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2일 일요일

우리말 산책 강산이 변하듯 말도 변한다

 우리말 산책

강산이 변하듯 말도 변한다

엄민용 기자

좀 어수룩한 사람을 놀림조로 ‘고문관’이라 부른다. 그러나 본래 고문관(顧問官)은 “자문에 응해 의견을 말하는 직책을 맡은 관리”를 뜻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첫째 뜻풀이도 그러하다.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파견된다. 이들이 ‘고문관’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 내 실정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우리말도 서툴렀다. 당연히 일 처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말이 안 통하니 서로들 답답해했다. 이 때문에 군대에서 어리석거나 굼뜬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고문관이라 부르게 됐고,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이를 퍼트리면서 지금은 ‘어리숙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로 두루 쓰이는 낱말이 더러 있다. 누구나 아는 ‘엉터리’도 그중 하나다. 엉터리는 본래 “대강의 윤곽”을 뜻하는 말로 “일주일 만에 일이 겨우 엉터리가 잡혔다” “언제 일을 끝내려고 이제야 엉터리를 잡았느냐” 따위로 쓰는 말이다. 따라서 “정도나 내용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를 뜻하려면 ‘엉터리없다’로 써야 한다. 실제로도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렇게 올라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엉터리없다’를 ‘엉터리’로만 써 왔고, 지금은 모든 국어사전이 엉터리에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 같은 부정적인 의미도 덧붙여 놓았다.

장본인(張本人)은 의미가 완전히 바뀐 말이다. 한 20년 전만 해도 모든 국어사전이 ‘장본인’을 “나쁜 일을 빚어낸 그 사람”을 뜻하는 말로 다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으로 뜻풀이가 바뀌었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를 뜻하는 ‘너무’도 수년 전에는 ‘너무 싫다’처럼 나쁜 의미로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처럼 좋은 뜻으로도 쓸 수 있게 됐다.

말은 이런 것이다. 세월 속에서 강산이 변하듯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쓰는 데 따라 표기법과 의미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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