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申采浩) 선생(先生)의 상‧‧고대사에 대한 인식
이용섭 역사연구가
기사입력: 2014/10/14 [17:37] 최종편집: ⓒ 자주민보
우리역사 이야기 – 26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천재사학자(天才史學者)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신채호(申采浩) 선생(先生)의 상‧‧고대사에 대한 인식.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대외(對外) 관계사(關係史) - 12(三神五帝本紀), 장승(長丞)
장승신앙(長丞信仰)과 장승(長丞)의 전래설(傳來說)에 대한 비판(批判)
4. 한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 기록(記錄)된 ≪자오지 한웅≫
≪자오지 한웅≫ ‧ ≪치우 한웅≫ ‧ ≪치우 천왕≫은 지금으로부터 약 6천여 년 전에 우리겨레가 건국한 신시(神市) 제 14대 ≪한웅(桓雄) - 한 검≫ ≪자오지 한검(고갱이 우리말임)≫을 일컫는 말이다. ≪한웅(桓雄)≫은 ≪한 검≫을 이두로 표현을 한 것이다. 여기서 “한”은 “하늘”이고, “검(감, 곰, 금)”은 모두 고갱이 우리말로 ≪땅 신(神)≫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한=하늘≫, ≪검=땅 신(神)≫이 된다. 이를 풀어서 해석을 하면 「 〈한검〉은 하늘(天)에서 땅으로 내려온 신(神)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겨레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여 년 전에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검(神)≫이 온 누리를 홍익인간(弘益人間) ‧ 제세이화(濟世理化)의 사람들이 살기 좋은 누리를 세웠다는 걸 말한다. 이러한 해석은 고려의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박달나라 건국에 관한 기록이나 한단고기 기타 여러 사서들의 내용과 일치를 한다.
여기서 ≪박달나라≫를 뜻글자로 ≪신시(神市)≫나 ≪단국(檀國)≫으로 표기를 하였다.
(1) 먼저 ≪신시(神市)≫가 왜 박달나라가 되는지 해석을 하도록 하자.
㉠ 신(神)을 고갱이 우리말로 풀이하면 ≪검, 감, 곰, 금≫이 된다.
㉡ 시(市)은 고갱이 우리말로 풀이하면 ≪불, 벌(땅, 달)≫이 된다. ≪불, 벌≫을 다시 정리 하면 ≪불, 벌≫은 ≪밝≫에서 유래를 하였다. 따라서 ≪불, 벌 = 밝≫이 된다. 또한 누차 강조하였다시피 ≪밝≫은 ≪밝 → 박 → 백 → 배 →애≫로 변천을 한다. 이를 정리하 면 ≪불, 벌(땅 = 달) = 밝(= 박 → 백 → 배 → 애)≫가 되어 ≪불, 벌 = 박≫가 성립이 된다.
㉢ ≪㉠ + ㉡≫은 ≪검(감, 곰, 금) + 불≫ 즉 ≪검≫ + ≪박달≫이 되어 “검(神)님들이 세 운 〈박달나라〉”가 된다.
(2) ≪단국(檀國)≫에 대해서 보도록 하자.
㉠ 단(檀)을 고갱이 우리말로 풀이를 하면 뜻에서 차용을 하여 ≪밝달≫이 된다. 따라서 단 (檀)은 그대로 ≪박달≫이 된다.
㉡ 뒤에 나라(國)라는 명칭은 우리겨레의 기록에서 대부분 표기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겨레의 기록에서 나라(國) 생략이 되고 앞 글자만 표기가 되어있다 해도 현대인들 은 뒤에 나라(國)를 붙여서 해석을 해야한다.
㉢ ≪㉠ + ㉡≫은 ≪박달(檀) + 나라(國)≫가 된다. 따라서 ≪단국(檀國)≫은 ≪박달나라 ≫라는 나라 이름이 된다.
(3) (1)항과 (2)항은 결국 ≪(1) = (2)≫가 되어 결국 ≪시(市) = 박달나라 = 단(檀) = 박달나라≫라는 등식이 성립이 된다. 결국 지금으로부터 18분의 한웅(桓雄)들이 다스리던 ≪신시(神市)≫도 ≪박달나라≫요 뒤이어 건국되어 47분의 ≪임금≫이 다스리던 ≪단국(檀國)≫도 ≪박달나라≫가 된다.
위 내용들을 종합하면 우리겨레가 개천(開川)을 하여 세운 나라인 ≪박달나라≫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단군조선(檀君朝鮮)≫ 제 1대 ≪임금≫이 세운 ≪박달나라≫를 기준으로 보아서는 오류이다. 위 내용에 대한 결론은 삼국유사(三國遺事)나 여타의 기록들과 정확히 부합을 한다.
(4) 우리가 우리겨레를 부를 때 ≪배달겨레≫라고 한다. ≪배달겨레≫의 뜻은 ≪밝달 나라 겨레≫라는 말이다. ≪배달겨레≫ 역시 ≪밝 → 박 → 배 → 애≫의 언어적 변천에 따라 ≪밝 → 박 → 배달겨레≫로 변천을 한다. 결론적으로 ≪밝달겨레 = 박달겨레 = 배달겨레≫의 등식이 성립을 한다.
여기서 ≪밝≫은 “하늘, 빛, 해(太陽), 높다, 깊다, 길다‧‧‧”와 같은 최고, 최상, 최대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달≫을 ≪땅≫의 고갱이 우리말이다. 따라서 ≪배달겨레≫는 우리겨레가 온 누리 민족들 가운데 바로 ≪하늘 겨레, 천손민족(天孫民族)≫임을 말한다.
≪배달겨레≫에 대한 언어적 해석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얻어지는 배달겨레라는 시초는 흔히들 말하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아니고 역시 지금으로부터 약 6천여 년 전에 한웅(桓雄,한검) 개천(開川 - 하늘을 열다)을 하고 땅으로 내려와 세운 나라인 신시(神市, 박달나라)임이 명확하다. 따라서 우리가 매년 기리고 있는 개천절 역시 한검(桓雄)이 세운 ≪신시(神市)≫로 바꾸어야 한다.
기록과 언어적 해석을 통하여 우리겨레의 역사시기(歷史時期)의 정확한 뿌리와 시초는 흔히 말하는 단군조선(檀君朝鮮, 정확한 표현은 아님)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6천여 년 전에 세운 신시(神市,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신이 세운 박달나라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결론은 삼국유사를 비롯한 한단고기 규원사화 등과 같은 기록들을 배교분석한데 따른 것이다.
본 논증에 대한 해답을 후조선(後朝鮮) 숙종 2년 을묘3월에 북애자(北涯子)가 쓴 규원사화(圭園史話) 단군기(檀君記)를 보기로 하자. 물론 상기 해석은 필자가 언어해석(言語解析)을 통해 논증을 한 것이다. 규원사화(圭園史話) 단군기(檀君記)와 비교(比較)해보면서 보기 바란다.
규원사화(圭園史話) 단군기(檀君記) 중
❝ 환웅천왕이 세상을 다스린 지 벌써 궐천세이다. 이 분이 곧 신시씨이다. 쑥대 정자와 버드나무 대궐에 살며 자연으로 되는 이치를 널리 펴서 나라를 세운지 만세나 되었다. 천황의 말년에 공들인 일들이 모두 완성되고 사람과 사물이 즐겁게 사는 것을 보고 태백산에 올라갔다. 천부인 3개를 연못가 박달나무 아래 돌 위에 두고 신선이 되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못은 조천지(朝天池)라 한다.
고시씨와 여러 사람들이 천부인 3개를 받들고 그 아들 환검신인(박달임금)을 군장으로 삼았다. 이 분이 곧 임금(任儉)이다. 신라의 이사금(尼斯今- 이사금은 이두로서 잇금이 된다. 잇금은 임금을 말한다.)도 이런 뜻이다.
지금부터 거슬러 올라가 대충 계산해 보면 약 4천여 년이나 된다. 연대로 보아 당요(唐堯- 帝堯陶唐을 말한다.)와 같은 시대이므로 세상에서 소위 요(堯)와 아울러 함께 있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단군이란 ≪박달임금≫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단군(檀君)이라한다. 신시씨가 박달나무(檀木) 아래에 내려오고 환검신인(박달임금을 말한다)이 다시 박달나무 아래에서 임금 자리를 이어 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 이름을 삼은 것이다. 단군(檀君)이란 단국(檀國)의 임금이란 뜻이다.
우리말에 단(檀)을 박달이라고 하며 혹은 백달(白達) – 배달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임금을 임검 이라 한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기 때문에 백달 임검 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단군으로 번역하고 다시 그 후에 단군이란 글자만 기록했을 뿐, 단군이 백달 임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한자가 지니는 공과 화는 반반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언서(우리 글- 한글)를 함께 사용했다면 이러한 폐단도 없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어 문화의 계발이 더 빨랐을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장황하게 쓰지 않겠다. ❞
위 인용문에 대한 해석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미 필자가 신시(神市)와 단국(檀國)이 모두 ≪박달나라≫ 혹은 ≪배달나라≫라고 해석을 한 내용과 같다. 겨레 이름 역시 ≪박달겨레≫ 혹은 ≪배달겨레≫로 해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래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한단고기(桓檀古記)에 그리고 규원사화(圭園史話)나오는 우리겨레가 세운 나라(神市開天)에 대한 역사적(歷史的) 기록(記錄)을 간략하여 보도록 하자.
1)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신시개천(神市開天)
❝ ~전략~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白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 降於太白山頂(卽太白今妙香山)神檀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후략~ ❞
❝ (~전략~ 고기운. 석유환인(위제석야)서자환웅. 수의천하. 탐구인세. 부지자의. 하시삼위태백 가이 홍익인간. 내수천부인삼개. 견왕리지. 웅솔도삼천 ‧ 강어태백산정(즉 태백금묘향산)신단수하. 위지신시. 시위환웅천왕야. 장풍백우사운사. 이 주곡주명주병주형주선악. 범주인간삼백육십여사. ~후략~)❞
☞☞☞ 해제 ☜☜☜
❝ 고기는 말한다. 옛날에 한님(桓因. 帝釋을 이름, 불교식으로 해석을 했기에 별로 참고할 말한 단어는 아니다)이 계셨는데 그 아들 중(庶서, 무리, 여럿) 에 한웅(桓雄, 한검)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한웅은 항상 하늘 아래 땅에 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 한님께서는 아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하늘 아래 땅에 있는 삼위태백산을 보시고는 가히 홍익인간의 뜻을 펼칠 수가 있다는 것을 아셨다. 이에 천부인 세 개¹를 주시면서 한웅으로 하여금 인간 세상에 내려가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 일연의 주석임)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는데 그 곳은 신시라고 한다. 이 분이 바로 한웅천왕이다. 풍백, 우사, 운사²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³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다스리고 교화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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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덧붙인 숫자 설명
1. 천부인 삼개: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다. 첫째- 거울, 북, 칼로 해석을 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거울로 자신을 비추면서 항상 자신을 반성하며 살라는 가르침이다. 북은 북을 울리듯 사람의 심금을 울리면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칼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속에서 하늘과 같은 존재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이들에게는 가차없이 징벌을 가하라는 의미로 해석을 한다.
둘째- 거울, 북, 방울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거울과 북은 위 기록내용과 동일하게 해석을 한다. 방울은 방울을 울리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당골들이 ≪굿≫을 할 때 항상 방울을 딸랑거리며 울린다.
2. 풍백, 우사, 운사〈단기고사에는 뇌공(雷公)이 기록되어 있음〉: 풍백(風伯) - 바람을 다스리는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우사(雨師) - 비를 다스리는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운사(雲師) - 구름을 다스리는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뇌공(雷公) - 번개를 다스리는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사회가 농경사회라는 것이다. 또 농사를 잘 지어야 사람들이 먹을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또 하나 풍백, 우사, 운사, 뇌공의 4가지는 현재 풍물놀이에서 사용되는 주요 악기이다. 풍백(風伯) 즉 바람을 나타내는 악기는 ≪징≫으로서 ≪징≫의 소리는 전체 풍물에 쓰이는 악기들이 내는 소리를 전체적으로 풍부하게 감싸 안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풍물놀이나 사물놀이에서 징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꽹과리(깽메기)나 장구의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남으로서 균형을 깨뜨림으로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사(雨師)는 비를 다스리는 직책으로서 풍물놀이에서는 ≪장구(鼓)≫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운사(雲師)는 구름을 다스리는 직책으로서 풍물놀이에서는 ≪북(鼓)≫이 운사의 역을 담당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빠졌지만 뇌공(雷公)은 번개를 다스리는 직책으로서 바로 꽹과리(깽메기)가 그 역을 담당한다.
우리의 풍물놀이(굿 – 내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굿”이라고 하였다. 풍장 – 가끔 풍장이라고도 하였다.)는 절대 농악(農樂-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우리의 문화예술(文化藝術)의 폄하(貶下)하기 위해 조작(造作)한 말임)이 아니며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理致)를 담아내고 있는 바로 “굿”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다고 하나 번개, 바람, 비, 구름이 없는 그 어떤 산업(産業)이 존재할 수 있는가. 만약 위 4가지 자연현상(自然現象)이 없다면 지구의 존재는 고사하고 우주도 존재를 할 수가 없다. 천지만물이 존재를 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대자연의 현상을 나타내는 굿을 하는데 어찌 농악이라고만 할 것인가. 절대 농악이 아니며 가장 합당한 말은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굿”이다.
모든 “굿”은 하늘과 땅의 누리 천신(天神)과 지신(地神) 인신(人神)이 하나로 합(合)하는 신성한 놀이를 말한다. 즉 “굿”을 통해서 삼신(三神)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천부인(天符印) 삼개를 주었다는 내용과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다는 기록, 그리고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의 세 가지 직책을 가진 이들을 거느리고 왔다는 내용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곧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곡식(主穀), 생명(主命), 질병(主病), 형벌(主刑), 선악(主善惡)을 주관: 곡식을 잘 지을 수 있도록 주관을 하는 역을 맡아하는 임무를 말한다. 생명은 인간의 목숨을 맡아보는 직책을 맡아보는 것을 말한다. 질병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투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질병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아하는 임무를 말한다. 형벌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극히 일부이겠지만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도리, 즉 삼신의 도리를 어기고 죄를 짓는 자들에게 벌을 가하는 직책을 맡아하는 임무를 말한다. 선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항상 삼신의 도리 혹은 삼신의 이치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를 담당하는 직책을 맡아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는 현대사회의 종교의 역할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원리는 오제설(五帝說)에 따르는 임무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우리겨레 혹은 화하족을 포함한 이민족(異民族)들 역시 상고대시기(上古代時期)는 물론이고 근세까지도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그대로 차용한 사회적(社會的) 조직체(組織體), 종교(宗敎), 사상(思想) 등과 같은 삶의 원리(原理)로 삼았다. 현대사회 역시 이 진리(眞理)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 역시 우리가 고증(考證)을 하고 있는 한단고기에 기록되어있는 삼신(三神) ‧ 오제설(五帝說)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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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우리겨레의 건국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겨레가 개천을 한 것은 47분의 임금이 다스리던 ≪박달나라≫가 아니라 18분의 한웅(桓雄 - 한검)이 다스리던 ≪박달나라≫이다. 삼국유사나 앞서 살펴본 후조선시기(後朝鮮時期)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쓴 규원사화(圭園史話) 역시 같은 기록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래에서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쓴 규원사화(圭園史話)에 나오는 개천(開川)에 대해서 보도록 하자.
2) 규원사화(圭園史話)의 신시개천(神市開天)
❝ 한편 하늘에는 한 큰 주신(一大主神)이 있었다. 그를 환인(桓因)이라 하는데, 온 세상을 다스리는 많은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체는 드러내지 않고 가장 높은 하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수만 리나 떨어진 곳이지만 언제나 환하게 빛났으며 그 밑에는 수많은 작은 신(小神)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환(桓)이란 밝게 빛나는 그 형체를 말하는 것이며 인(因)이란 본래의 근원이며 만물이 이것에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에 한 큰 주신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말하기를 “우주라는 큰 덩어리가 어둡게 닫힌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이제 개벽의 기운에 쌓여 낳고 길러지기를 바라니, 만약 때를 맞추어 열지 않는다면 어찌 헤일 수 없이 많은 공덕을 이룰 수 있겠는가”했다. 이에 환웅천황(桓雄天皇)을 불러 우주를 여는 일을 하도록 명했다.
명을 받은 천황은 그곳을 떠나 여러 신들을 독려하여 각기 크게 신통함을 나타내게 했는데, 다만 바람과 구름이 어둡고 검푸르고 깊으며 번개가 번쩍이고 우뢰와 벼락 치는 것만을 보이게 했다. 그러자 옥녀(玉女)가 얼굴빛이 변하고 모든 귀신들이 도망쳤다.
이렇게 되어 우주는 열려 하늘과 땅이 비로소 나누어지게 되니, 우주는 너무 넓어 그 끝을 알 수가 없었다. 이에 해와 달에 명하여 바퀴처럼 구르고 서로 돌아 하늘을 환히 밝히고 당에 비치도록 했으며, 해가 움직여 낮이 되게 하고 달이 움직여 밤이 되게 했다. 또 별들에 명하여 높은 하늘을 돌게 하고, 계절을 정하여 햇수와 날짜를 셈했다.
이로써 하늘과 땅은 나누어지고 해와 달은 돌고 있었으나 땅에는 물과 불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바다는 혼돈하고 쌓인 기(氣)는 정체되어 퍼져나가지 못했다.
한 큰 주신이 두 번째로 환웅천황에게 명을 내려 크게 법력을 나타내게 했다. 비로소 지표의 물을 돌아나가게 하니 육지가 드러나고, 땅과 바다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불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물은 움직여 만물이 번성했다. 풀과 나무가 뿌리박고, 벌레와 물고기와 짐승이 때를 지어 자라며 번식하게 되었다. 하늘과 땅이 나누어진 때부터 삼계(三界)는 또다시 십만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큰 주신은 다시 여러 신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우주 자연의 움직임이 몹시 민망하더니 이제 너희들이 힘을 내어 하늘과 땅을 나누고 만물이 생겨나게 하니 그 공이 매우 크구나. 다만 천지 사이에 당연히 만물의 어른을 두어야 하는데 그 이름은 사람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과 함께 삼재(三才)가 되고 만물의 주인이 되느니라.
원래 천지에 쌓인 기(氣)가 흩어져 만물이 되게 했는데, 신령하고 빼어난 성(性)과 곧고 밝은 기를 모으고 받았지만 사람은 생겨나지 않았다. 이제 신령하고 빼어난 것을 이끌어 내게하고 곧고 밝은 것을 드러나게 하여 많은 생물들 중에 사람을 낳게 하므로 그가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느니라. 그런데 이 일은 반드시 먼저 자격을 갖춘 후에 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환웅천황에게 세 번째 명을 내렸다. 천황이 분부를 받들어 계획대로 시행하여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을 불러 하늘위의 모든 일을 나누어 맡아보도록 했다. 주신이 거느리는 수많은 작은 신들도 세상에 내려가게 하여 산 ‧ 개천 ‧ 바다 ‧ 구름 ‧ 벌판 ‧ 마을의 일들을 엄하고 공정하게 다스려 잘못이 없게 했다. 그 후에야 천지의 신령하고 빼어난 성과 곧고 밝은 기를 분별하여 많은 사람을 만들어 내게 했다.
한 큰 주신은 네 번째로 환웅천황에게 명을 내려 “이제 사람과 그 밖의 만물을 다 만들었으니, 수고하여 만든 것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무리를 이끌어 인간 세상에 내려가 하늘을 이어받아 가르침을 세우고, 만세토록 후손의 모범이 되게 하라”고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천하에 펴라”고 명했다.
환웅천황은 기쁘게 명을 받들어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풍백과 우사와 운사 등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의 박달나무(檀木) 아래로 내려왔다. 태백산이 곧 백두산이다.
모든 무리들이 천황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곧 신시씨(神市氏)이다. 초목이 돋아나고 금수가 생긴 후 또 십만 년이 지났다. ❞(규원사화. 북애자 저. 고동영 주역. 한뿌리. 2005년 1월 30일. 16~19쪽)
우리는 일제가 왜곡 ‧ 조작하고 또 사라지게 만든 우리의 역사와 문화, 사상, 종교, 철학, 생활습관 등 우리겨레 전반에 걸친 참된 발자취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한다. 결코 자신들이 그 동안 연구해온 것만 고집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겨레의 발자취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편견 없이 대하여 비교분석을 해야 한다. 그 속에서 진실된 사실의 발자취를 찾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위에 인용한 후조선(後朝鮮) 숙종시기(肅宗時期)를 살았던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와 고려시대(高麗時代)를 살았던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기록하고 있는 우리겨레의 개천(開川)에 대한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 어떤 내용에서는 똑같다. 어떤 면에서는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가 더 정교하고 정밀하며 구체적이다.
물론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에는 현대인들이 좀 이해를 할 수 없다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가지고 위서(緯書)니 허위(虛僞)니 하면서 터부시하지 말고 그 기록에서 실재(實在) 했던 발자취를 찾아내야 한다.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겨레의 발자취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후세들의 의무이자 임무인 것이다.
위에 인용한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에 대해서는 추후 상세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상세히 해석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겨레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여 년 전의 발자취를 고증(考證)을 하고, 또 그 시대 즉 신시(神市) 제 14대 ≪자오지 한웅≫의 존재(存在)에 대한 역사적(歷史的) 실체(實體)를 밝혀내는 것이다. ≪자오지 한웅≫이 우리의 위대(偉大)한 조상임을 고증(考證)하기 위해 모든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비교분석을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바로 삼국유사나 규원사화 한단고기 등에 기록된 개천의 사실에 대해 고증을 해야 한다. 그 자료들의 기록된 내용들 중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면밀히 비교분석을 하면 역사적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와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 중에서 아래 기록은 일치를 한다.
“한 큰 주신은 네 번째로 환웅천황에게 명을 내려 “이제 사람과 그 밖의 만물을 다 만들었으니, 수고하여 만든 것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무리를 이끌어 인간 세상에 내려가 하늘을 이어받아 가르침을 세우고, 만세토록 후손의 모범이 되게 하라”고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천하에 펴라”고 명했다.
환웅천황은 기쁘게 명을 받들어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풍백과 우사와 운사 등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의 박달나무(檀木) 아래로 내려왔다. 태백산이 곧 백두산이다.”
북애노인(北涯老人)은 규원사화 조판기(肇判記)에서는 ≪한 큰 주신≫은 곧 ≪한인(桓因)≫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위 “한 큰 주신은 네 번째로 환웅천황에게 명을 내려”라는 내용은 곧 한인(桓因)이 한웅(桓雄)에게 명을 내렸다는 말이다.
“무리를 이끌어 인간 세상에 내려가 하늘을 이어받아 가르침을 세우고”라는 기록은 두 가지로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첫째는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弘益人間”의 누리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즉 평소 한인(桓因)의 자식 무리 중에 하늘 아래 사람 세상에 내려가 ≪탐구인세(貪求人世)≫ 즉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는데 한인(桓因)이 한웅(桓雄)의 이 뜻을 알고 세상에 나아가 그 뜻을 널리 펼치라고 명을 하였다는 것과 동일하게 해석을 할 수 있다.
둘째는 삼신(三神)의 뜻을 받들어 사람들에게 삼신(三神)으로 교리를 세워 질서를 회복하고 사람들이 삼신(三神)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교화(敎化)하라는 것이다. 즉 누리에 살아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가 각각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살아갈 수 있도록 교화(敎化)를 하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개천(開川)에 대한 기록에서 중요한 것들을 알 수 있다.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왜 한웅(桓雄)이 ≪탐구인세(貪求人世)≫의 뜻을 품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이 되어있다.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의 開川에 대해서는 아래에 설명이 있을 것이다. 또 여기에서는 인용을 하지 않겠지만 신라(新羅)의 관설당 박제상(朴堤上) 선생(先生)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서도 왜 한웅(桓雄)이 ≪탐구인세(貪求人世)≫의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기록이 되어있다. 하지만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한웅(환웅(桓雄))이 왜 ≪탐구인세(貪求人世)≫의 뜻을 품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에서는 한웅(환웅(桓雄))이 왜 ≪탐구인세(貪求人世)≫의 뜻을 품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큰 주신(한인, 桓因)이 한웅(桓雄)에게 내린 네 가지의 명은 바로 왜 한웅(환웅)이 ≪탐구인세(貪求人世)≫의 뜻을 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얼핏 보면 창조론(創造論) 같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원시사회(原始社會) 혹은 고대사회(古代社會)에서 대자연(大自然)에 적응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대자연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살아갈 수 있게 대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한웅이 펼치겠다는 것이 바로 ≪탐구인세(貪求人世)≫의 뜻을 품은 것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북애노인(北涯老人)은 규원사화(圭園史話) 조판기(肇判記)에서 구체적으로 기록을 통해 후세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규원사화(圭園史話)에서도 역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이다. 이는
“삼계(三界)”
“다만 천지 사이에 당연히 만물의 어른을 두어야 하는데 그 이름은 사람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과 함께 삼재(三才)가 되고 만물의 주인이 되느니라.”
“이제 신령하고 빼어난 것을 이끌어 내게하고 곧고 밝은 것을 드러나게 하여 많은 생물들 중에 사람을 낳게 하므로 그가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느니라. 그런데 이 일은 반드시 먼저 자격을 갖춘 후에 하여야 한다”
“천지의 신령하고 빼어난 성과 곧고 밝은 기를 분별하여 많은 사람을 만들어 내게 했다.”
“천부인(天符印) 세 개”
“풍백과 우사와 운사 등 삼천 명의 무리”
“임금” 등은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삼신오제본기의 핵심적인 내용들과 동일하다.
참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똑같음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인용을 한 부분들을 간략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 땅, 사람 가운데 사람이 주인이요, 사람이 곧 하늘과 땅, 천지만물의 주인이 된다. 천지만물의 주인인 사람은 주인으로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천지의 신령함과 빼어난 성(性)과 밝은 기 가져야 한다.
우리가 그동안 논증을 한 삼신오제본기에서의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위 규원사화에서 기록을 한 내용이다. 즉 천일(天一) ‧ 지일(地一) ‧ 태일(太一) 중에 태일(太一, 사람)이 으뜸이다는 사상(思想)이자 종교(宗敎)의 교리(敎理)이다. 바로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에서도 이를 크게 강조를 하고있으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또한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에서는 비록 사람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주인이기는 하지만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도리(道理) 혹은 이치(理致)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즉 사람이 천지만물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천지의 신령함과 빼어난 성(性)과 밝은 기(氣)”를 갖추어야 하며 이를 갖추기 위해 사람은 끈임 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람이 가야할 ≪길(道)≫이자 ≪이치(理致)≫인 것이다. 이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주인인 모든 사람들을 한 없이 사랑하고 끝없이 포용을 하며 사람들을 한없이 존중을 하며 모두가 하나가 되는 삶 즉 ≪우리≫라는 인식(認識) 속에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바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의 핵심(核心)이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사람이 누리에 존재하는 한 변할 수 없는 자연법칙(自然法則)과도 같은 진리(眞理)인 것이다. 규원사화에 대한 해제는 후일 상세할 것이다.
3) 한단고기(桓檀古記)의 신시개천(神市開天)
(1) 삼성기전 상편(三聖記傳 上篇)
❝ 뒤에 한웅(桓雄)이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원문:子井女井)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 천부(天符)의 징표¹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五事)²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神市)³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⁴이라 불렀다. ~중략~ 또 여러 영험스러운 이들과 뭇 철인(哲人)들이 보필하도록 하시더니 웅씨(熊氏)의 여인⁵을 거두어 아내로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매, 짐승 가죽으로써 폐물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고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蚩尤天王)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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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上部) 첨자 해제- 한단고기 임승국 주역을 기초로 해제
천부(天符)의 징표: 천부인(天符印)에 대해서 세상의 억측이 구구한 바 있으나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世傳桓雄天王巡駐於此佃獵以帝風伯天符刻鏡而進雨師迎鼓環舞雲師佰劍陛衛蓋天帝就山之儀 仗若是之盛嚴也
세전환웅천왕순주어차전렵이제풍백천부각경이진우사영고환무운사백검폐위개천제취산지의 장약시지성엄야
“이는「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웅천왕이 이곳에 들러 머무르시며 사냥도 하고 제사(祭祀) 를 지냈다고 하는데, 풍백은 천부를 새긴 거울을 들고 앞서서 나아갔고, 우사는 북을 쳐 서 울리며 주변을 돌면서 춤을 추었고. 운사는 백 명의 무사를 데리고 대장의 검으로 호위 하였으니, 무릇 천제가 산으로 갈 때의 의장 행렬이 이와 같이 성대하고 엄중하였다」 라는 의미이다. 이로보아 천부인 세 가지는 바로 거울과 북과 칼이 될 것이다.
2. 다섯 가지 일(五事): 오사는 곡(穀) ‧ 명(命) ‧ 병(病) ‧ 형(刑) ‧ 선악(善惡)을 말하니 곡식(穀食) ‧ 생명(生命, 운명) ‧ 치병(治病) ‧ 형벌(刑罰) ‧ 선악(善惡, 윤리)을 뜻하는 것이다. 일본의 가지마 노보루(녹도 승)은 5사를 모(貌- 얼굴) ‧ 언(言- 말하다) ‧ 청(聽- 듣다) ‧ 시(視- 보다) ‧ 사(思- 생각하다)를 뜻한다고 했으니, 이는 한단의 옛 기록을 접해보지 못한 외국인의 견해일 뿐이다. 특히 ≪참전계경(參佺戒經)≫에는 이 5사가 발전하여 366사의 이화(理化)조목들이 즐비하게 나타남도 참고할 일이다.
여기서 참조할 것은 오사에 대해서 삼국유사에서도 주곡(主穀) ‧ 주명(主命) ‧ 주병(主病) ‧ 주형(主刑) ‧ 주선악(主善惡)이라고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개천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나 규원사화나 한단고기 등 모든 기록이 대동소이하다. 물론 삼국유사보다는 규원사화나 한단고기들이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록을 남겼다.
오사는 삼신오제본기의 오제설의 북방의 현구(생명), 남방의 주작(주병), 동방의 청룡(곡식), 서방의 백호(주형), 중방의 황웅(주선악)이 맡아하는 역할과 임무가 일치한다.
3. 신시(神市) : 신불로 읽어야 된다는 주장도 일부에 있다(필자의 견해도 동일하다.). 시(市)와 불(市)은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러나 신불 혹은 검불(神을 검으로 읽음)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한 듯하여 여기서는 신시로 읽는다. (참고로 임승국 자신도 신시를 밝달나라라고 뒤에서는 해석을 하고 있으며 개천일 역시 신시개천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4. 배달(倍達): 본 언어에 대한 해석은 그동안 충분히 했으니 여기서는 중요한 부분만 올려준다.
“ ~ 전략 ~ 그러나 작고한 복초(伏草) 최인(崔仁)같은 이는 이 동방족설에 반론을 편 첫 학자인 것 같다. 그는 민족사의 출발이나 민족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논할 일이지 해가 뜨고 날이 밝고 어둡고 하는 미물 짐승들의 오관(五官)이나 본능에 의존한다고 하는 것은 민족사의 모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짐승과 사람의 차이는 바로 오관이나 본능이 아닌 사고하는 힘, 철학의 유무가 그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겨레가 동방족이기 때문에 해 뜨는 동쪽 동쪽으로 민족 이동을 계속했고, 환한 땅이라해서 환국(桓國) ‧ 환인(桓因) ‧ 환웅(桓雄)이라 했다는 설을 맹박한다. 복초 선생의 이 말은 옳은 듯하다. 적어도 우리 겨레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한님 → 하느님 곧 천신(天神)의 개념을 터득한 매우 종교적인 소질이 풍부한 민족이다. 때문에 한님 ‧ 하느님을 환한 땅의 임금으로 해석하려는 종래의 학설을 맹박한 복초의 학설은 지당한 것이다. 아무튼 여기 배달은 복초의 주장으로 보면 부당한 낡은 삭설에 속할 지도 모른다. 밝 → 배, 땅=달의 법칙에 좇아 밝달이 ≪밝은 땅≫으로 해석되고, 마침내 배달로 읽힌다는 배달의 어원만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5. 웅씨(熊氏)의 여인: ≪삼성기 상≫의 저자인 안함로는 아마도 웅녀라는 말을 피하여 <웅씨의 여인>이라는 표현을 한 듯하나 이는 커다란 고오이다. 물론 한웅의 배우자를 곰(동물 곰을 말함)으로 쓰기가 황송해서인 듯 하나 정작 곰녀 즉 웅녀란 말이 정당하며, 오히려 웅씨란 말이 국조를 모독하는 말임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웅연대엔 씨‧성제도가 생기기 전이니 웅씨의 여인이라 하면 도리어 가공의 인물이거나 날조된 역사 사실이 되는 웃지 못 할 모독 기사가 되는 것이다.
중국 양자강 남쪽에서 일어난 초(楚)(?~B.C.223년) 나라의 왕족이 마침 웅씨인지라 여기 웅씨를 저 초나라 여인으로 비정하는 학설로까지 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사람은 곰녀를 해석하기로 곰 가죽으로 옷을 해서 입는 부족의 딸로 제법 그럴 듯하게 해석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곰 토템을 믿는 부족의 딸이라고 해석하여 흔히 곰토템설로 얼버무리려고 하나 다만 상상에 따른 해석일 분이다.
곰녀의 곰이란 말은 한웅의 한과 대칭이 되는 말로, 한이 ≪하늘(天)≫의 준말이라면 곰은 ≪땅(地)≫의 다른 이름이다. 한님이 하느님이니 곰녀는 곧 곰님의 여자이다. 女자가 붙은 것은 ≪웅(熊)≫자의 대칭이 되는 글자가 계집≪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대인들은 땅의 신을 곰(검, 감, 금)이라 불렀으니 웅씨의 여인이란 결국 지신족(地神族)의 여인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참고로 말한다면 일본 말은 신을 ≪가미ヵミ≫라 하고 꼭대기도 〈가미〉, 머리(首)나 머리털(髮), 황(皇), 두(頭), 정(精), 상(祥), 비(秘), 신(神) 등을 모두 〈가미〉라고 읽으니, ≪감≫에서 비롯된 말이며, 아이누 말의 신(神)도 〈가뮈〉라 하다.
우리말의 검줄 즉 산실 앞에 두르는 새끼줄을 신색(神索)이라 적으며 ≪검줄≫이라 읽으니 신의 음이 곧 검이며, 제단 앞에 까는 노란 흙을 신토(神土)라 적고 이를 ≪검토≫라 읽으니 이도 신과 검의 뜻이 같다는 말이다.
저 왕검이나 백제의 고을 고마성(固麻城)도 모두 ≪감≫에서 비롯된 검, ≪고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말에도 얼마든지 있는 ≪감=신≫의 용법을 무시하고 곰새끼(동물 곰의 새끼) 타령일랑 이제 지양돼야 한다. 이 곰년 한웅의 기사야말로 우리민족의 민족종교 내지 민족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귀중한 기록임을 되새겨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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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 ≪하늘(天)≫의 준말이라면 곰은 ≪땅(地)≫의 다른 이름이다”를 다시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의 해석을 할 수 있다. 즉 ≪한= 하늘 = 하늘 신(天神)≫이고 ≪곰(감, 금, 검)= 땅= 땅 신(地神)≫이 된다. 여기서 ≪하늘= 천신(天神)= 한웅(桓雄)≫, ≪땅= 지신(地神)= 곰녀(熊女)≫이다. 따라서 ≪한웅≫과 ≪웅녀≫의 혼인은 ≪하늘 + 땅≫ ‧ ≪천신(天神) + 지신(地神)≫의 관계가 성립을 한다. 따라서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따르면 ≪하늘 + 땅≫ ‧ ≪천신(天神) + 지신(地神)≫의 관계로 태어나는 것은 당연히 ≪사람= 임금≫이 된다. 즉 ≪단군조선≫의 제1대 임금의 탄생으로 “하늘, 땅,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는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를 완성(完成)하고 있다.
이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의해서 삼국유사(三國遺事)나 다른 역사서(歷史書)에 나오는 밝달 임금의 탄생설(誕生說)에서 기록하고 있는 ≪곰녀(熊女)≫는 당연히 ≪땅 신≫의 딸이 된다. 절대 동물 곰의 딸이라거나 곰을 숭배하는 족속의 딸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역사서들에서 언급을 하고 있는 신시개천(神市開天)의 과정과 또 ≪밝달 임금≫의 탄생설(誕生說)(誕生說)을 무슨 토테미즘으로 해석을 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조상들께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다. 또한 절대 단군신화(檀君神話)도 아니다. 이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본 해석은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은 완벽하게 증명을 해준다.
❝ 고려팔관기(高麗八關記)에 삼신설(三神說)이 있나니, 가로대 「상계」의 주신(主神)은 그 호를 천일(天一)이라 하나니, 조화를 주관하시며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신다. 무형으로써 형으로 삼으며,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성(性)을 통하게 하시느니라. 이를 청진대(淸眞大)의 체(體)라고 한다. 하계의 주신 그 호를 지일(地一)이라 한다. 교화(敎化)를 주관하며 지선유일(至善唯一)의 법력이 있어 하는 바 없이 만들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명을 알게 하니, 이를 선성대(善聖大)의 체라고 하니라. 중계(中界)의 주신은 그 호를 태일(太一)이라 한다. 치화(治化)를 주관하며 최고무상의 덕량(德量)을 가지고 말이 없으면서 교화하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정(精)을 보전하게 하니 이를 미능대(美能大)의 체라 하느니라.
한인씨(桓因氏)는 한 번 변화하여 칠이 되며, 두 번 변하여 육이 되는 운을 받아 애오라지 어버이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에 쏟으매, 천하가 이에 교화된다.
신시씨(神市氏)는 천일의 생수(生水)와 지이(地二)의 생화(生火)의 자리를 계승하여 애오라지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하매, 천하가 이에서 배운다.
왕검씨(王儉氏)는 지름이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이인 3‧14의 기(氣)를 받아 애오라지 왕의 도를 써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한다. ❞
한인씨(桓因氏)는 하늘(天)이고 한웅(桓雄)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신으로서 하늘신과 땅 신을 동시에 겸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한웅(桓雄)은 천신(天神)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땅신을 섬기는 족속인 ≪웅씨, 곰족(감, 검, 금)≫ 곧 땅 신의 딸과 혼인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 합하여 새로이 태어나는 후손 즉 단군조선을 건국한 분은 사람 신(人神)인 ≪임금≫이 된다.
우리는 우리겨레의 역사적 시초를 연 기록들에 대한 해석을 함에 있어서는 여러 자료들을 동시에 비교분석을 해야 하며, 또 가장 중시를 해야 할 것은 그 기록들이 의미 하는 바 바로 우리겨레의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의 원리(原理)와 전달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을 하면서 해석을 해야만 정확하나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낼 수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삼국유사(三國遺事)나 규원사화(圭園史話) 그리고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三聖記傳) 모두 신시개천(神市開天)과 밝달 임금의 탄생(誕生)에 대한 기록들은 모두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의 원리(原理)와 전달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을 하였다.
“천부(天符)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五事)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라고 기록을 하여 한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의 한인, 한웅, 임금의 도리인 한웅의 교화지치(敎化之治)를 베풀었다는 것과 똑같은 기록을 하고 있다. 물론 후조선(後朝鮮) 숙종2년 을묘 3월 상순에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쓴 규원사화(圭園史話)에도 역시 신시개천(神市開天)에 대한 기록에서 한웅(桓雄)이 ≪교화(敎化)≫를 베풀었다고 하였다.
삼성기전 상편 신시개천의 기록에서도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蚩尤天王)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으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을 누리더라.”라고 함으로서 신시 제14대 한웅인 ≪자오지 한웅≫의 신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역시 ≪자오지 한웅≫이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2)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下篇)
❝ 한국의 말기에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三危)와 태백(太白)¹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²할 곳이로다」 하시며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오가(五加)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庶子) 한웅(桓雄)⁴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하니 마침내 천부인 세 가지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지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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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上部) 첨자 해제- 한단고기 임승국 주역을 기초로 해제
삼위와 태백: 중국 감숙성 돈황현에 있는 삼위산과 백두산을 가리킨다. 중국지도에서 삼위산과 태백산 사이야말로 옥야 만리의 기름진 땅이다. 이를 삼신산인 태백산이라고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하는 학설도 있으나 잘못이다. 특정 종교의 교리를 위하여 역사를 왜곡함은 잘못이다. 삼위는 현재의 중국지도에도 나타난 지명이다.
첫째-필자의 해제- 삼위(三危)는 삼신(三神)을 말한다. 즉 천신(天神) ‧ 지신(地神) ‧ 인신(人神)을 말한다. 이 삼위설(三危說)은 천주교의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에서도 나온다. 천주교의 삼위일체설이 어디에서 기원을 했는지 알만하다. 따라서 삼위는 곧 삼신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태백은 바로 ≪밝메(뫼)≫을 말한다. ≪밝메(뫼)≫는 우리겨레가 신성한 뫼(메) 또는 조종의 뫼(메)로 받아들이는 ≪백두산≫이 된다. 물론 우리겨레들은 자신들이 옮겨가서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신성한 산(뫼, 메)이라고 여기는 산들은 모두 ≪밝메(뫼)≫라는 이름을 붙였다. 따라서 저자가 밝히는 감숙성에 있는 삼위산과 백두산만이 ≪밝메(뫼)≫가 아니다. 본 문제도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을 해제를 하면서 상세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겨레가 신성한 뫼, 조종의 뫼로 받아들이는 ≪밝메(뫼)≫인 ≪백두산≫은 우리겨레뿐 아니라 금나라를 건국한 여진족 역시 자신들 민족의 발상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우리가 여진족이라 하니 마치나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민족인 듯 받아들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여진족은 우리와 같은 겨레이다. 김교헌 선생 역시 여진족은 우리와 같은 겨레로 고증을 하고 있다.
여진족들이 근거지로 하였던 만주지역은 지금까지 고증을 해오고 있는 신시개천 → 단군조선 부여조선 → 삼조선 → 고구려시기까지 한 강토였고 한 민족이었다. 따라서 여진족이요 거란족이요 하는 종족의 이름들은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민족은 하나이지만 그들이 사는 장소에 따라 불리워진 이름일 뿐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 옳다. 요즈음 분단이 되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지만 남과 북은 한겨레 이다. 하지만 부르는 이름은 남쪽에서는 북한 사람,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반면 북(조선)에서는 남조선사람, 공화국사람으로 부른다. 또 남쪽에서만 해도 경상도사람, 전라도사람, 충청도사람, 경기도사람, 서울사람 ‧‧‧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들 각기 다르게 불리워지는 사람들이 한 나라를 이루고 살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수백 혹은 수천 년 갈라져 살아간다면 그들은 점차 풍습이 달라지고 쓰는 말도 달라져 결국 다른 민족인 것처럼 변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아무리 갈라져 살아가는 세월이 오랫동안 지속이 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 하나하나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을 하고 연구를 하면서 그들과 우리겨레와의 연관성을 찾아야 하며 먼 옛날에는 한겨레였다는 것을 고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의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우리겨레의 조상들마저도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 우리와 같은 겨레였던 종족들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민족이라고 함으로서 우리겨레의 뿌리와 발자취를 찾아내고자 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본 연재는 이러한 편견을 없애고 우리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발자취를 찾아내고자 시도를 하는 것이다.
2.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인간의 한국사의 건국 이상이니, 바로 널리 인간세상을 유익하게 한다는 뜻이다. 단군과는 관계없다. 개천절을 기념함도 이상하거니와 홍익인간을 들먹이는 것도 또한 걸맞지 않는 말이다. 한님 또는 안파견의 다스림의 이상이 바로 홍익인간이었거니와 이 이상보다 더 고원한 인류의 이상이 어디 있겠는가? 일찍이 백낙준 박사는 이를 영역하여 「The maximum service for the benefit of humanity」라고 했다.
필자의 주석- 필자는 홍익인간사상(弘益人間思想)을 어떤 한 위대한 위인만이 배풀 수 있는 사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즉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 함은 온 누리에 존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된다는 것이다. 또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어차피 우리의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모든 사람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존재(存在)로서 귀중(貴重)하고 소중하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사람 하나하나는 각각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되어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해석을 한다. 즉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我, me)”가 아니라 “우리(we- 영어 복수형인 we와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굳이 영어에서 찾으려니 마땅한 단어가 we밖에 없다)”가 되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겨레의 삼신사상(三神思想)의 핵심(核心)이고 바로 홍익인간정신(弘益人間精神)의 올바른 해석이 된다. 본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해서는 후일 따로 연재를 할 것이다.
3. 오가: 고조선의 벼슬 이름에 다섯 사축의 이름이 있어 중국인들이 괴이쩍게 생각한 고사(古事)가 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즉 우가(牛加), 마가(馬加), 구가(狗加), 저가(豬加), 양가(羊加)를 뜻한다.
필자의 주석: 역시 단군조선(檀君朝鮮, 밝달나라)의 관직명(官職名)인 오가(五加) 역시 삼신오제설(三神五帝說)의 오제설(五帝說)을 그대로 받아들여 설치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겨레는 우리겨레의 삶 모든 삶의 방식 심지어 사고방식까지도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 그리고 그를 구체화(具體化)시킨 오제설(五帝說)속에서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물론 현재도 마찬가지 이다. 이는 삼신오제설(三神五帝說)이 변하지 않는 불변(不變)의 진리(眞理)임을 말해주고 있다.
위 오가(五加)는 우리의 ≪윷놀이≫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윷놀이는 바로 삼신오제설(三神五帝說)의 원리 그리고 실천하는 길을 놀이로서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또한 윷놀이는 우주(天地)만물의 이치를 놀이로서 만든 것이다. 윷놀이 판은 원(圓, 하늘, 천) ‧ 방(方, 땅, 네모) ‧ 각(角, 사람, 세모)을 그려 넣은 것이다. 즉 윷놀이 판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삼신일체(三神一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윷놀이 판을 그릴 때 바깥쪽은 절대 네모로 그리면 안 된다. 반드시 둥글게(하늘, 天) 그려 넣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즈음 윷놀이 판 바깥쪽을 사각으로 그려 넣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전통사상(傳統思想)인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대단히 잘 못된 현상이다. 이 점은 북쪽 역시 마찬가지 이다. 북에서 윷놀이를 하는 판을 보니 모두 윷놀이 판 바깥쪽이 사각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대단히 잘 못된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러한 현상들을 고쳐가야 한다.
4. 서자 한웅(桓雄): 서자를 오늘 날 민법상의 적서(嫡庶- 적자와 서자) 관계로 봄은 잘 못이다. 어떤 이는 시베리아에 부레벤노에라 일컫는 〈서자들의 마을〉이란 뜻의 촌락이 있고, 한웅은 바로 〈서자촌〉의 아들이라고 하는 기발한 학설을 말하나 신빙성이 없다. 또 다른 이는 고조선의 인본주의를 표하는 말로 천한 서자를 건국 사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사가의 휴매니티를 극찬하고 있으나 그 학설도 좀 이상하다. ≪서(庶)≫라는 글자에는 뭇 ‧ 온갖 ‧ 여럿의 뜻도 있으므로 황태자 아닌 뭇 아들 가운데 한 사람 혹은 황태자가 아닌 왕자의 뜻으로 해석하면 무난할 것으로 본다.
필자의 주석: 위 두 가지 학설 첫째, “시베리아에 부레벤노에라 일컫는 〈서자들의 마을〉이란 뜻의 촌락이 있고, 한웅은 바로 〈서자촌〉의 아들이라고 하는 기발한 학설”과 둘째, “고조선의 인본주의를 표하는 말로 천한 서자를 건국 사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사가의 휴매니티를 극찬하고”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첫 번째 학설인 “시베리아에 부레벤노에라 일컫는 〈서자들의 마을〉이란 뜻의 촌락이 있고, 한웅은 바로 〈서자촌〉의 아들이라고 하는 기발한 학설”은 기발한 것도 아니고 또 다시 도지는 그 고약한 일제(日帝)가 악랄(惡辣)하게 왜곡(歪曲) ‧ 조작(造作)한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 종교적(宗敎的) 믿음을 가지고 우리겨레의 건국과정(建國過程)과 종교적(宗敎的) 믿음 그리고 사상(思想) 철학(哲學) 등이 시베리아로부터 왔다는 점을 논증하기 위해서 그러한 황당한 학설을 주장하려는 것이 확실하다. 이에 대해서는 고려할 아무런 가치도 없다.
두 번째 학설 “고조선의 인본주의를 표하는 말로 천한 서자를 건국 사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사가의 휴매니티를 극찬하고”라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정말 코웃음 밖에 나지 않는다. 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해석을 할 가치조차도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 역사학계의 참담한 현실이다. 물론 다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주장을 한 학자들이 바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후학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러운 점이다. 물론 임승국 선생이 본 한단고기를 주역하던 때가 1980년대 중반이니 솔직히 지금은 위의 학설을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필자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학설 아닌 억지주장을 한 사람들이 교수들이었다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다. 혹 이러한 주장을 한 학자를 스승으로 둔 후학들이 또 다시 강단에 서서 이를 확대재생산을 한다면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상 종교 철학 생활사 등은 완전히 난장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긴 오늘 날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저렇게 황당한 주장을 한 학자들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배달겨레의 얼과 넋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저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한 학자들의 공헌이 컸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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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下篇)에서 기록한 신시개천(神市開天)에 대한 내용 앞서 본 삼국유사(三國遺事), 규원사화(圭園史話), 삼성기전(三聖記傳) 상편(上篇)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아니 똑같다.
먼저 “안파견이 밑으로 삼위(三危)와 태백(太白)을 내려다보시며”는 다른 사서들에서 “한인(桓因)이 한웅(桓雄)의 뜻을 알아차리고 하늘 아래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았다”는 내용과 일치를 한다. 또 “모두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곳이로다.”라는 내용은 다른 사서들의 내용과 똑같다. 토씨까지 똑같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자(庶子) 한웅(桓雄)”이라는 내용 역시 단어까지 똑같다.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찍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라는 문장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비록 선후(先後)가 바뀌기는 했지만 한웅(桓雄)이 하늘 아래 땅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뜻을 품고 있었다는 ≪탐구인세(貪求人世)≫과 똑같은 내용이다. 여기서도 역시 그 이념은 한웅(桓雄)이 스스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되어 사람들을 널리 구제하겠다는 뜻을 품었다는 데 그 방점이 있다. 역시 신시개천(神市開天)의 이유가 홍익인간사상(弘益人間思想)의 구현(具現)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마침내 천부인 세 가지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지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였다.”
한웅(환웅)에게 내려준 “천부인 세 가지”는 모든 자료에 동일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또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지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라고 하였다.”는 문장은 규원사화(圭園史話)와 판에 밖은 듯이 똑같다.
규원사화(圭園史話)에는 “이제 사람과 그 밖의 만물을 다 만들었으니, 수고하여 만든 것들을 아까워하지 말고 무리를 이끌어 인간 세상에 내려가 하늘을 이어받아 가르침을 세우고, 만세토록 후손의 모범이 되게 하라”고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천하에 펴라”고 명했다.
위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下篇)과 후조선(後朝鮮) 숙종때 사가(史家)인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지은 규원사화(圭園史話)의 내용이 똑같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후조선시대(後朝鮮時代) 사가(史家)인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참조하여 쓴 자료 역시 삼성기전(三聖記傳)의 자료를 이용할 수도 있을 수 있겠고 또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下篇)을 인용한 자료를 북애노인(北涯老人)이 참조하여 규원사화(圭園史話)를 집필(執筆)했기에 이와 같이 똑같은 내용이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위 부분은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下篇)과 규원사화(圭園史話)만이 그 내용이 똑같다.
물론 다른 자료들은 앞선 장들에서 간단히 보았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누리가 매우 혼돈(混沌)이 되어있어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매우 어지러웠다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어지럽고 혼돈스러운 누리를 한웅(桓雄)이 개천(開天)을 하고 신시(神市)를 열어 질서 있고 안정된 누리를 세움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안장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음으로 모두 그를 신으로 받들었다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내용들이지만 구체적(具體的)으로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전(三聖記傳) 하편(下篇)과 규원사화(圭園史話)의 조판기(肇判記)의 내용 똑같은 것처럼 일치하지는 않다.
※※※ 신시개천(神市開天)의 자료를 옳게 이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시개천(神市開天)이 역사적 사실(事實)로서 논증(論證)이 되어야 ≪자오지 한웅≫이 신시 제14대 한웅으로 실재(實在)를 했으며 또 ≪신시(神市)≫가 우리겨레의 역사(歷史)라는 것이 증명(證明)이 되어야 ≪자오지 한웅≫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 논증(論證)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 주 한 주 정도 더 신시개천(神市開天)에 대해 연재를 하고 그 다음 연재에 자오지 한웅에 대해 연재를 한다.
신시개천(神市開天)이 실재(實在)했던 역사(歷史)로 논증(論證)을 하고 또 신시(神市)의 제14대 한웅(桓雄)인 ≪자오지 한웅≫이 우리겨레의 조상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면 ≪자오지 한웅≫의 위대한 업적 즉 ≪전쟁(戰爭)의 신(神)≫으로 후세대(後世代)들이 떠받들고, ≪벽사(辟邪)의 신(神)≫으로 받들어 모셨던 사실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그 동안 잘 못 알려진 귀면(鬼面- 귀신의 얼굴)이니 귀면와(鬼面瓦-귀신 얼굴이 그려진 기와)니 도깨비니 하는 등의 학설들이나 이론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를 하고 우리의 올바른 역사(歷史)와 문화(文化) 사상(思想) 철학(哲學) 생활습관(生活習慣) 등을 회복하는 길이다.
장승(長丞) 역시 마찬가지 이다. 현재 신시개천(神市開天)과 ≪자오지 한웅≫에 대해 논증(論證)을 하는 것은 장승(長丞)의 외형(外形)이 바로 신시 제14대 한웅인 자오지 한웅을 외형적(外形的)으로 형상화(形象化) 시켰다는 것을 증명(證明)하기 위해서이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본 문제에 대한 논증은 그 동안 장승신앙(長丞信仰)과 장승문화(長丞文化)가 이민족(異民族)이 창작(創作)하고 우리겨레에게 전해졌다는 학설(學說)이나 이론(理論)에 대한 강력한 반론(反論)이 되기 때문이다. 즉 본 문제를 제대로 논증(論證)을 하면 장승신앙(長丞信仰)과 장승문화(長丞文化)는 우리겨레가 창작(創作)하고 믿어온 고유(固有)의 신앙(信仰)이요 믿음이며 거꾸로 장승신앙(長丞信仰)과 장승문화(長丞文化)가 이민족(異民族)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을 증명(證明)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 4347(서기 2004)년 10월 12일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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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술자료총서, 장승 신앙1(학술논문집, 도서출판 터 우리마당, 2001년 11월 30일)
우리문화 기행 중 ≪풀어낸 비밀 속의 우리문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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