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개’와 ‘뚜껑’
기사입력 2024-05-06 17:30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늘 시비거리인 정치 얘기는 아니다. 그냥 자유롭게 대화를 하다 보니 엉뚱하게 소주병, 맥주병에 있는 것이 ‘병마개’냐, ‘병뚜껑’이냐로 시비가 붙었다. 병마개? 병뚜껑? 어느 것이 맞을까? 그때 동작 빠른 다른 친구가 얼른 핸드폰에 있는 국어사전 어플에서 그 말을 찾아본다. 요새는 모르면 무조건 핸드폰에서 찾아보면 된다. 두 개 다 표준어로 쓰인단다. 그러면 소주병, 맥주병에 있는 것은 병마개일까, 병뚜껑일까?
우리말에는 동사나 형용사에 ‘애’나 ‘개’가 붙어서 명사로 되는 경우가 많다. ‘막다’의 ‘막’에 ‘애’가 붙으면 ‘마개’가 되고, ‘덮다’의 ‘덮’에 ‘개’가 붙으면 ‘덮개’가 된다. 또 ‘놀다’의 ‘놀’에 ‘애’가 붙으면 ‘노래’가 되고, (짐을)‘지다’의 ‘지’에 ‘개’가 붙으면 ‘지개’가 된다. 그런데 ‘지개’의 표준어가 ‘지게’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면 ‘마개’는 ‘막다’에서 생긴 말임이 밝혀졌다. ‘막다’의 본래 뜻은, 뚫어진 구멍으로 뭔가가 밀고 나오거나 들어오는 것을 구멍 안으로 메워서 들어오거나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주병이나 맥주병에 있는 것은 마개인가? 구멍을 메우는 것이 아니니 마개는 아닌 것 같다.
‘뚜껑’이라는 말이 생긴 유래를 알자면 ‘덮개’라는 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덮개’는 앞에서 ‘덮다’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덮다’보다 더 앞선 말이 있었다. ‘덮다’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먼저 ‘둪다’가 있었다. ‘둪다’의 ‘둪’에 ‘엉’이 붙어 ‘뚜벙’이 되었고, 이 ‘뚜벙’이 다시 ‘뚜껑’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 ‘둪다’가 ‘덮다’로 변하면서 ‘덮개’가 나왔다. 그래서 ‘뚜껑’과 ‘덮개’는 다같이 ‘둪다’에서 생겼으니 핏줄이 같은 말이다.
덮개는 바깥으로 감싸서 막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덮개는 병이나 항아리같이 아가리가 구멍인 것보다는 아가리가 큰 통이나 독 같은 것에 쓰고, 밖에서 오는 벌레나 짐승, 빛이나 볕, 눈이나 비, 심지어 바람 따위를 막으려는 것에도 두루 쓰인다. 덮개는 덮었다가 벗겨야 하고, 마개는 막았다가 뽑아야 한다.
뚜껑은 아가리를 바깥으로 감싸는 모습에서나 밖에서 오는 무엇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려는 구실에서나 덮개와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 뚜껑은 덮개처럼 아무 데나 두루 쓰이지 않고, 살림살이에서 훨씬 긴요한 솥이나 그릇, 상자 같은 가구에만 주로 쓰인다. 덮개는 덮었다가 벗겨야 하지만 뚜껑은 닫았다가 열어야 한다.
그러면 소주병과 맥주병, 이 시비는 어떻게 될까? 소주병과 맥주병은 아가리가 매우 작은 구멍이긴 한데 그 위에 있는 것은 술이 나오지 않게 막는 것인가, 덮는 것인가? 소주병, 맥주병, 둘 다 덮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그 구멍이 작을지라도 병뚜껑이라 해야 한다. 코르크로 막아 놓은 샴페인병이나 와인병에 있는 것은 병마개이겠다. 이것은 소주병과 맥주병의 구멍을 덮어 놓는 뚜껑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막았다가 뽑는 것은 마개이요, 닫았다가 열어야 하는 것은 뚜껑이요, 덮었다가 벗기는 것은 덮개이다.
이경국/ 밀양신문평가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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