세력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사람들에게 보수의 색안경을 씌워 사회를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베스트 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로 유명한 정치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커뮤니케이션학의 개념인 ‘프레이밍 이론’을 통해 현실 정치에서 보수 세력이 어떻게 진보 세력을 압도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보수 세력은 치밀한 프레임을 고안해 대중들이 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수적인 시각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사회적인 의제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그동안 각 의제별로  ‘보편적 복지는 공산주의다’, ‘노동귀족 때문에 경제가 어렵’', ‘흡수통일이 대박이다’ 등의 구호를 선점해 효과적으로 홍보해왔다. 이런 구호들은 보수가 장악한 매스 미디어와 ‘종북 프레임’에 의해 뒷받침되며 진보 세력의 대응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종북 프레임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모든 의제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기능을 했다. 진보 세력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종북’ 딱지가 붙으면, 대중들은 물론 진보 지식인들까지 그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은 진보가 표방해야 할 큰 틀의 사고체계, 가치체계에 머무른 나머지 보수 세력이 쏟아내는 파상적인 공세 앞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87년 이후 이데올로기 분야에서 이뤄낸 한국사회의 여러 민주적 성과물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하에서 벌어진 보수 세력의 공격에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역사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이런 ‘프레임 전쟁’에서 그나마 진보가 보수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던 분야가 바로 역사 담론이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는 일제 식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해방 후 미소군정의 한반도 분할통치는 분단을 고착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38선 남쪽을 점령한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 정책 등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등장한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은 한국 사회에 권위주의와 재벌 독점이라는 기형적 정치/경제 구조를 뿌리내리게 했다. 그러나 항일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은 이런 모순을 극복해가는 주요한 원동력이었다’는 진보의 운동사 중심 사관은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기도 하려니와 민주화 과정과 맞물려 보급되면서 학계와 대중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역사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와 여당은 그간에도 진보 세력의 마지막 남은 보루인 역사 분야를 보수적 시각으로 재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이명박 정부 때 등장한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의 경제 발전을 실증했다며 항일운동 중심의 근현대사 서술을 비판했고,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의 시장경제적 성과에 주목하여 반독재 민주화 운동 대신 ‘대한민국 건국사’를 역사 서술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뉴라이트 사관은 당시에도 학계와 시민사회의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은 보수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과 정권 차원의 비호를 받으며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역사관을 공론화시켜 왔다.
학계에서는 소수에 불과한 이들 뉴라이트는 학계 내에서의 논쟁 대신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편승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왔다. 이들이 역사전쟁의 주요한 전장으로 삼은 곳은 대학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실이었다. 뉴라이트는 중고등학교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며 정부의 검정 교과서에 빨간색 낙인을 찍어 버렸으며, ‘좌편향’교과서 필진과 역사교사 그리고 전교조에 대한 색깔론을 펼쳤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쿠데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사회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제가 강화되고 ‘종북좌파’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심화되자 역사전쟁은 한층 적극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때 한 번 실패한 바 있는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 제작 시도는 박근혜 정부의 ‘교학사 교과서’로 부활했다. 물론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함량 미달의 편집 내용과 논란이 되는 역사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검정에 통과해 일선 학교에 배포되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정식 교육과정에 편입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계와 일선 역사교사 그리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와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 찬 저들의 선택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라는 역사쿠데타로 귀결되었다.
이상과 같이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단순히 교과서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기획 속에서 다듬어져 온 역사전쟁의 일환이다. 복지, 노동, 통일 의제에서 경제민주화, 노동개혁, 통일대박 등의 선전구호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 역사전쟁 과정에서도 보수의 프레임 만들기는 매우 치밀하게 추진되고 있다. 보수 세력은 수년째 한국사회에서 맹위를 떨치며 진보 세력을 옥죄고 있는 종북 프레임을 이번 역사전쟁의 주력전선으로 설정하고 모든 선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역사전쟁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사안을 친일파 후손들이 선대의 잘못을 덮기 위한 공작이라거나 ‘제사’라고 보면서 권력집단의 개별적 행위로 치부하는 태도나, ‘국정화’에만 주목하여 이번 시도가 교과서 시장의 다양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만 비판하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전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역사전쟁의 본질을 비켜가는 분석이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든지, ‘한국의 산업화 역사를 패배주의 역사로 가르치고 있다’든지 ‘특정 정파의 역사관을 편향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저들의 주장에 대해 ‘주체사상은 박근혜 정부 들어 가르친 것이다, 원래는 안 가르쳤다’ 거나 ‘패배주의가 아니다, 산업화 역사도 위대하다고 가르쳤다’거나 ‘편향적이 아니다, 획일화가 더 문제다’라고 사안별로 변론하는 것은 보수 세력이 짜 놓은 전략 속에서 싸우는 꼴이며 또다시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다.
그렇다면 진보 세력이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할까. 우선 보수 세력이 역사전쟁을 추진하는 본질적인 의도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보수 세력이 역사전쟁을 벌인 의도는 단지 교과서 국정화에만, 친일파와 독재자를 미화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종북 프레임에 편승한 보수세력이 펼치는 역사전쟁은 복지, 노동, 통일 의제를 선점해 한국사회를 보수화하려는 치밀한 각본 속에서 추진되는 전략적인 공세다. 각 의제에 대한 보수 세력의 논리를 종합해보면 저들이 만들고 싶은 세상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의 역사전쟁이 전략적인 공세라면 진보의 대응도 사안별 반박 논리를 넘어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는 효과적인 구호
‘교과서 국정화 =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만들기’라는 구호에 사람들이 큰 호응을 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의 진보 세력과 역사학계가 이룩한 이데올로기적 성과임을 부정해선 안 된다. 국정화 대응 논리를 ‘역사 교육의 다양성’이나 ‘교과서 시장의 공정한 경쟁’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전략적인 사고가 아니다. ‘친일, 독재 미화도 문제지만 종북도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은 더욱 경계해야 하는 태도다. 야권은 절대로 역사전쟁을 종북 프레임 속에서 치르고 싶어 하는 보수의 미끼를 물어서는 안 된다.
한편 진보개혁 세력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정화 저지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많은 교수학술단체와 진보 세력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에 참가하고 있으며, 캠퍼스 내에서도 역사학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대자보 행동과 다양한 방식의 시위 및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활동 덕분에 국정화 저지 운동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점점 많은 세력이 결집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광장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대학생들의 이순신 동상 시위를 시작으로 10월 17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범국민대회에는 천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역사전쟁에서만큼은 결코 밀려서는 안 된다는 진보 세력의 절박함도 매우 크다. 
10월 17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진보 세력의) 사슬이 강하기 때문에 도저히 깰 수 없는 현실에서 국정을 채택하게 됐다”면서 “역사전쟁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번 정국을 평하면서 “좌는 분열하고 있지만 우는 단결하고 있다”고 보고 “이대로 단결하면 다음 총선에서 180석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이번 역사 전쟁이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정치판을 이념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역사전쟁은 박근혜 정권의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전쟁은 박근혜 정권의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학계와 대학 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며, 교육의 당사자인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또한 이번 역사전쟁을 제대로 이겨내고 향후 정치 지형을 반전시키고자 하는 진보세력의 의지도 점차 결집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과서 국정화 정국은 여야의 정쟁으로 장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수 세력을 장외로 끌고 나와 ‘친일,독재 대 항일,반독재’의 프레임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이 논쟁의 구도를 ‘친일=독재=이승만,박정희 지지자=어버이연합’에 맞서 ‘항일, 반독재를 외치는 청소년, 대학생’들의 싸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강력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노동자를 탄압하고 사회를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지만, 마지막에 ‘인두세’를 도입하겠다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국정화’가 박근혜 정부의 ‘인두세’가 되어 수세에 몰린 진보 세력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사회연구소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880&table=byple_news 

국사편찬위 직원의 하소연 "우리가 불구덩이에…"


"교과서 책임편찬, 국편 위상 높이기보단 조직 망가뜨릴 수도"
서어리 기자 2015.10.22 10:03:27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이후 각계에서 반대 운동, 집필 거부 선언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정 교과서 책임 편찬기관으로 지정된 국사편찬위원회 직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이 접촉한 국편 직원들에 따르면, 국편 내부에서도 국정화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적잖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편은 최근 정부 국정화 발표 직후 편사부 산하 '교과서 전담(TF)'팀을 개편하고 담당 직원을 기존 6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TF팀 소속 직원들은 향후 국정 교과서 집필들을 관리하고 관련 자료 수집 등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이같은 조직 개편에 대해 또 다른 직원 B 씨는 "편사연구관들은 달가워하지 않고, 관련 업무를 맡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TF팀에 발령받은 직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직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내부 편사연구관들이 직접 교과서 집필 작업을 맡게 되는 것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이 대거 '국정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에 참여하면서 국편 내부에서는 집필진 구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국편 직원들은 만일 집필진 공백이 생길 경우 내부 인원으로 충당하지 않을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편 편사연구관은 역사 관련 학과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이들로, 교과서 집필 자격 조건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B 씨는 "1년 6개월도 안 걸려 교과서를 만든다는데, 이미 원고를 써놓지 않고서야 졸속이 되지 않겠느냐"며 "TF원이 아니라도 직원들이 모두 나서서 직접 원고를 쓰고 고쳐야 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집필진 구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김정배 위원장은 진보와 보수, 노장청을 아우르는 '균형 있는 집필진'을 자신했지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것. B 씨는 "국내 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확신하는 분들이 과연 역사 전공자에게 집필 의뢰를 하겠느냐"고 했다.

이처럼 국정화 작업에서 발생할 여러 문제에 대해 국편 직원들도 인지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상 나서서 문제제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A 씨는 "국정 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많은 만큼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여러모로 여건이 받쳐주지 않은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연합뉴스

"국편, 1년 전부터 국정화 모드… 불구덩이 뛰어들었다"

이들은 국정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편은 적어도 1년 전부터 국정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는 것.

일례로, 지난해 12월 정부는 편사연구관만 임용하도록 했던 국편 실무진 자리에 일반행정직도 갈 수 있도록 자격 조건을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려다 중단한 바 있다. 당시 국편 내부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계획이 국정화를 위한 밑 작업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프레시안> 보도 직후 정부는 이같은 계획을 접었다. (☞관련기사 : [단독] 행정직이 국사편찬?…'국정화' 수순 논란)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뉴라이트 교과서'로 알려진 교학사 교과서 옹호에 적극 나선 전력이 있는 김정배 신임 위원장이 지난 3월 취임하면서 국정화에 대한 내부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국편 직원들은 그러나 김 위원장이 취임 초기에는 국정 교과서에 대해 지금과 같은 강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12일 발표 직전까지 편수 강화 방향이 많이 거론됐으나, 언제부턴가 위원장이 언론 등에서 '강력한 국정론자'로 비쳐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아마도 청와대 뜻이 워낙 강고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추측했다.

B 씨는 "(국편이 국정 교과서에 적극 나설 경우) 이로써 조직이나 예산 지원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고, 김 위원장은 교과서 편찬을 국편 기능으로 가져오는 것이 국편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면서 "그러나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경고했다.

A 씨는 "교과서 문제가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2010년 교육과정평가원이 맡고 있던 교과서 검정 업무가 이관될 때 '왜 불구덩이에 뛰어드냐'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질 줄 몰랐다"며 "국편은 학계와 전문가들을 존중하고 함께 가야 하는 기관인데, 학계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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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막내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장병이 전투식량에 입맛을 맞춰야 하는 한국군의 현실

문형철 201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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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그 어느때 보다 먹거리가 풍성한 계절이지만 수확의 기쁨은 잠시일뿐, 군대는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한다. 특히 비상사태를 대비해 전투원의 전투력 보존을 위한 식량과 식재료를 어떻게 가공하고 보존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한 식사와 영양공급 없이 군인들이 전쟁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스코티? 비스켓? 전투식량의 유래

 정확한 전투식량의 유래를 말하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건빵과 같이 현대에 까지 내려오는 가공식 전투식량을 이야기한다면, 고대로마의 비스코티가 유명하다. 비스코티는 오늘날의 건빵과 달리 비스켓의 형태에 가까은 바삭한 빵의 한 종류이다.
 비스코티는 빵처럼 밀가루로 반죽하여 만드는데, 일반적인 빵과 달리 두 번 구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라틴어로 비스(bis)가 두 번 이란 의미고 켓 또는 콕(coctus)은 굽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비스켓의 어원이 비스코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비스코티는 물과 밀가루, 소금이 주 원료로 맛은 오늘날의 비스켓처럼 좋지 않았다. 딱딱한 특성으로 인해 물에 불려먹거나, 오트밀같은 죽처럼 끓여먹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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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코티: 오늘날의 비스코티는 비스켓 처럼 견과류와 설탕을 첨가해 커피와 잘 어울리는 형태로 발전했다
 
 로마제국의 영역이 넓어지자 갈리아지역에 살고있던 골족과 게르만 용병이 로마군으로 유입되었다. 곡물과 치즈, 생선을 주식으로 하던 로마인과 달리 유입된 이민족 군인들의 주식은 육류가 많았으며, 이 육류를 보존하기 위한 염장식품이 로마군의 주된 전투식량이 되기도 했다.
 동양의 경우는 서양과 달리 쌀과 콩과 같은 곡물이 주식이었기 때문에 쌀을 주원료로 한 보존식이 전투식량으로 사용되었다. 찐쌀을 말려서 데운물에 풀어서 먹거나 쌀과 콩을 등을 빻아 미숫가루 형태로 휴대하기도 했다. 맛을 내기 위해 베와 같은 섬유에 간장을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한 천을 물에 풀어 맛을 내기도 했다. 몽고가 중국과 유럽을 휩쓴 중세에는 육포와 같이 말린 육류가 전투식량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식초와 소금에 절인 밥이 급조된 식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사들의 문제는 균형잡힌 영양의 제공이 어려워 괴혈병과 같은 질병을 불러오기도 했다. 물론 맛 또한 엉망이었다. 과학기술과 함께 근대화된 군 장비와 함께 전투식량도 발전하게 된다.

 병조림에서 3분요리까지

 1804년 나폴레옹은 맛과 영양을 제공하면서도 식품을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12,000프랑의 상금을 걸고 기술공모를 했다. 당시 제과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는 유리병에 조리한 음식물을 담아 코르크 마개로 덮고, 파르핀으로 밀폐시켜 비교적 장기간 음식물을 보관 할 수 있는 병조림으로 공모에 당선되었다. 보관기관이 길었던 병조림 효과는 컸다. 프랑스군이 뛰어난 기동성과 원활한 보급을 통해 각 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는 한 요인이 되었다.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였던 영국은 병조림 보다 뛰어난 전투식량을 개발한다. 피터 듀런트(Peter Durand)는 주석을 이용해 깡통을 만들어 통조림의 발명 특허를 낸다. 통조림은 병조림보다 장기간 음식물 보관이 가능했고, 파손되기 쉬운 병과 달리 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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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식 건빵의 원조인 건면포와 구일본군의 주먹밥 

  이후 통조림은 병조림을 대체해 각국의 전투식량이 되었고 전선을 넘어 가정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비스코티의 발전형태인 건빵 또한 비슷한 시기에 전투식량에 포함되게 된다. 건빵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고, 수분이 매우 적어 보존성이 좋아 선원들과 각국 해군에서 애용되었고. 1801년 미국으로 건너간 건빵은 남북전쟁 당시 규격화된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고, 북군에 배급되면서 전투식량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오늘날 우리군이 사용하는 건빵은 유럽과 미국의 건빵과 달리 말린 빵의 형태로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사용하던 말린 떡에서 유래된 것이다. 초창기 일본군의 건빵은 쌀과 밀의 가루를 반죽으로 빚어 말린 것이었으나 파손되기 쉬워 이동 중에 가루가 되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물을 부어 죽처럼 먹어야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빵에 구멍을 뚫어 말린 형태로 만들게 되었고 건빵과 함께 별사탕을 보급하기도 했다.
  별사탕은 원래 1569년에 포르투갈인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ís Fróis)가 선교 허가를 위해 오다 노부나가에게 이를 선물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고 포루투갈어로 사탕을 의미하는 confeito가 일본식 한자(金平糖:コンペイト) 콘베에토로 변환되었다. 
  통조림과 건빵이 전투식량으로 보급되면서 전투식량은 세트로 패키지화 되게 된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통조림과 사탕, 쵸콜렛, 비스켓, 인스턴트 커피와, 캔따개와 성냥 등이 포함되는 레이션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통합전투식량은 군인 이외에도 식량과 물자가 부족하던 민간인들에게 구호물품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미군의 C 레이션은 세계 각국의 전투식량 개발에 표준 모델로 자리잡게 되고, 이후 미군 전투식량은 명칭이나 메뉴 구성품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C 레이션의 기본 구성 자체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까지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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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도에 개발하여 1980년까지 보급했던 미군 전투식량 MCI(Meal Combat, Individual) 2차 세계대전때의 C-Ration(Combat Ration)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으로 12가지의 메뉴로 돼 있었다

  통조림 전투식량은 무게가 무거워 병사 개인이 전체를 휴대하기 힘들었다. 특히 통조림은 제작 단가도 비쌌다. 이러한 문제점을 최초로 해결한 것은 스웨덴 군이었다. 레토르트라고 불리는 주머니 형태의 용기를 끓는물에 넣어 데워먹는 방식은 전투식량의 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통조림의 등장으로 스팸이라는 인스턴트 햄이 나왔듯, 레토르트 전투식량은 오늘날 ‘3분요리’라고 부르는 레토르트 식품을 민간에 상용화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게되었다. 일본의 오오츠카 식품(大塚食品)은 1968년 본카레를 출시하면서 세계최초로 민간에 판매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와 함께 미군은 1960년대부터 통조림을 대체하면서 음식을 장기간 보관 할 수 있는 신형 용기 개발에 나선다. 1981년 미군은 레토르트 식품을 응용한 새로운 형태의 전투식량 MRE(Meal, Ready to Eat)를 개발했고, 1992년에는 물만 부으면 발열이 되는 발열 팩이 추가되면서, 불 없이도 따뜻하게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전투식량은 맛이 없어야 하는가?

 미군의 이 전투식량(MRE)은 다양한 메뉴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첫 등장 당시에 12가지 메뉴였지만, 그 종류는 갈수록 늘어 2000년대 들어서는 24종류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채식주의자용 메뉴나 회교도용 메뉴 등 병사 개개인의 개성을 고려한 메뉴까지 선보이고 있다. 전투식량은 전투를 하기 위해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단순히 영양만을 제공하는 식사는 전투에 지친 전투원의 사기를 올리기에는 부족하다. 미군의 MRE는 종교와 식성을 고려한 다양한 메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요리사와 미군들의 평은 그리 좋지 못하다.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의 지역 일간지인 <솔트레이크 트리뷴(The Salt Lake Tribune)>의 조사에 따르면 요리사 3명에게 미군 MRE 18종을 10점 만점으로 평가를 하도록 했는데 5.7점을 받은 것이 최고점이었고 최하점은 1.3점이었다고 한다. 군대 짠밥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국민성의 영향인지, 삶은 감자 정도의 당도를 유지하면서도 고칼로리를 지닌 맛 없는 쵸콜렛을 전투식량으로 채택했었다. 하지만 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한 이탈리아군은 자국의 식문화 탓인지 2차대전 당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전투식량을 보급했다. 롬멜장군의 부관이었던 슈미트 중위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군이 젤라또(아이스크림)를 즐기는 모습은 충격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는 총탄보다 와인의 보급을 중요시 할 정도로 군인의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두 가지 있다.
  이탈리아군의 주요보급품으로 와인을 이야기하는데, 이탈리아군의 와인에는 이런 경고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한 잔의 와인은 우리를 용감하게 한다. 하지만 취하지는 마라” 또 다른 일화는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힌 영국군 파일럿의 이야기다. 영국군 파일럿이 이탈리아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영국군 파일럿은 자신에게 제공된 식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양질의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다니, 이것이 나의 최후의 만찬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탈리아군 장교가 급하게 찾아와 그에게 “미안하다. 장교에게는 장교용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실수로 병사의 음식을 제공했다. 우리의 실례를 용서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는  패전국가였지만, 자국의 식문화를 반영한 훌륭한 식사를 통해 장병의 사기를 증진했었다. 현대 이탈리아군 역시 프랑스, 스페인과 함께 최상의 군대식사를 누리는 군대로 유명하다. 이탈리아군의 전투식량 중에는 코르디얼 샷이라는 술이 든 디져트가 포함돼 있다. 전세계 전투식량중 단연 1등의 맛이라고 불리는 프랑스는 전투식량에 민간에서 인기가 많은 제품들을 활용하고 있다. 스페인 군도 모츠라고 불리는 내장요리와 마드리드풍 먹물조림 등 자국민의 인기요리를 전투식량으로 제공하고 있다. 고된 군생활을 식사를 통해서 풀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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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식량 중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프랑스군 전투식량(RATION DE COMAT)

  맛 대신 전투적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미국도 전투식량의 맛을 꾸준히 개선하고있다. 미국의 매사츄세스주에 위치한 나틱(NATIC) 연구소는 1954년부터 군이 사용, 소비하는 아이템의 대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급양감독부는 레이션(전투식량)을 포함한 포장기술, 제조설비를 연구개발하고 있다. 미군의 전투식인 MRE도 매년 이 연구소에서 메뉴를 변경하고 장병들의 선호도를 기준으로 맛을 개선하고 있다. 최근에는 ‘TTI’라고 불리는 회기적인 기술로 전투식량을 열지 않고도 취식 가능여부를 알수 있는 소형 칩을 부착하고 있다. 나틱연구소는 또 전투식량의 질과 맛 개선을 위해 매년 장병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장병 입맛은 고려하지 않는 업체선정

 한국군은 어떤가? 지난 9월10일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국방위)은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국군복지단이 2013년 육군훈련소 장병 증식용(간식) 단팥빵 업체 선정과정에 비리혐의가 드러났음에도,  국군복지단 담당 기무사 정 모 중령과 국군복지단 업체관리과장 곽 모중령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업체선정 과정 당시 육군훈련소는 ‘여름철 내용물(단팥 등)로 인한 변질 우려가 있는 품목 제외’라는 요구조건을 내세웠지만 업체 관리과장 곽 중령은 이를 무시하고 임의변경했고  맛 40, 중량 40, 기타 20으로 수치화된 평가방식을 임의 변경하여 무자격 업체가 단팥빵 납품에 선정되게 했다. 선정업체는 당시 단팥빵을 생산하지도 않았고 자격조건도 없었지만 문서를 허위로 작성했고 국군복지단 담당 기무사 정 중령이 입찰에 개입했다. 정 중령은 자율적 납품수량 주문방식을 20% 이상 이상 납품이라는 터무니 없는 규정으로 바꿔 장병의 선호도와 관계없이 주문량을 확보하도록 특혜를 주었다.
 그나마 기무사 정 중령은 위계공무집행방해, 방실침입 등으로 고작 벌금100만원의 의견으로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이지만, 곽 중령은 국군복지단의 제 식구 감싸기 식 처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비록 전투식량은 아니지만, 훈련중에 허기를 달래며 고된 훈련의 위안이 되는 장병용 간식이 이렇게 허술하게 선정된다는 것은 군의 사기와 신뢰를 떨어뜨리는 중대한 이적행위다. 군이 앞장서서 장병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는 외국의 군대와  달리 장병들이 업체에  입맛을 맞추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군대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비롯 단팥빵 뿐만이 아니라 PX에 불량식품을 납품하거나 납품기일을 지키지 않음에도 대표자 이름만 바꿔 납품하는 실체가 없는 군출신 통판들의 횡포도 무시 할수 없는 상황이다. 장병의 높은 사기와 군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장병의 먹거리부터 확실하게 바뀌어야 한다. 업체선정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미군처럼 장병 선호도 조사와, 민간평가단의 공정한 평가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나틱연구소 처럼 장병들이 소비하는 물자에 대해서는 군이 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문형철 기자 captinm@naver.com 

'그린피스는 과격하다'고? 직접 타보니 이랬다


15.10.22 21:51l최종 업데이트 15.10.22 21:51l




국제적인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지난 19일 오후 8시 부산에서 출발해서 꼬박 3박 4일을 항해한 후 22일 낮 12시경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원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원전 2기 추가건설을 막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한 이 배에는 현재 나를 포함해서 총 33명이 승선하고 있다. 이 중 다국적 선원이 17명, 이번 캠페인의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관계자와 한국 시민을 합쳐서 16명이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네덜란드 국적의 선박으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이 있는 암스테르담을 출항해서 전 세계 곳곳을 돌며 그린피스 지역사무소와 함께 환경보호 캠페인을 벌인다. 선원들의 국적도 정말 다양한데, 전 세계 곳곳의 14개국(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독일·프랑스·불가리아·루마니아·우크라이나·미국·콜롬비아·호주·터키·인도네시아·대만)에서 모인 17명의 선원이 배의 운항에 필요한 각자의 임무를 맡고 있다.

그리고 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에 있던 레인보우 워리어 호를 무사히 부산으로 인도하라는 특명을 받고, 지난 9월 25일에 한국에서 파견된 사람도 있다. 그는 바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의 박태현(26) 해양보호 캠페이너다. '딴거하자 투어'(원자력과 석탄 발전 대신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캠페인)를 위해 지금까지 꼬박 한 달간 환경 감시선에 탑승 중이라는 그와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과학자를 꿈꾸던 학생',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박태현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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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박태현 해양보호 캠페이너
ⓒ 정혁

박태현 캠페이너는 그린피스에서 일한 지 이제 10개월째에 접어든 젊은 활동가다. 중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독일·스페인·벨기에 등지에서 해양생물 다양성과 보존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원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관련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지구의 해양환경에 대해 답답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환경운동에 관심을 두게 됐고, 올해부터 그린피스 캠페이너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

최근까지 원양어선 선원의 인권 문제와 대만 참치 어선 실태조사에 참여했고, 이번에는 레인보우 워리어 호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간의 소통을 담당하고 있다. '딴거하자 투어'의 지향점에 대한 물음에 그는 "위험한 원전이나 시대착오적인 석탄이 아니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수년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박태현 캠페이너는 한국의 해양자원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해양보호구역 설정'이라며, "연안자원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지만, 원양어업은 지금도 허점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지속 가능한 원양어업 정책과 불법어업 근절 캠페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태현 캠페이너는 한국의 대표적인 참치 기업들이 원양어선 선원 학대로 국제사회에서 큰 문제가 된 사례를 들며, "영국은 모든 참치를 채낚기로 공급하는 100% 지속 가능 어업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어업을 한국에서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항해에서 자신도 "환경 파괴의 현장에서 직접 행동을 하며 가는 곳마다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선원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세계적인 환경 감시선의 수장, 피터 윌콕스 선장의 얘기도 들어봤다.

북극해 지키려 시위하다 두달 구금, 피터 윌콕스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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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선장 피터 윌콕스
ⓒ 정혁

피터 윌콕스(Peter Willcox, 62)는 그린피스 환경 감시선의 역사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1985년 7월 10일 프랑스의 정보기관이 침몰시킨 첫 번째 레인보우 워리어 호의 선장도 그였으며, 당시 사건이 있기 3개월 전 미국의 피폭 실험(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방사능의 1000배 이상에 노출) 대상이었던 300명의 원주민을 이주시킨 마셜 아일랜드 이주작전도 주도했다. 그가 환경보호 활동을 한 지도 이제 42년이나 됐고, 그린피스에서만 1981년부터 지금까지 35년을 일했다.

최근에는 2013년에 북극해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직접행동에 나섰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억류되기도 했다. 피터는 북극을 지키려는 지구촌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고 비폭력 시위를 벌이다 2달 넘게 감옥에 구금됐고, 전 세계적인 석방운동을 통해 가까스로 풀려날 수 있었다. 당시 사건에 대해 말하면서도 피터 윌콕스 선장은 "감옥에 간 게 이슈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감옥에 가는 건 정말 피하고 싶다"는 농담까지 했다.

미국 뉴욕이 고향인 그는 언제나 항해와 함께하는 가문에서 태어났고, 물 위에서의 삶인 '항해' 자체가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그린피스는 '3개월 근무-3개월 휴식'이 원칙인데, 피터 선장은 쉴 때조차도 (항해가 취미인) 95살의 아버지를 돌보며 요트 경주를 즐길 정도로 천부적인 바다 사나이다. 그는 유머감각도 뛰어나지만, 선장으로서의 권위와 카리스마도 남다른 인물이다.

피터 윌콕스는 당사자 앞으로 가서 대놓고 얘기하는 그린피스의 '직접행동'이 효과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그린피스가 과격하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시선을 이해는 하지만, 비폭력에 기반한 활동이다. 그린피스의 직접행동에는 나름대로 제한과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 선장으로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건 모두의 안전과 승선한 구성원의 협력이다. 또한 즐기면서 일하는 환경이 되면 다른 일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피터 선장의 배에 타보니,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장녀 역시 환경단체에서 일하고(얼마 전 뎅기열에 걸려 스페인에서 치료 중이라고 한다) 차녀는 해양생물학을 공부했다. 둘 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승선한 적이 있고, 피터 선장은 아이들의 미래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고민하며 그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한다. 이미 40년 넘게 활동한 그는 향후 10년은 더 활동하길 원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부모라는 것. 그것이 바다에 나가서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바로 이 피터 윌콕스의 후예가 한국인 중에도 있다. 곧 그린피스의 다른 환경 감시선인 '에스페란자' 호의 항해사로 일하게 될 김연식(33)씨를 인터뷰했다(그는 한국인 최초로 환경 감시선의 정식 선원이 된다).

환경 감시선 최초 한국인 정식 선원, 김연식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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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호의 선원이 될 김연식 항해사
ⓒ 정혁

그린피스에는 총 3대의 환경 감시선이 있는데(레인보우 워리어, 에스페란자, '쇄빙선' 악틱 선라이즈), 이 중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가 에스페란자 호다. 김연식 항해사는 다소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인데, 그는 20대 중반에 <인천신문> 기자로 3년간 일했다고 한다. 이때 "해양경찰청에 출입하면서 선원 출신의 해양경찰들을 자주 만났는데, 이들이 뱃사람의 삶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고, 새로운 인생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피터 윌콕스가 천부적인 바다 사나이라면, 김연식씨는 20대 후반에 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우선 그는 부산 영도에 있는 한국 해양수산연수원에 들어가 해기사 양성과정을 마쳤고, 이어서 12개월의 상선 실습에 나섰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김연식씨는 자신의 목표로 이 길을 선택했고,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을 더 부정기 화물선 선원으로 보냈다. 총 36개국 48개 항구를 다니며 '잃어버리는 시간이 없는' 배에서의 24시간에 큰 매력을 느꼈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하게 됐다(그의 항해기록은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2015, 예담)라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러던 중 김연식씨는 항해하며 전 세계 시민들과 가까이서 어울렸다. 그러면서 환경 이슈를 피부로 느끼며 활동할 수 있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에 관심을 두게 된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이 배의 항해사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도 합격 통지를 받는 데 성공한다. 이와 동시에 김연식씨는 '1등 항해사'로 진급을 포기했으며, 대부분의 한국 젊은이들이 끝까지 망설일 '절반 이하의 연봉'을 순순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 잠깐 탑승한 김연식씨는 이 배가 인천에 도착하면 곧바로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사무실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환경 감시선 항해사로 정식 계약을 하고, 에스페란자 호 승선을 위해 멕시코 시티로 간다. 앞서 말했듯 그린피스의 '3개월 근무-3개월 휴식' 원칙에 따라, 2016년 2월쯤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환경 감시선의 항해사로서 앞으로도 계속 일하길 원하며, 적어도 자기 삶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잃어버리는 시간이 없이" 살아갈 준비는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린피스, 24일 인천항 제1부두서 행사 예정

나는 지난 19일 저녁에 부산에서 인천을 향해 출발하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에 탑승했고, 세월호 침몰현장 부근을 지나서 계속 항해 중이다. 현재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지극히 평온하며, 문제의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나의 마음도 이제 평화를 되찾았다.

레인보우 워리어(Rainbow Warrior)는 지구가 파괴되는 날 이를 구하기 위해 '무지개 전사들(Warriors of the Rainbow)'이 나타난다는 북미 원주민의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이 배 선원들의 밝은 얼굴과 건강한 에너지를 통해서 긍정적인 자극과 치유를 느꼈다.

그린피스는 24일(토)과 25일(일)에 인천항 제1부두에서 오픈 보트 행사를 열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직접 승선하여 갑판·조타실·선미 등 배 안의 주요 시설 관람, 환경 티셔츠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공연 등). 행사에 시민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니, 가족·친구들과 함께 무지개 전사들의 힘을 한 번 느껴보길 바란다. 요즘 한국에서 평소에 일상생활을 하며 접하기 쉽지 않은 좋은 에너지를 다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CJ Kang 방북기57]모란봉에서 만난 친절한 인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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