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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일요일인 3일 더불어민주당(구 새정치민주연합)의 직전 대표를 지낸 김한길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이로써 구 새정치민주연합의 창업주들이 모두 당을 떠났다.
공동 창업주였던 안철수 의원이 앞서 탈당한 데 이어 같은 창업주였던 김 의원까지 당을 떠남으로 창당된 지 1년 10개월이 된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명까지 더불어민주당으로 교체, 진정한 문재인 당으로 거듭난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당에는 비 문재인계인 박지원 이종걸 주승용 등 상당수 비주류가 남아 있으므로
이들에게 문재인당이란 명칭은 상당히 거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더불어민주당에 남아도 떠나도 당의 주력으로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므로 어떻든 문재인과 그들 그룹이 원했다면 그대로 된 셈이다.
따라서 이들 비주류는 탈당하지 않고 당에 남을 경우 겉으로는 통합 운운하지만 급속하게 문재인계로
흡수되거나 공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공천을 받는다면 또 누구보다 친문행세를 할 수도 있다. 당 안에서 비주류 행세를
할 경우 어디서도 표를 얻을 수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의원 측은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며 창당 실무단을 조직 발표했고, 문
대표는 영입인사들을 발표하면서 “탈당의원 지역구에 신진들을 투입, 정면승부를 하므로 당을 개혁적 색깔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다. 즉 2000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16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당시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실패한 이회창 전 총재가 2년의 와신상담 끝에 1999년 당
총재로 전면 복귀하여 당권을 쥔 뒤, 당의 일정부분 지분을 가졌다는 구정치인들의 퇴출을 시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실패한
문재인 현 야당 대표가 2년 만에 당 대표로 복귀, 당에 일정지분이 있다고 하는 비주류들에 대한 압박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특히
당시 한나라당 상황과 현재 더불어민주당 상황도 비슷하다.
앞서 1997년 한나라당은 대선 가도에서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이란 거대 물결에 맞서기 위해
정치권 내 반 김대중 세력의 연합체를 구성했다. 즉 김대중의 정계복귀와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분당된 통합민주당이 1996년
총선에서 실패하면서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고 민주당, 통추 등으로 분산되어 이합집산 중이던 세력과의 통합이다. 당시 김대중의
국민회의를 거부하고 남은세력 전부가 이회창을 대선후보로 세운 신한국당과 합당, 한나라당이 되면서 조순을 총재로 옹립하는 여야 합당
정계개편을 선보인 것이다.
이들은 이회창의 대선 실패 후 한나라당을 이끈 조순총재 체제를 지탱한 주력이었다. 그러나 총재로
롤백한 이회창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이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명실공히 한나라당이 이회창 당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회창은 공천권을 통한 이들의 정리를 시도했다.
그리고 결국 직전 총재였던 조순, 통합민주당 대주주 이기택, 민정당-민자당 창당 주역으로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김영삼까지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은 ‘허주’ 김윤환, 이회창 자신과 대선후보 경선전을
뛰었던 이수성 전 서울대총장,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 전 의원, 바바리코트의 사나이 박찬종 의원 등 이회창의 총재
롤백과 대선 재수를 반대하는 주력들을 모조리 물갈이 대상으로 찍어 공천에서 배제하려 했다. 이에 이들은 극한 저항을 하다가 실제 그
같은 일이 벌어지자 모조리 탈당, 신당을 창당했으며 그렇게 창당된 민국당으로 총선에 출진, 자민련과 원내 3당 경쟁을 했다.
물론 당시 언론들도 이들이 원내 3당은 모르지만 최소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민국당은 지역구 1석(춘천 한승수) 정당득표 3.7% 획득으로 비례 1석(강숙자) 도합
2석을 얻는데 그치는 초라한 퇴장을 경험했다. 물론 당당한 원내 3당으로 DJP의 김대중 정권 한 축이던 자민련 또한 교섭단체에
미달하는 17석만을 획득하는 참패를 당했다. 반면 이회창이 이끈 한나라당은 133석을 얻으며 원내 1당으로 등극하는 대승을
거뒀다.
그러면 20대 총선도 과연 그런 현상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문재인은 ‘표적공천’운운하며 당당한 것인가? 그러나 아닐 것이다. 2000년과 반대로 나타날 공산이 더 크다. 상황이 그만큼 다르다.
첫째, 2000년은 이회창에 필적할 야권의 대선 후보가 없었다. 조순은 한나라당 총재로 당을
이끌 때 전혀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여 한나라당 주류 지지층에게 극심한 비토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표에게는
강력한 대선주자라는 이미지도 없고 되려 지지층 본류로부터 거부감이 더 강하다. 즉 당시 한나라당 지지본류는 이회창을 원했으나 지금
야당본류는 문재인 비토란 점이 다르다.
둘째, 물갈이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이에 시민사회는 총선연대라는 총 연합체를 구성, 정치인
물갈이를 주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사회단체까지 ‘친문반문’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특히 당시 같으면 시민사회단체로 남아 활동할
활동가들이 모조리 기성정당에 흡수되어 피아구분이 너무도 확실하다.
참고로 당시 총선연대가 ‘공천반대자로 정한 기준’은 금전적 부패, 선거법 위반 전력,
민주헌정질서 파괴 및 반인권 전력을 우선 적용하되, 의정활동의 성실성, 법안 및 정책에 대한 태도, 정치인의 기본자질을 의심할
만한 반의회적·반유권자적 행위 등이었다. 지금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혁신경쟁을 하는 기준과 유사하다. 그런데 2000년
당시는 시민단체가 했으므로 정당 내의 권력투쟁 형식이 아니었으나 문 대표 측의 방식이나 안 의원의 주장 등은 당내 권력투쟁으로
변질된 것이 다르다. 다시 2000년 상황을 보자.
당시 총선연대는 위 기준에 따른 각종 조사를 거쳐 2000년 1월 24일, 1차로 15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전·현직 국회의원 중 66명의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하고, 2월 2일 2차로 원외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46명의
공천반대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 명단은 기성정당의 공천 작업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단 총선연대가 선정한 총 112명의 공천반대자 중 여야 각 정당은 58명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이후 당의 공천이 마무리된 뒤 총선연대는 자신들이 낙천 대상자로 발표했음에도 공천을 받아서 출마한 낙선대상자 86명의
명단(낙천 대상자 중 공천된 64명에 22명 추가)을 또 발표했다.
이처럼 이들에 대한 공천철회 운동이 계속되자 이 과정에서 박준규 국회의장 등 전·현직 의원
10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래도 출마를 강행한 다선중진 현역의원 22명을 집중낙선대상자로 선정해 낙선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86명의 낙선대상자 중 59명이 낙선했다. 특히 수도권 낙선대상자 20명 중 19명을 낙선 시키는 등 수도권 낙선율이 95%에
달했고, 집중 낙선대상자가 대폭 낙마한 것은 놀라운 결과였다. 때문에 민국당이란 정당으로 정치적 재기를 노리던 기성 정치인들을
모조리 퇴출시킨 것이 2000년 16대 총선이다.
하지만 영남 지역 유권자들의 공고한 지역패권 유지 선거 성향을 깨지 못한 점은 한계였다.
총선연대의 낙천 낙선 운동에 영남 지역에서는 오히려 지역감정이 강화되어 주요 낙선대상이 된 한나라당 후보가 단 한 사람도 탈락하지
않았다. 이점이 이회창의 한나라당이 원내 1당이 된 주요한 근거기 되었다. 즉 영남 지역의 공고한 지역패권 추구성향 투표가
수도권까지 미쳐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묻지마 기표를 부른 것이다.
그런데 이점이 지금의 상황과 극명하게 다르다. 야권의 주류지역인 호남 유권자들이 달라져 있다.
그래서 16년 후인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분당 상황은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 문재인 대표는 지금 이 점을 오해하고 있다. 2000년
당시나 지금이나 영남 유권자들은 공고한 지역패권 유지 투표에 대해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고해졌으나 반대로 호남의 유권자는
이제 묻지마 투표라는 무조건적 반대투표의 고리를 벗어났다.
그러면 왜 지금 호남의 상황은 2000년 영남의 상황과 다른가? 이유는 ‘희망’의 존재 유무다.
2000년 영남 유권자에게는 이회창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가 2년 후 대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의 존재였다.
2016년 호남 유권자들은 문재인의 당을 지지하므로 1년 8개월 후 대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가 아닌 ‘다른 이(안철수… 또는 알파)’를 통한 ‘희망’을 기대하며, 그도 아니면 다시 5년을 기다려서라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갈구한다. 때문에 분당은 곧 희망이란 등식도 생기고 분당을 통한 야권교체의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그 현상이 신년 여론조사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 여론조사는 김한길의 탈당에 표적공천을 공언한 문재인의 언급은 부메랑이 될 것임을 말해주는
지표다. 지지율 20%가 확장을 하려면 부유하는 부동표를 견인할 ‘포용성’이 필요한데 문재인은 20%만을 안으로 가두는 행보와
언어를 구사하고, 그의 그런 행보와 언어구사에 공고한 팬덤현상을 보임으로 그 안에 모두가 갇혀버려 확장도 포용도 불가능으로
몰아내고 있다. 이점이 2000년과 2016년의 다름이다.
제1야당의 이론가들은 이점을 망각하면 안 된다. 망각하고 지금 대로의 행보라면 결과는 예측하건대 지금의 제1야당을 원내 3당으로 밀어 낼 공산이 크다. 20%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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