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피폭선량 계산법으로 가려버린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피해

경주시 양남면 상라리 주민 오순자(72) 씨의 말이다.
그가 사는 집은 월성원전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으로 이사한 지 10년 정도 지난 2008년경 갑자기 딸이 갑상샘암 판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4년쯤 지난 2012년 막내아들도 갑상샘암에 걸렸다. 이어 2년 뒤인 2014년 오 씨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오 씨의 암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암이 림프샘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그래서 목의 3분의 2가량을 절개한 상태였다. 힘든 수술 뒤에는 합병증이 찾아왔다. 이곳에서 태어난 손자는 장애2급 판정을 받았다.
4일 서울 여의도 산림비전센터 11층 한국환경공단에서 열린 ‘월성원전 주민 건강피해 역학조사에 대한 원전주변 주민 건강영향조사 토론회’에서, 그는 토론장 탁자 위에 복용하는 약들을 올려놓고 이같이 애원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도 이것은 가족력이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꼭 언론 앞에서 이 말을 하고 싶다며 멀리 경주 양남면 상라리에서 상경했다. 하지만 토론회에는 어떤 방송사 카메라도 보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온 양남면 나아리 주민 황분희 씨는 “우리 동네가 350가구 정도 되는데, 거기 사는 7~800명 주민 모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된다. 물과 먹거리, 공기 모든 게 오염됐다.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나”라고 한탄했다. 황 씨 또한 수년전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남편도 최근 갑상선 질환이 생겼다. 그는 “원전피해 공동소송단(600여명 규모)에 참여하는 월성원전 인근 주민만 90여 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측은 여전히 ‘기준치 이하’이니 괜찮다고 한다.
황 씨는 “시골 집값이 서울 집값이 아니다. 그걸 한수원이 좀 사달라고 이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피해보상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재산을 좀 사달라고,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가서 살겠다고 요구하고 있다”라며 “그럴 때마다, 한수원은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미달이니 괜찮다’는 말뿐이었다”라고 전했다.

기준치 안 넘었으니 문제없다?
기계적 계산법으로 하는 거짓말
이날 토론회는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환경운동연합 주최로 환경부 후원을 받아 열렸다. 토론회 발제는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일어나기 힘들어 보이는 갑상샘암 피해가 월성원전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수원 측이 원전은 문제없다며 제시한 것은 항상 ‘기준치’였다. 월성원전 주민들 소변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고 있고, 그 농도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이들보다 수십 배가 높다는 조사결과도 나온 바 있음에도, 주민 방사선 피폭선량 및 원전 방사성물질 배출량이 기준치를 넘지 않았기에 문제없다는 식이었다.
최근에도 한수원 내부 보고서를 통해 월성원전 빗물 중 삼중수소(방사성물질) 농도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측정한 평균치보다 100배에서 1000배 높고, 월성 3호기 터빈건물 배수로에서는 리터(L)당 71만3천 베크렐(Bq)의 고농도 삼중수소 고인물이 발견됐다는 게 드러났음에도, 한수원은 “관측 우물 등에서 측정된 삼중수소 농도는 기준치를 넘지 않았다”며 원전은 문제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삼중수소가 우리 몸의 구성성분이 될 경우 우리 몸 안에서 핵붕괴 또는 핵종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 삼중수소가 DNA의 구성성분이 될 경우 핵종전환 과정에서 DNA를 100% 파괴한다는 의학자의 지적도 있다. (※관련기사:“삼중수소가 멸치, 바나나 수준? 아주 무식한 얘기...‘핵종전환’ 위험해”)
그런데, 몸에 축적된 삼중수소 농도를 예상하기 힘든 소변 조사로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넘지 않으니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치부하는 것이다.
‘물로서의 삼중수소’는 우리 몸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 곧바로 소변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변으로 나오지 않고 영양분으로 섭취된 삼중수소다. 백도명 교수는 원전에서 기체 또는 물의 형태로 방출된 삼중수소가 식물에 흡수되고,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탄수화물로 바뀌어, 그것을 사람이 먹게 되면, 에너지 또는 몸의 구성성분이 된다고 설명했다. ‘수소’와 ‘삼중수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몸이 삼중수소를 수소로 착각하고 받아들이는 셈이다. 이렇게 몸의 구성성분이 되어버린 삼중수소가 우리 몸에 머무는 시간은 물과 비교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유기물이 된 삼중수소가 우리 몸에 머무는 시간이 1년가량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서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소변에서의 농도뿐만 아니라 유기물로 우리 몸에 축적된 농도도 봐야 한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백 교수는 “우리 몸의 구성성분이 된 삼중수소의 농도를 측정한 연구·조사 결과를 국내에서는 본 적 없다”라고 말했다.
토론회에서, 백 교수는 원전의 위험성을 가리는 주민피폭선량 측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방사성 탄소(탄소-14)에 관한 관측이 시작된 2011년부터 관측되는 피폭선량이 10배 증가했다”라며, 원전에서 액체 또는 기체로 방출되고 있는 방사성물질 중 ‘정체불명(unidentified)의 핵종’이 어느 정도 있는지 그리고 그게 차지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기존의 주민피폭선량은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에 드러난 주민 피폭선량 및 방사성물질 배출량에서도 방출량과 측정된 주민의 피폭수준이 비례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한수원에서 측정하는 기계적인 선량환산법으로는 어떤 종류의 방사성물질이 얼마나 배출됐고, 그 방사성물질이 어떤 경로를 거쳐 주민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기준’이 문제가 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백 교수는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원전 5km 이내 주민 3만6천여 명을 대상으로 추진했던 원전 주변 건강영향조사’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조사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추진한 것으로, 조사단은 조사에서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여성의 갑상샘암 발생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2.5배 높다는 게 확인됐음에도 “오래 거주할수록 암 발생 비율이 높아야 하는데, 오히려 연령대가 높은 사람일수록 암 발생 비율이 낮다”며 원전 방사선과 주민 암 발병 간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조사를 끝냈다.
하지만 조사단이 정한 조사대상 선정 기준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암 발생 비율이 낮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기준이었다. 백 교수는 ‘조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암이 발생한 사람은 분석에서 제외된 점’, ‘결과적으로 암이 발생하지 않은 건강한 사람만을 조사대상으로 삼은 점’, ‘특히 조사대상 중 연령이 높을수록 암 피해를 겪은 사람은 배제되고 건강한 사람만 분석 대상이 된 점’ 등을 짚었다. 조사 대상을 잘못 선정하면서, 조사결과가 왜곡됐다고 분석한 것이다.
또 백 교수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서도 (높은 비율의) 갑상샘암이 발생하고 있다”며,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통 여성이 갑상샘암에 걸리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원전 주변에서는 남성도 꽤 높은 비율로 갑상샘암에 걸리고 있기에, 이 같은 현상이 방사능과 연관성은 없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토론회에서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국장은 “원전지역 주민 건강 피해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원전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을 안 지는 상황”이라며 “국회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도 마련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분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원전 주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누구도 원전 주변 땅을 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재산 처분도 못 하고, 이사도 못 가는 상황”이라며 “거주 이전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종의 국가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9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원전 주변 주민 건강영향조사에 대한 방안을 협의한 바 있다. 이 방안에 따르면 환경부가 적극행정을 통해 원전 주변 건강영향조사를 추진하되, 관계부처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협의체 운영을 통해 조사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제고하기로 했다. 또한 국회에서는 지난해 연말 원전 주변 건강영향조사를 위한 관리예산 17억원을 2021년도 환경부 예산안에 반영했다.
신건일 환경부 환경피해구제과 과장은 “방사선에 노출된 주민들에게서 건강영향이 나타나고 있는지 여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조사가 될 수 있도록 조사방법 설계단계부터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환경부에서는 관계기관과 협력하여 사업장에서의 배출수준을 확인하고, 마을 주변 대기·수질 등 환경과 주민들의 체내 방사성물질을 확인한 후 주민들의 혈액에서 염색체 이상빈도를 조사할 계획”이라며 “주민들의 방사선 관련암 등 질환 발병비를 앞에서 조사한 내용들과 연계 분석하여 방사선노출에 따른 주민들의 건강영향이 있는지 여부도 체계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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