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일요일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 반세기만에 무죄


네티즌 “박근혜 사과하라!” “부끄러운 사법부” 맹비난
김현정 기자  |  luwakcoffee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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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1  09:57:03
수정 2015.06.01  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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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최대 치욕사인 ‘인혁당’ 사건이 유죄 판결을 받은 지 반세기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다.
대법원(3부 주심 대법관 권순일)은 지난달 31일 故 도예종씨 등 ‘1차 인민혁명당 사건’에 연루된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 관련자에 대해선 이미 오래전에 사형이 집행돼 사법부는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지난 1964년 박정희 정부는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리다 ‘1차 인혁당 사건’을 터뜨렸다.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1964년 8월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고 국가 변란을 기획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해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중이라고 밝혔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 정부는 정치적으로 위기국면을 맞을 때마다 ‘색깔론’을 꺼내들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1차 인민혁명당, 2차 인민혁명당 사건이다. 당시 1차 인혁당 사건의 담당 검사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검찰 지휘부가 중앙정보부의 기소송치의견서를 그대로 옮겨 기소를 강행했다. 그러자 담당 검사들은 일제히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1심에서는 일부 유죄 판결을 내렸고, 2심에서는 전원 유죄 판결을 내렸다. 1965년 9월 2일 대법원도 2심 판결을 받아들여 유죄로 확정했다.
  
▲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 <사진제공 = 뉴시스>
이후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어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유신정권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자 박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1974년 이른바 ‘2차 인혁당 사건’을 터뜨렸다. ‘1차 인혁당’ 관련자였던 당시 상주고 교사였던 故 도예종 씨 등 8명을 재판에 회부, 도씨 등 8명(도예종·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판결이 내려진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민주정부 시절인 2007년~2008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지난 2011년 재심을 청구, 서울고법은 2013년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은 “피고인들은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에 의해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임의성 없는 자백을 했고, 검사 앞에서의 자백도 특별히 임의성이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으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검사 작성의 각 피의자신문조서 또는 피고인들 작성의 진술서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2015년 5월 29일 최종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1965년 대법원이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한지 딱 50년 만이다.
대법원은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위 피고인에 대한 구 반공법(1980년 12월 31일 법률 제3318호로 폐지 되기 전) 위반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 사건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민혁명당(인혁당)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인혁당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새누리당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뉴시스>
‘두개의 판결’ 주장하다 마지못해 사과한 박근혜 입장 내놓나?
한편, 아버지 시절에 벌어진 이 반인권적인 ‘사법살인’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시절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그 부분(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역사의)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발언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며 큰 위기를 맞은 적 있다.
이후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비판이 거세지자 기자회견을 통해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월 2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이 나온 일주일 후 판결에 관여한 판사 실명이 공개되자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이고 이는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과거 민청학련 운동을 하다 2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1974년 보통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故 여정남씨와도 함께 운동했던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측에 'go발뉴스'가 대법원 판결관련한 입장을 문의했으나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었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판결로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의 인혁당 판결 이후 사회 각계에서도 박 대통령의 사과와 이에 부역한 당시 사법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 인혁당 사건이 재심 청구를 통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한 사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트위터 화면 캡쳐.

  
▲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정권에 벌어진 인혁당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박 대통령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트위터 화면 캡쳐.
이재명 성남시장도 자신의 SNS에 “국가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국민을 살해한 흑역사”라고 비판했다.
  
▲ 대법원의 인혁당 사건 최종 무죄 판결에 대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트위터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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