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글 속에 글 있고 말 속에 말 있다
입력 : 2023-12-14 22:57:51 수정 : 2023-12-14 22:57:50

요새 속담을 듣기 어렵다. 입담 좋은 사람이 드물어진 까닭인지 모른다. 말을 잘하고 싶고 표현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면 속담에 주목하기 마련인데, 그런 관심이 흐려진 탓일 수도 있다. 이문구 소설 ‘관촌수필’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말꼬랑지 파리가 천리 가더라구, 옹젬이가 그렇당께.”
속담은 속된 말이다. 양반의 한문 표현에 비해 속되다는, 민중의 언어이다.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살아남은 것이기에, 토박이말의 보고이다. 또 삶에 밀착되어 문화를 생생히 반영하며, ‘가까운 제 눈썹 못 본다’처럼, 지혜와 풍자를 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속담이라면 대개 어느 상황에 딱 맞는 입말이 생각나는데, 대면은 안 하고 문자판만 두들겨대다 듣기 어려워진 성싶다. 속담같이 쉽고 뜻깊은 말 대신 외국어 범벅의 준말들이 판치는 가상공간에서, 날마다 부대끼며 사는 느낌이다.
한국은 농업 중심 사회였으므로 속담에 농경문화가 짙게 배어 있다. ‘제 논에 물 대기’, ‘지게 지고 제사를 지내도 다 제멋이다’ 등과 같이, 태반이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다. 농업도 기계화된 시대에 사는 지금 아이들은, 이제 낫을 몰라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을 알지 못하기 쉽다. 그렇다면 속담을 듣기 어려운 다른 원인은 급격한 문화 변동에 있다. 가령 ‘사돈 남 말 한다’는, 같은 잘못이 있으면서 저는 제쳐놓고 도리어 남만 나무라는 이를 꼬집는 말인데, 사돈 간에 교류가 거의 없는 오늘날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따위는 어떤가? 장 담그기를 본 적도 없고, 예전의 배질에 관해 전혀 모르면서도 쓰는 이가 많으니 말이다. 간명한 표현에 담긴 통찰이 값지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속담은 무진장하니까, 전통문화를 이으려면 ‘등잔 밑이 어둡다’, ‘글 속에 글 있고 말 속에 말 있다’ 같은 것을 자꾸 쓰고 또 가르쳐야 하겠다.
속담의 강점 중 하나는 비유이다. 1970년대 민주화투쟁 때 나온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시대의 모순을 압축한 날카로운 비유로 이제 거의 속담이 되었다. 국어사전에 속담은 단어와 함께 올라 있으니, 단어만 보지 말고 그게 활용된 속담까지 찾아보면 표현력 기르기에 큰 도움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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