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4일 토요일

“다극화가 실용주의이자 현실주의”…푸틴, 발다이 클럽 연설

 


유럽은 막더니…미국, 지난해 러시아산 우라늄 8억 달러 수입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5/10/05 [08:00]

● 다극화 시대의 6가지 특징
● 미국의 우라늄 수입국 2위는 러시아
● 유럽 시민들이 시위하는 이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발다이 토론 클럽 제22차 연례회의에 참석해 다극화 시대와 러시아의 처지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 러시아 대통령실

 

다극화 시대의 6가지 특징

 

그는 다극화 시대가 이미 부상하고 있다면서 현 상황의 특징을 6가지로 꼽았다. 

 

첫째, “오늘날 세계는 외교 정책에 있어 훨씬 더 개방적이고, 더 나아가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냉전 시대나 미국 중심의 일극화 세계에 비해 지금은 외교 환경에 훨씬 변수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 외교에 참여하는 나라들이 얼마나 정밀하고, 정확하고, 일관되고, 사려 깊이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다극화 공간은 매우 역동적”이라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변화는 빠르게, 때로는 갑자기, 거의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대비하기 어렵고 예측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으며 “즉각적이고 실시간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셋째, 푸틴 대통령은 “다극화 공간이 더욱 민주적이라는 사실”이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국가가 가장 중요한 지역적, 세계적 과정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나 야망을 품었던 적은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넷째, “각국의 문화적, 역사적, 문명적 특수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규칙을 정할 수 없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다섯째, “모든 결정은 모든 이해 당사자 또는 압도적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호만 난무할 뿐 실행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따라서 결과를 얻으려면 조화와 균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여섯째, “다극화 세계의 기회와 위험은 분리될 수 없다”라는 점이다. 일극화 체제가 약해지고 각국의 자유가 확대되는 건 긍정적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견고한 균형을 찾고 확립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지며, 이는 그 자체로 명백하고 극단적인 위험”이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다극화 세계가 매우 복잡하고 다면적이라면서 이를 이해하려면 “고전 물리학이 아닌 양자역학과 유사한 철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어떤 존재든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는 없지만, 양자역학에 따르면 ‘파동’이면서 ‘입자’인 존재가 가능하다.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한 측면만 봐서는 안 되고 상반되는 다른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바로 이러한 세상의 복잡성 때문에 전반적인 합의 역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라면서 “고도의 외교술의 부활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이런 외교 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관이 발전한다면서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을 예로 꼽았다. 또 이들 기구는 “위계질서나 단일 지배세력에 대한 종속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극화 세계의 본질은 “전 세계 압도적 다수의 국가가 각자의 균형 잡히고 진보적인 발전을 통한 문명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이런 것들이 팽창주의 이념으로 왜곡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들은 외부 압력에 맞서 이러한 이익을 수호할 힘과 자신감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즉, 오늘날 다수의 국가는 “군사블록이나 국가 간 상하관계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식민지가 국가 지위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세계적 주권도 획득함에 따라 식민지 해방의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실용주의이자 현실주의”라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세계 곳곳의 전쟁과 군사적 위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안보 불가분성(indivisible security)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5년 헬싱키 협정에서 처음 등장한 이 원칙은 한 나라의 안보가 불안해지면 다른 나라의 안보도 불안해진다는 것으로, 다른 국가의 안보를 희생해서 자국의 안보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푸틴 대통령은 “냉전 이후 자신을 승자로 여겼던 사람들의 도취감과 억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갈망은 모든 사람에게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안보 관념을 강요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라면서 이것이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첫 10년 동안 발생한 여러 심각한 위기의 진정한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우라늄 수입국 2위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처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 러시아 대통령실


그는 러시아(소련 포함)가 군사 블록 대결을 피하고자 두 번이나 나토에 가입하려 했다고 소개했다. 첫 번째는 소련 시절인 1954년이었고 두 번째는 2000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였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전면 거부당했다. 그는 “러시아는 안보와 세계 안정이라는 영역에서 비선형적인 단계를 밟아나가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방 국가는 지정학적, 역사적 고정관념의 족쇄에서 그리고 단순화되고 도식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또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가해진 대러 제재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세계 역사상 절대적인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3만 건, 아니 어쩌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제재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라면서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 러시아는 전 세계에 최고 수준의 회복력을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방이 세계 체제에서 러시아를 몰아내려 했지만 “러시아 없이는 세계 균형이 이루어질 수 없다. 경제적 균형도, 전략적 균형도, 문화적·물류적 균형도 마찬가지로 전혀 불가능”하므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러시아가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상품을 공급하는 국가의 상품에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미국 시장에 유입되는 상품, 예를 들어 중국 상품의 양이 줄어들어 미국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대러 제재가 미국에 부메랑이 되는 원리를 설명했다. 또 “이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경제적인 계산”이라면서 미국의 제재 때문에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포기하면 그게 더 큰 손해라서 각 나라들이 미국의 대러 제재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핵에너지의 최대 생산국이자 소비국 중 하나”라면서 “러시아가 미국의 두 번째로 큰 우라늄 공급국으로 약 25%를 공급”한다고 소개했다. 미국에 우라늄을 수출해 지난해 8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이미 우라늄 판매액이 8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은 왜 다른 나라들이 우리의 에너지 자원을 구매하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사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주피터(신)에게 허락된 것은 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속담에 답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속담은 누군가에게 허용되는 것이 모두에게 허용되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불평등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중국이나 인도는 소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에는 소, 염소, 심지어 양이 되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라고 비꼬았다. 

 

또 “최근 젊은 여성들이 전통 러시아 의상과 머리 장식을 하고 파티에 참석하는 문화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러시아 사회를 내부에서 부패시키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적들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 결과가 예상과 정반대”라고 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내부에서 대중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맞서 이러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이는 러시아 사회의 성숙함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유럽 시민들이 시위하는 이유

 

푸틴 대통령은 최근 유럽의 정치 혼란을 두고 “서유럽 주요 국가들의 정치 엘리트들이 과도한 야망을 품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기득권층은 권력을 이양하려 하지 않고, 자국민을 직접 속이고, 국제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며, 국내에서 온갖 술책을 동원하고 있다. 특히 법의 테두리를 넘나들거나 심지어는 그 너머까지 손을 대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선거 절차를 끊임없이 희극으로 만들고 국민의 의지를 조종하는 것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유럽이 내부 혼란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위협을 부풀리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그 나라 국민이 모든 것을 보고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대부분의 유럽 국민은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스스로에게 명백히 해로운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럽의 지배 엘리트들은 계속해서 히스테리를 부추기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 정치인들에게 “유럽 도시들의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경제, 산업, 유럽 문화와 정체성, 막대한 부채와 심화하는 사회보장제도 위기, 통제되지 않는 이주 그리고 정치적 폭력을 포함한 만연한 폭력, 좌파, 초 자유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다른 소외 계층의 급진화를 살펴보라”라고 충고했다. 

 

또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를 거부한 것이 이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라면서 “그 결과 많은 양의 가스가 있어야 하는 유럽의 비료 생산은 수익성이 떨어져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비료 가격이 상승하면서 농업에 타격을 입혔고, 식량 가격도 상승했으며, 결국 국민의 지급 능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국민의 생활 수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국민이 거리로 나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러시아산 우라늄을 계속 수입하지만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를 수입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 이념 때문이라면서 유럽이 주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유럽 전역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세력이 성장하는 배경이라고 했다. 

 

또 푸틴 대통령은 유럽 국민이 러시아로 이민 오는 현상을 소개하면서 “정치적 이유보다는 가치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유럽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별 테러리즘”이 “많은 사람에게 달갑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러시아에 온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성별 테러리즘’이란 최근 유럽에서 아동, 청소년 사이에 성전환 수술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을 말한다. 또 독일에서는 성별자기결정법에 따라 생물학적 성별과 무관하게 부모가 아이의 성별을 선택해 등기소에 신고할 수 있으며 14세가 되면 부모 동의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성별을 정할 수 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50분간 연설을 한 뒤 장장 3시간 동안 대담을 하면서 청중의 질문에 답변도 하는 등 70대라는 게 믿기지 않는 체력을 과시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발다이 토론 클럽은 2004년 설립된 러시아의 국제 전문가 모임으로 매년 회의를 개최해 러시아 국내 쟁점이나 국제 문제를 논의한다. 

 

▲ 손에 푸시킨 시집을 들고 행사장에 입장하는 푸틴 대통령.  © 러시아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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