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6일 토요일
“미개”, “개화”와 “문명”
[통일문화 만들어가며](225) 정몽준씨 아들의 망언으로부터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4/04/27 [03:53] 최종편집: ⓒ 자주민보
[편집자주: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과 본지의 편집방향은 무관합니다. 다만 필자가 소개하는 북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세월호”침몰사건은 참으로 많은 언행을 이끌어냈다.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으로 많은 말들 가운데서 최고봉은 아마 정몽준 의원의 막내아들이 내놓은 국민미개론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이 지역감정을 자극하거나 정치성향을 공격하는 선에 그쳤다면 18살 났다는 정군은 아예 한국인들을 싸잡아 매도해버렸으니 배짱이 놀라울 지경이다. 예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정몽준씨가 텔레비전토론에서 끈질긴 질문을 받은 건 어머니문제였다. 결국 자기는 어머니 하나만을 안다는 말로 때웠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정몽준씨가 유능한 스포츠활동가라는 정도로 알던 필자는 그 처지를 은근히 동정했었다. 정말 사생아라고 하더라도 그건 아버지 정주영씨의 잘못으로 쳐야 할 테고 애기적부터 정주영씨의 본처가 길러줬다면 그를 어머니로 아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정몽준씨의 출생이 어떤지가 그의 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어머니부분이 공격받는가? 이런 식이었다. 허나 정씨가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와 분열을 밥먹듯이 하고 한나라당- 새누리당에서 우익보수의 모습을 드러낸 뒤에는 그 지조와 능력에 대해 평가할 흥미마저 잃어버렸다.
지금 정몽준씨는 서울시 시장후보로 나섰고 대통령자리도 넘보는 게 분명한데 이제부터는 아들이 그의 최대약점으로 나서서 두고두고 공격을 불러오지 않을까? 누군가 정군을 비꼬아 너의 아버지는 그 미개한 국민들에게 표를 구걸한다고 꼬집었는데, 정몽준씨가 아무리 사과하고 해석하더라도 정적들과 시민반대자들의 끈질긴 공격을 멈추기는 어렵겠다. 하긴 그런 공격 또한 정군의 눈에는 미개한 행위로 보일 수도 있겠다만.
정군 덕분에 ”미개“라는 말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다. 사전에서는 ”미개“의 반대어로 2가지를 꼽는데 하나는 ”개명“이고 하나는 ”문명”이다. “문명”은 옛날부터 있던 단어이나 “개명”은 혹시 100여 년전의 “개화기”에 생겨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한글사전에서 개화는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개화(開化): 1, 사람들이 깨고 지식이 발달하여 사상, 풍속, 문화 등이 진보함. 2, (역)갑오경장으로 정치 제도가 근대적으로 개혁된 일.”
100여년전 “개화”바람이 만들어낸 단어들이 꽤나 된다. 사전에서 대충 뽑아보면
개화경: 구한말에 “안경”을 이르던 말.
개화꾼: 지난날 무지와 몽매를 타파하고 일반 대중에 앞서 “개화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던 말.
개화당: =독립당.
개화모: 구한말에 “서양식 모자”를 이르던 말.
개화복: 구한말에 “양복”을 이르던 말.
개화비누: 구한말에 서양식 비누를 이르던 말.
개화성냥: 구한말에 서양식 성냥을 이르던 말.
개화인: 개화한 사람, 지혜가 열린 사람.
개화장: 구한말에 단장(短杖)을 이르던 말.
개화주머니: 호주머니(경상).
여기에서 역사자료나 문학예술작품들에 등장하여 지금도 어느 정도 생명력을 가진 단어는 “개화장(開化杖)”일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한말에 서양 문물이 밀려 들면서 서양 것을 본따서 만들거나 행동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런 유행으로 말미암아 멋을 내기 위해 신식으로 짚고 다니던 짧은 지팡이를 개화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 지팡이는 우리의 고유한 지팡이보다 짧기 때문이 단장(短杖)이라고도 하였다.”
이 “개화장”에 맞먹는 중국어단어는 무엇일까? “원밍꾼(文明棍)”이다. 풀이하면 “문명한 몽둥이, 문명한 지팡이”쯤 될까? “문명”이 “미개”의 반대어 가운데 하나임을 상기하면 청나라 말년부터 중화민국 초년까지 중국인들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겠다. 반도에서 “개화”를 앞에 붙인 말들이 유행되던 무렵, 중국에서는 “원밍(文明”을 앞붙이로 삼은 말들이 적잖았으니 2개만 들어본다.
원밍씨(文明戱, 문명극)은 전통 희곡과 다른 연극. 우리 민족 역사에서 존재했던 “신파극”쯤으로 이해하면 비슷하다.
원밍제훈(文明结婚, 문명결혼)은 전통 혼례식과 다른 서양식 결혼식.
“개화”던 “문명”이던 아시아인들이 우선 서양의 군사력에 압도되고 뒤이어 서양의 물질문명을 숭배하던 나머지 서양의 모든 것을 본보기로 삼으려 했던 시대심리를 보여준다고 해야겠다.
아시아의 물질생산이 풍부해지고 사회제도도 바뀌면서 “개화”니 “문명”이니 따위로 서양식을 가리키던 말들은 차차 사라져갔다. 허나 이번 정군의 돌출발언은 일부 사람들의 머리속에 박힌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들을 드러낸 셈이다. 국민을 “미개”하다고 판단하는 전제는 누군가는 “개명하다”, “문명하다”이다. 그 본보기는 아무래도 서양인들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서양인들을 한마디로 “개명하다”, “문명하다”고 올리출 수 있을까? “세월호”사건과 비교되는 2012년 1월 이탈리아 유람선 “코스타 콘코디아호”좌초침몰사건에서 배를 탈출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거부한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가 “세월호” 임시선장 이준석 씨와 비교되는데, 아무리 봐주려 해도 칭송하기는 어렵겠다(이 인물에 대해 10분의 1에 좀 못 미치는 300여 명 승객이 아직 남아있을 때 탈출했으니 이 선장보다는 낫다는 변호도 나온다.). 또한 100년 전 “타이타닉호”침몰사건에서 배와 함께 침몰한 죤 에드와 스미스 선장이 칭송의 대상으로 다시 떠오르고 그 사건에서 신사들이 보여줬다는 양보, 희생정신이 이번 사건과 비교도 되는데, “타이타닉호”사건에서 잘 거들어지지 않는 치부도 놓치지 말아야 공평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탈출권리도 받지 못하고 죽었고 탈출을 다투는 승객들을 제압하기 위해 선원들이 총을 쏘았다는 등등.
의도적으로 걸러진 정보들에 근거해 외국인들을 숭배하고 자국민들을 깔보는 현상은 여러 나라에 두루 존재한다만, 남북으로 분열된 반도의 상황에서는 특수성도 띈다. 누군가 남의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단정하는 수준이라면 북의 사람들은 더욱 사람으로도 보지 않을 판이니 말이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야말로 통일문화를 만들어가는 최대의 적이다. 게다가 대권까지 넘보는 기득권핵심의 가정에서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은 통일의 걸림돌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이다.
10여 년 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소통령”으로 불리면서 정부인사에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했다는 일들이 한심하다만 황당한 정도에 그쳤다면, 정군 같은 인물이 청와대에 들어가 산다는 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나는 위험한 노릇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를 또다시 느낀다.(201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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