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5일 목요일

미국의 요청에 ‘휴전’해 준 예멘 후티

 

미국의 요청에 ‘휴전’해 준 예멘 후티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5/05/15 [19:29]

“예멘이 미국을 물리쳤다.”, “예멘의 명예로운 성공이다.”

 

위는 예멘 후티 정부가 5월 6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과 휴전 합의를 한 뒤 밝힌 말이다. 후티는 이번 합의를 두고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적극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외에서는 후티와 미국의 휴전 합의를 뜻밖의 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최근까지만 해도 서구 주요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이 후티를 향한 무차별 공습을 강화했고, 이 때문에 후티가 상당한 피해를 봤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보도가 거짓이었던 걸까? 아니면 최근에 전황을 뒤집어 버릴 만한 어떤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걸까?

 

후티와 미국 간 휴전이 이뤄진 과정을 돌아보자.

 

먼저 휴전 ‘요청’한 미국

 

▲ 후티가 미국의 항공모함을 겨누고 있음을 강조한 선전물. 미군 무인기 MQ-9 리퍼(오른쪽 위)를 조준하는 후티군의 모습도 보인다.  © 후티 공식 텔레그램 채널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가 들어선 직후 ‘후티의 완전한 박멸’을 목표로 후티를 향한 폭격을 강화할 것을 명령했다. 미군은 전투기 등을 동원해 주요 군사시설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 공습을 가했다.

 

여기에는 공세를 이전보다 거세게 밀어붙이면 얼마 안 가 후티가 굴복할 거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후티 공습에 한 달 동안만 10억 달러(대략 1조 4,200억 원)가 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성과는 미흡했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이 공습을 강화하자 미군 전투기와 드론을 상대하는 후티의 단결과 사기는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고 뉴욕타임스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가운데 미국의 유력 전투기인 F-18 슈퍼호넷 전투기가 잇달아 추락하는 상황도 있었다. 슈퍼호넷은 미국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전투기로 꼽히며 한 대당 가격이 7,000만 달러(대략 978억 원)에 이른다.

 

4월 28일 항공모함 해리 트루먼호에 탑재된 슈퍼호넷이 해상으로 추락했다. 추락 당시 후티의 무인기가 해리 트루먼호를 공격하고 있었는데, 이 공격을 피하려 급선회하다가 추락했다고 미군 측은 전했다.

 

야히야 사리 후티 대변인은 관영 알마시라TV를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해리 트루먼호 갑판에 있던 슈퍼호넷을 침몰시켰다며 “이로 인해 트루먼호는 어쩔 수 없이 수에즈 운하로 후퇴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후티가 아라비아해에서도 무인기를 동원해 미국의 칼빈슨 항공모함과 호위함들을 공습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인 5월 6일에는 또 다른 슈퍼호넷 전투기가 해상으로 추락했다. 당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티와 휴전을 합의했다고 발표한 뒤 몇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5월 6일 슈퍼호넷이 추락한 날에도 후티는 트루먼호를 공격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군 측은 추락 원인을 두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라고 했는데, 원인을 밝히진 않았다. 후티의 공격에 따른 추락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밖에 후티의 공격을 받은 미군 무인기 MQ-9 리퍼도 대거 격추당했다. 4월 기준 격추당한 리퍼는 총 23대로 알려졌는데, 리퍼의 가격은 한 대당 3천만 달러(대략 419억 5,000만 원)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후티를 향한 공습을 강화하자, 역으로 미국의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으니 당황했을 듯하다.

 

후티에 따르면 미국은 중재국인 오만을 통해 후티에 먼저 휴전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 과정을 돌아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오락가락한 점이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합의 소식을 전하며 “후티가 항복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티의 수석 협상가인 모하메드 압둘사람은 후티 관영 알마시라TV에 출연해 “미국에 회담을 요청한 적이 없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반박했다.

 

후티가 휴전 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을 매우 세게 때렸다. (하지만) 그들은 공격을 견딜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티가 항복했다는 말을 뒤집고 후티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오락가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후티에 먼저 휴전하자고 한 걸 인정하기 싫었을 듯하다. 그런데 자신의 발언이 후티의 심기를 거스르고, 이 때문에 후티가 미군을 또다시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표현을 바꿨을 수 있다.

 

후티와 어렵게 맺은 휴전 합의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미국의 현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휴전 내용: ‘미군만 공격받지 않으면 된다’

 

이번 휴전 합의안의 내용을 보면 수세에 빠진 미국의 처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합의안에 따르면 후티는 더 이상 홍해 인근을 오가는 ‘미군 군함’을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미국은 그동안 후티에 가해 온 공습을 멈추기로 약속했다.

 

이전까지 후티가 미군 군함을 공격했던 건 2023년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과 관련이 있다. 후티는 전쟁이 발발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집단학살하자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서구진영 국가들의 선박 통행을 무력으로 차단해 왔다.

 

그런데 이번 휴전 합의를 통해 미군 군함이 후티의 공격 대상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휴전 합의에서 후티가 민간인 화물선을 향한 공격을 중단하기로 했는지를 두고는 주장이 엇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합의에서 후티가 민간인 화물선에 해 온 공격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합의 이후 후티는 ‘이스라엘이 아닌 나라의 민간인 선박’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한다면서도 ‘이스라엘과 관련한 선박’은 계속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목해 봐야 할 점이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 선박을 계속 공격하겠다는 후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더구나 미국은 후티와 휴전 합의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에 미리 알리지 않았다. 미국이 중동지역의 가장 유력한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상황은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하필이면 이번 휴전 합의는 후티가 이스라엘의 벤구리온 공항을 미사일로 공습하고 이틀 뒤 체결됐다. 벤구리온 공항은 이스라엘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 근처에 있으며 예멘에서 2,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발발 뒤 후티가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군은 예멘 방향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탐지했고 이스라엘 중부 전역에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탐지만 했을 뿐 격추는 하지 못했다. 결국 미사일은 공항 인근 도로에 떨어졌고 부상자도 발생했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이스라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방공체계 ‘애로우3’는 물론, 미국이 배치한 ‘사드(THAAD)’ 등 방어 체계가 동원됐음에도 후티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후티는 이와 관련해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후티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혼비백산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돕기는커녕, 후티와 미군 선박 공격 금지에 초점을 둔 휴전 합의를 맺었다. 방공망이 뚫린 걸 본 미국이 후티와 합의를 서둘러서 자국의 추가 피해를 막아야겠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 현지 보도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의 난데없는 휴전 발표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후티에 의해 방공망이 뚫린 상황에서, 앞으로 후티의 공격을 미국 대신 혼자서 감당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현 국면은 이스라엘보다 무력이 월등한 미국도 후티와의 대결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판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가며 어렵게 하마스와 전쟁을 이어 온 이스라엘로서는 충격이 상당했을 듯하다.

 

네타냐후 정권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전쟁을 재개한 뒤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후티의 공격이 이스라엘로 집중된다면 네타냐후 정권의 상황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동맹이야 어떻게 되든 미군의 안전만 챙기겠다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가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파장과 전망

 

후티와 미국의 휴전은 중동지역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크게 세 가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후티-이란 등 미국에 맞서 온 반미진영의 강화를 꼽을 수 있다.

 

우선 미국에 맞서 승리한 후티의 입지가 강화됐다. 

 

또 그동안 후티를 적극 지지·옹호해 온 이란의 입지도 덩달아 올라가게 됐다. 이란으로서는 이번 합의가 미국과 핵협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들려온 낭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미국에 맞서는 중동지역의 반미진영은 기세를 다지게 됐다.

 

둘째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에 미칠 영향을 꼽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겠다고 선언한 후티는 전쟁이 중단될 때까지 이스라엘을 공격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그런데 후티가 미국과 휴전하면서 이스라엘은 후티의 더욱 많은 공격을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

 

최근 미국, 하마스, 이스라엘 협상단이 카타르에서 만나 전쟁 중단과 관련한 협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이번 후티-미국 휴전 합의에 따른 파장일 수 있어 보인다.

 

셋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균열 확대다.

 

미국은 제 살길을 찾아 후티에 유리한 휴전 합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이스라엘 양국 간 신뢰가 깨진 것인데, 이 또한 중동 질서에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미국은 80년 가까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며 중동지역 내 반미진영의 기세를 누르고 미국의 입지를 다지려는 전략을 펴 왔다. 이러한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정리하면 이번 휴전 합의는 후티 등 미국에 맞선 중동지역 반미진영이 주목받은 반면, 힘 빠진 미국의 처지가 대비됐다. 

 

앞으로 팔레스타인, 이란 등에서 미국이 바라지 않는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시간은 미국의 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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