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까치설이 유명해진 것은 아동문학가이자 동요 작곡가인 윤극영尹克榮(1903∼1988)이 1924년에 발표한 동요 ‘설날’ 때문이다. 하지만 ‘까치설’의 유래는 정설이 없다. 국어학계에 의하면 까치설이라는 말은 1935년 한 신문이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문헌에서도 나오지 않아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어원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작은 설’이라는 뜻을 가진 ‘아찬(‘작은’이란 뜻의 순우리말)설, 아치(작다는 小의 뜻)설’이 세월이 흐르며 ‘까치설’로 변했다는 것이다. 설에 대한 문헌 기록은 7세기 중국 역사서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에 있다. 신라에서는 “매년 원단에 왕이 연희를 베풀고 문무백관을 비롯해 여러 관원이 모여 서로 경하하며 이날 일월신一月神과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었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면서 라고 되어있다. 고려 시대에는 설은 9대(설‧정월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 명절 중의 하나였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 4대(설‧한식‧단오‧추석) 명절이 되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 시대 우리 전통문화 말살 정책으로 음력 1월 1일에서 양력 1월 1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양력 1월 1일은 신정新正, 음력 1월 1일은 구정舊正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명칭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지다가 1985년에 ‘민속의 날’로 지정했다. 1989년 비로소 음력설을 ‘설’이라 명명하고, 공휴일로 정해 3일간 쉬기로 해 오늘에 이르렀다. 설날에는 설빔을 입고 아침 일찍 제사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떡국을 먹는다. 가까운 이웃과 친척 어르신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는 것 또한 대표적 풍습 중의 하나다. 가족들과 윷놀이를 하거나 널뛰기 등도 빠질 수 없는 행사다. 설날 전날인 섣달 그믐밤에는 복조리 장수들이 복조리를 파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뀐 이후에는 이런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새해를 맞이해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직장동료나 상사에게 흔히 쓰는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이웃 사람을 만나도 복 많이 받으라고 한다.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필수적 인사다. ‘복福’자를 파자破字하면, 시示(볼시)+일一(한일)+구口(입구)+전田(밭전)이다. 남에게 잘하고 사는지, 내 마음을 항상 들여다보며, 어떤 괴로움에도 입을 다물고,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하며 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을 돌보면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충실히 하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복을 원하고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복 받을 만한 일을 하거나 복의 씨앗을 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남에게 복을 빌어주기보다는 자신에게 복이 호박 굴러오듯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속담에 ‘견상이불위희즉복불래見祥而不爲喜則福不來’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길조吉兆를 나타내도 사람이 보고서 착한 일을 행하지 않으면 복은 오지 않는다는 말로, 사람이 착한 일을 행하지 않으면 복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도 우리는 설날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덕담을 건넨다. /정성수 논설위원 명예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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