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우리 어원 나들이] 수 2
정진명 시인, 우리말 어원 고찰 연재 ‘21-수 2’
- 정진명 시인
- 승인 2024.07.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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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간단히 손가락 모양에서 추리해낼 수 있습니다. ‘셋’은 손가락 세 개를 편 모양이어서 ‘서다’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정됩니다. 청동 솥도 발이 셋입니다. 이것은 물건이 제대로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개수입니다.
또 터키계의 수사체계와 관련지어 살펴보면, 터키말로 셋은 ‘se’이고, 이란말로는 ‘seh’입니다. 이것은 ‘셓’와 똑같습니다. 몽고말에서 작살은 ‘seriye’인데, 이것은 작살의 모양이 세 가닥으로 나뉘었기 때문이죠. 터키말로도 작살은 ‘šah’이고 만주말로는 ‘šaka’입니다. 길약말에서는 셋이 ‘čak'r, čak'a, čiax’여서 역시 그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셋’과 ‘서른’의 관계를 보면 유일하게 일관성을 보이는 말입니다. ‘서른’은 ‘설+은’의 짜임을 보이는데, ‘설’은 선다는 뜻이고 보면, ‘셋’은 확실히 세발솥이 서는 것처럼 손가락 셋이 서는 것을 본뜬 말인 듯합니다.
넷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계림유사』에는 ‘내(迺)’로 나옵니다. 먼저, 이것은 손가락으로 수를 헤아릴 때 네 번째 손가락을 꼬부리는 모습에서 붙은 이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넷’은 네 번째 손가락을 오그려<넣>는 것에서 온 말이죠. ‘넣다’가 명사형 ‘넣이’로 되었다가 ‘넷’으로 된 것입니다. 사투리에서는 ‘서이, 너이’하고 세는 것도 이런 자취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렇습니다. 길약말에서 넷은 ‘nu-kr, nux’이어서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터키의 도박장에서 쓰는 이란계 말에서 넷은 ‘jihar’인데 ‘j’와 ‘n’이 서로 잘 바뀌는 관계로, ‘nehr’을 거쳐서 ‘nehä, nehi’로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말의 자취에 페르시아어인 이란어까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신라 시대의 역사 유물로 서역과 교류한 것을 알기 이전의 오랜 세월 전부터 인류는 초원지대와 해양로를 통하여 교류하였음을 이런 말들이 보여줍니다. 흉노족의 일파인 투르크족이 바로 터키어를 썼고, 그들의 상류사회에서 쓰이던 도박장 용어가, 초원지대를 떠돌던 터키족을 따라서 우리나라까지 밀려들었음을 생각하면, 정말 고대 사회의 역동성이 물씬 느껴지는 일입니다.
또 터키계의 수사체계와 관련지어 살펴보면, 터키말로 셋은 ‘se’이고, 이란말로는 ‘seh’입니다. 이것은 ‘셓’와 똑같습니다. 몽고말에서 작살은 ‘seriye’인데, 이것은 작살의 모양이 세 가닥으로 나뉘었기 때문이죠. 터키말로도 작살은 ‘šah’이고 만주말로는 ‘šaka’입니다. 길약말에서는 셋이 ‘čak'r, čak'a, čiax’여서 역시 그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셋’과 ‘서른’의 관계를 보면 유일하게 일관성을 보이는 말입니다. ‘서른’은 ‘설+은’의 짜임을 보이는데, ‘설’은 선다는 뜻이고 보면, ‘셋’은 확실히 세발솥이 서는 것처럼 손가락 셋이 서는 것을 본뜬 말인 듯합니다.
넷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계림유사』에는 ‘내(迺)’로 나옵니다. 먼저, 이것은 손가락으로 수를 헤아릴 때 네 번째 손가락을 꼬부리는 모습에서 붙은 이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넷’은 네 번째 손가락을 오그려<넣>는 것에서 온 말이죠. ‘넣다’가 명사형 ‘넣이’로 되었다가 ‘넷’으로 된 것입니다. 사투리에서는 ‘서이, 너이’하고 세는 것도 이런 자취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렇습니다. 길약말에서 넷은 ‘nu-kr, nux’이어서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터키의 도박장에서 쓰는 이란계 말에서 넷은 ‘jihar’인데 ‘j’와 ‘n’이 서로 잘 바뀌는 관계로, ‘nehr’을 거쳐서 ‘nehä, nehi’로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말의 자취에 페르시아어인 이란어까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신라 시대의 역사 유물로 서역과 교류한 것을 알기 이전의 오랜 세월 전부터 인류는 초원지대와 해양로를 통하여 교류하였음을 이런 말들이 보여줍니다. 흉노족의 일파인 투르크족이 바로 터키어를 썼고, 그들의 상류사회에서 쓰이던 도박장 용어가, 초원지대를 떠돌던 터키족을 따라서 우리나라까지 밀려들었음을 생각하면, 정말 고대 사회의 역동성이 물씬 느껴지는 일입니다.
이것은 셈을 할 때 손가락의 모양에서 나온 말로 ‘닫다’의 ‘닫’과 ‘손’이 결합한 것입니다. 다섯을 세면 손(주먹)이 닫히기 때문이죠. 이것은 손가락이 다 열린 모양을 나타내는 ‘열’과 견주면 더욱 분명합니다. 손이 열리고 닫히는 모양에 따라 ‘다섯’과 ‘열’의 이름을 붙인 것은 만주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주말로 구부러진 것을 ‘tuya’라고 하고, 다섯을 ‘sun-ja’라고 하는데 이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tun-ga’가 됩니다. 또 우리말의 ‘닫다’에 해당하는 말로, 만주말은 ‘dasi’여서 같은 계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섯>은 터키어 계통의 말로 추정됩니다. 이것은 다른 숫자의 수사체계와 같은 계통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말과 가장 가까운 길약말에서는 다섯을 ‘toš’라고 해서 우리말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닷’에 강세접미사 ‘’이 붙은 것이 됩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원시알타이말에서 다섯은 ta‘입니다. 그런데 이 ’다‘는 ‘모두’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숫자를 손가락으로 셀 때 모두 닫은 형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완전함과 전체를 뜻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섯’은 모두를 뜻하는 숫자입니다. 몽고말에서도 다섯은 ‘tabun’이고 타타르말로도 다섯은 ‘taau’여서 역시 같은 뿌리를 보여줍니다.
다섯은 그것의 10배수인 ‘쉰’과 너무나 다릅니다. 만주말로 다섯을 ‘sun-ja’라고 하는데, 이것을 보면 ‘쉰’의 자취를 또렷이 볼 수 있고, 다른 언어체계에 만주말이 끼어들어 자리 잡은 게 아닌가 추정할 수 있습니다.
‘여섯’에 관해 알아봅니다. 여섯은 『계림유사』에는 ‘일술(逸戌)’로 나오고, 『조선관역어』에는 ‘야심(耶沁)’으로 나오고, 훈민정음으로는 ‘여슷’입니다.
‘여섯’은 ‘여’와 ‘섯’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는 ‘여덟’에도 보이는데, 이것은 둘을 뜻하는 말이 변형된 것이고 ‘섯’은 ‘셋’의 변형입니다. 둘을 뜻하는 퉁구스말을 보면 에벤키말로 둘은 ‘jür’이고, 솔론말로는 ‘ziul’, 우데헤말로는 ‘ju’, 네기달말로는 ‘jul’, 골디말로는 ‘juru’이어서 공통조어는 ‘jur(dur)’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퉁구스말과 우리말의 음운대응에서는 ‘jur’이 ‘yə’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여섯’은 둘과 셋이 합쳐진 말로 <2×3>을 뜻합니다.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이것은 손가락으로 셈을 헤아릴 때 다 오그린 손가락을 하나 펴는 것이므로 주먹을 여는 동작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연다는 뜻이죠. 다 열어버린 ‘열’과 같이 주먹을 열기 시작하는 뜻으로 ‘엳’이 되었다가 ‘여섯’으로 굳은 것입니다.
여섯의 열 배수인 ‘예순’은 서로 일관성을 보여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정진명 시인. 사진=정진명/굿모닝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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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굿모닝충청(http://www.goodmorning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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