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미국이 별나서 오래전 발생한 외부 요인을 사망의 원인으로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한국도 정상적인 의사라면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외인사’로 기록해야 마땅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10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심폐 정지’로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록한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를 반박했습니다.
의사협회는 ‘진단서 작성 교부지침’ 등을 통해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의 증세라고 할 수 있고,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라며 ‘심폐 정지’가 직접 사인이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망의 종류는 직접적인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라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앞서 얘기한 미국의 사례와 같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아닌 당연한 의학적인 상식이라고 봐야 합니다.
‘양심적인 의사가 있었기에 알려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사건이 있습니다. 박종철 서울대 학생의 물고문 치사 사건입니다. 남영동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죽음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그를 처음 봤던 의사의 양심선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던 물고문 양심 선언 의사 오연상씨 ⓒ동아일보
처음 박종철군을 봤던 오연상씨(당시 나이 32세)는 기자에게 ‘사망 진단시 박군의 복부가 매우 부풀어 있었으며 폐에서 살아있는 정상인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수포음을 들었다’고 밝힙니다. 오씨는 ‘대공분실 조사실 바닥에 물기가 있었다’라며 물고문의 단서도 언급합니다.
박종철군의 부검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황적준 박사도 “물고문 도중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밝힙니다. 황 박사는 일기장을 통해 갖은 경찰과 정권이 얼마나 회유와 압박을 했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기도 합니다.
박종철군의 물고문을 세상에 알렸던 오연상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심선언을 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우리가 의사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의무이자 해야 할 일이었어요. 문제는 의료인이고 아님을 떠나서, 권력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겠죠. 그러니까 뭐 우리만 그 문제가 있겠어요. 형사도 죄를 지은 사람들을 잡아서 선량한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신조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일반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 국민을 때려잡는 그런 양상이 되어서 곤란했던 거죠.” (관련기사:인권의학연구소)
대한민국 의사라면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물대포에 의한 ‘급성 경막하 출혈’이고 ‘외인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의사의 의무를 다하고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97세 노인의 사망 원인을 55년 전 칼에 찔린 상처라고 기록하며 살인 사건으로 분류했던 미국의 모습이 그저 부럽기만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1987년처럼 의사를 향한 압박과 회유가 있지 않겠냐는 예상도 해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