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6일 금요일

미국에게 버림받은 우크라이나 진상

[연제 147]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유태영 목사 기사입력: 2014/05/17 [02: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일어난 친러시아인들의 친미정부 반대 시위 © ◆ 미국에 속아서 핵을 포기한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 우크라이나는 면적이 프랑스보다 조금 큰 나라이며 러시아 보다는 조금 작은 나라로서 유럽에서 두번째로 지형이 큰 나라이다. 한반도의 2.7배에 달하는 넓은 경작이 가능한 땅을 가지고 있다. 광활한 산림과 습지가 있으며 3천개의 강이 흐르고 있는 유명한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다. 보리, 호밀, 귀리, 사탕무, 양귀비 그리고 광활한 방목지와 풍부한 목재 등 다양한 농산물과 천연 자원이 풍부하다. 기원전 7-4세기부터 스칸디나비아족이 이 지역을 지배했으며 AD 8-10세기에는 비잔틴 지배 아래에서 동방교회를 받아들임으로서 비잔틴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그 후부터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외세가 개입되지 않은 시기를 찾아 볼 수 없는 험난한 역사가 계속됐다. 1520년에 우크라이나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그 후에는 코사크 폴란드와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우크라이나는 비운이 연속되었으며 고난 속에서 자치주의를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1840년에 우크라이나는 제정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서 우크라이나의 언어까지 사용 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러시아 제정 군주제가 붕괴됨으로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하지만 그때 당시 우크라이나는 수 없이 많은 당파들의 분쟁과 내전이 계속됨으로 인하여 무정부상태에서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200년간 지배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우크라이나는 140만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1982년에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연방제로 편입되어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이 되었으며 여전히 소련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었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 거대한 <레닌 핵발전소>를 건설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레닌 핵발전소에서 1986년에 이른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구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레닌 원자력발전소 4호로 (흑연감속 RBMK, 1000만 kw)를 건설 했는데 역사상 최악의 <원자로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로 인하여 방사능 오염에 대한 염려가 유럽 전역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체르노빌 원전 핵사고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소련의 정보제한조치로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체르노빌 핵발전소 부근 30킬로미터에 출입금지구역을 설정했는데도 불구하고 1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고 현장의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구 소련 연방제가 해체됨으로 우크라이나는 해방이 됐다. 소련이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하여 떠나갈 때 우크라이나에는 소련군이 배치했던 핵탄두가 적어도 1,000-1400여기가 있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바르샤바 조약>의 중요한 거점지이였기 때문에 소련군이 그렇게 많은 핵탄두를 우크라이나에 비치해두고 있었던 갓이다. 그런데 소련 연방베가 해체되어 소련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때 그 많은 핵탄두를 우크라인에 그대로 남겨두고 군대만 철수한 것이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에서 핵탄두를 회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때 소련 내부가 혼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핵탄두 회수가 불가능했다. 동시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핵탄두를 소련이 회수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방해하고 있었다. 그럼으로 결국 우크라이나는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제3위의 핵보유국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체르노빌에 있는 거대한 핵발전소도 우크라이나의 소유물이 되었다. ◆소련의 붕괴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1990년에 우크라이나는 비로소 처음으로 독립국이 됐다. 1990년 이후에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되는 역사를 간추려서 살펴본다. 소련의 붕괴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1990년에 우크라이나의 지도자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옐친 대통령과 직접 평화로운 협의를 통하여 우크라이나의 독립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분리 독립국이 되였으며 1991년 12월 1일 에 우크라이나는 최초로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선거에 당선되어 우크라이나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을 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크라이나의 초대 대통령이 된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대통령은 소련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소주의자로서 소련 공산당을 탈퇴하고 친미와 친서방의 정치적 노선을 선택하는 유명한 대통령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소비에트 연방제를 붕괴시키는 촉진제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수백년 동안 강대국들과 특히 제정 러시아 스탈린 정권의 극심한 억압 통치를 오랜 동안 받아오다가 갑자기 독립을 쟁취했기 때문에 많은 혼돈과 어려움이 있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크라우추크 대통령은 신생국 우크라이나의 정치를 평화롭게 효과적으로 수습할 수가 없었다.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대통령은 오직 <반소련 친서방> 노선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을 뿐 경제정책과 사회질서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다. 동시에 소련은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여 떨어져 나간 후에 모든 지원을 모두 단절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짐으로 인하여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반대가 생겨났다. 1994년에 대통령 선거에서 레오니드 크라우추크 초대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여 퇴임했다. 그 후에 레오니드 쿠치마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어 제2대와 제3대 대통령이 되어 1994-2005년까지 11년간 집권했다.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공산당원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쿠치마 대통령은 구소련이 붕괴된 후에 1991년에 공산당을 탈퇴하여 친미와 친서방 정치인으로 갑자기 변신하고 급전환하여 11년간 친미주의적 정치노선으로 우크라이나를 통치했다.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적인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미국과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연합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다. 구소련이 붕괴되고 소련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군할 때 우크라이나에 남겨 놓고 떠나간 막강한 핵탄두 1,000-1,400기를 보유하고 있음으로서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 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채르노빌 핵발전소가 우크라이나 땅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1995년에 미국과 영국의 유혹과 모략적 기만술에 이용당하고 속임수에 넘어가 우크라이나가 보유하고 있는 그 막대한 핵무기를 대책 없이 포기하는 큰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이른바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에 서명함으로서 구소련이 남겨 놓고 떠나간 막대한 핵탄두를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여 완전히 페기하고 포기함으로서 미국이 원하는 대로 우크라이나는 완전히 비핵화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레어니드 쿠치마 대통령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서방국들에게 완전히 기만을 당하면서 어리석게도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는 것을 오직 영광스런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유혹하고 또 강요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핵탄두들을 모두 다 포기하고 비핵화국이 되는 조건으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안전과 평화를 완전히 보장해준다는 약속을 문서로 보증한다는 조약이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사실에 있어서 하나의 <속임수 각서> 뿐이라는 사실은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 어쨌든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비핵화국이 된 우크라이나는 2005년에 제4대 대통령 선거를 했다. 이번에는 빅토르 유센코가 우크라이나의 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유센코 대통령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미녀 국무총리>인 율리마 티모센코를 국무총리로 임명하였으며 그녀를 5년 동안 국무총리가 되게 했다. 미녀 여성 국무총리에게 국정을 완전히 책임지게 할 뿐만 아니라 외교전선에 등장시키고 유센코 대통령은 오직 뒤에서 기둥서방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유리마 디모센코 여성 총리는 한국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여 친미정권들과 깊은 유대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으며 세계적으로 친미행각을 전개하여 미국의 절대적인 지지를 획득하고 있었다. UN의 반기문 사무총장도 디모센코를 격찬했다. 유리마 티모센코 총리는 5년 동안 국무총리로 활약하면서 친미와 친서방 정치적 기반을 굳게 닦아 놓았으며 후에 <오랜지혁명>을 일으켜 선거 집중전을 통해 차기 대통령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마 티모센코 총리는 2010년 2월에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됐다. 그녀는 이른바 <오랜지혁명>을 주장하여 선거열풍을 일으켰지만 당선에는 실패했다. 오히려 선거후에 미녀 총리로서 권력의 남용과 부패행위들이 모두 다 폭로됐다.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여성 총리 유리마 티모센코를 물리치고 우크라이나 제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취임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 모두가 다 반민족적인 <친미 친서방> 정치 노선을 따르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말살시킨데 대하여 분개하여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을 역설하였다. 제5대 대통령으로 새로 취임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친미주의적 여성 총리였던 유리마 티모센리코 전총리를 직권 남용죄로 기소하여 7년간의 징역형을 선고하여 감옥살이를 하도록 판결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그동안 친미와 친유럽연합 분위기를 형성했던 전임 대통령들의 반민족적인 통치행태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리하여 야누코비치 신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의 정치체제와 전통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시정하여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회복하여 반미반서방과 친러시아적인 정치노선을 새로 확립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집권 초기에는 일단 큰 성공을 성취했다. 하지만 큰 문제는 미국의 CIA가 이를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유럽연합도 미국과 동조하여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반미와 친러시아 정치노선을 강화하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친미연대를 강화했다. 미국은 유럽전략에 있어서 우크라이나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 CIA는 우크라이나 내부에 있는 친서방 우익 야당세력들을 총동원 집결시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반정부시위를 전개시켰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와 한패이다>라고 하는 비난의 여론과 악선전을 퍼뜨리면서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하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 FBI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혹시 해외에 은닉한 자산이 있는가 하여 <국제금융특별기동팀>을 조직하고 자산추적을 했다. 하지만 미국 FBI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결정적인 자료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 야누코비치 정권을 쓰러뜨린 미국의 강도행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치명적 위기를 당한 것은 2013년에 친미와 친서방 야당들이 일제히 단결하여 반정부 시위를 감행한 사건으로 부터 시작됐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럽-우크라이나 경제연합> 체결을 잠정 중단할 것을 용단으로 결정하여 선포했다. 그리고 야누비치 대통령은 오히려 러시아가 주도하는 경제블록에 참여할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친미적인 야당세력이 미국에 의하여 총집결하여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반대하여 궁지에 빠지게 한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의 계기로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위치가 인접해 있으며 문화적으로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다.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봉괴 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하기는 했지만 문화와 경제 그리고 전략적 이유로 인하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분리될 수 없으며 반드시 러시아 블록에 가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친미주의적 야당은 친서방적 정치세력을 총동원하여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12월 8일에 레닌 동상을 철거하는 난동으로 발전했다. 2014년 2월 18일에는 수도 키에프에서 총격전이 발생하여 26명이 사망했으며 20일에는 시위대 100명이 사망했다고 야권이 발표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을 비롯한 친서방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비난하고 규탄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었다. 미국의 공작과 유럽연합의 외무장관들이 막후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외세에 의하여 고무된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야당 정치세력들이 총집결하여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서방의 외세들의 공작과 충동에 의하여 우크러이나의 우경화된 정치적 세력과 그리고 우크라이나 역대 친미적인 전임 대통령들 3명이 모두 다 단합하여 총력으로 현직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했던 것이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2014년 5월 25일부터 우크라이나의 조기선거 준비를 합법적으로 시작하겠다고 타협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권 의회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타헙적인 제안인 조기선거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대하여 2014년 2월 22일에 탄핵을 강행했다. 뿐만 아니라 의회는 온갖 부정부패로 7년형 수감 중에 있으며 <오렌지혁명>의 주동자이며 극렬 친미주의자인 유리야 티모센코를 석방했다. 그리고 친미적인 야권 의회는 임시대통령권한대행자로 알렉산드르 투루치노프를 즉시 임명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배후에서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우익 세력의 무혈쿠테타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친미적 야당의 탄핵을 받아 물러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행방에 대하여 서방의 언론들은 별의별 엉뚱한 체포설, 도망설 그리고 심지여 사망설까지 사실무근 거짓 보도들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미국 CIA의 비밀을 세계에 폭로한 유명한 <스노든의 행방>은 어디인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역시 2월 28일에 러시아에서 건전한 모습으로 기자 회견을 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기자회견을 하여 다음과 같이 밝혔다. ㄱ. 나는 우크라이나 선거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주권국가의 대통령이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강도적 행위로 인하여 친미적 야당세력이 불법적으로 탄핵을 감행하여 우크라이나 정부를 쓰러뜨리려고 만행을 저질렀다. ㄴ. 미국이 주도하는 CIA 공작으로 쓰러뜨리고 있는 나라들은 아프간, 이라크, 이집트, 리비아, 구 유고슬라비아, 아프리카와 남미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시리아와 이란 등 지금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 중에 있다. ㄷ. 미국이 서방 언론을 장악하고 호도하여 모든 사실은 왜곡하여 제3세계 나라들의 국민과 지도자들을 깍아내고 있다. 미국과 서방이 지원하는 NGO, IMF 그리고 UN을 통하여 종교분쟁과 인권문제 등 그럴듯한 이유와 말로 각본을 작성하여 미국은 제3세계를 머슴살이로 이용하고 있다. 만약 제3세계 민중들이 미국의 이러한 만행에 대하여 눈을 감는 다면 그것은 우상숭배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기자회견을 통하여 발표한 내용이다. 1990년에 구 소련이 붕괴된 후에 독립된 우크라이나는 처음부터 친미주의 정치적 성향으로 20여 년간 통치를 했다. 우크라이나의 서부지역은 본래 유럽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친서방 성향의 역사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는 독립 초창기부터 친미와 친유럽 성향의 정부가 창설됐던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어떠한가? 동부지역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러시아와 교류와 협력이 밀접하고 협동 분위기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2010년에 우크라이나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의 친미와 친서방 정치노선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동부지역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친러시아 정권을 수립하였던 것이다. 오늘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대립하여 <동부-서부대립 기싸움>을 하고 있는 배경과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대립은 또한 <미국-러시아 기싸움>의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현실적 상황이다. 2014년 2월에 우익세력의 탄핵을 받아 물러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후임으로는 역시 친미주의자 투르치노프를 대통령대행자로 즉시 임명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기자회견을 통하여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불법적으로 임명된 친미주의 정권의 하수인 격인 투르치노프 대통령대행자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버린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살린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하여 핵보유를 완전히 포기하고 비핵화국으로 전락한 우크라이나에 대하여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미래의 안전과 영토보존을 책임을 진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하나의 휴처지럼 버리고 말았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하여 반정부 저항시위가 끊임없이 번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발생한 모든 사건을 책임진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회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러시아로 이동한 사건을 수습하기보다는 오히려 반정부 세력을 뒤에서 지원하고 조종하면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미국이 스스로 폐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1995년에 체결한 후 19년만에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안전보호를 책임지지 않는데 대하여 한국인들 중에서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떠나가는데 미국이 한국을 버리고 떠나가면 어찌하나? 국제적 돌변을 생각한다면 우리도 미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따라가는 게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부다페스트 합의를 휴지로 만든 미국을 믿어도 되나? 북이 핵공격을 해오면 미국이 북을 보복해준다는 약속을 믿어도 되나?>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여 한국인들은 말하기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한국을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확인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리석은 한국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하지만 역사의식이 분명한 한국인이라면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먼저 배반했으며 또 오늘은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서로 대립하여 국제적 긴장상태를 조성하고 있는데 대하여 올바른 인식과 판단을 해야 하겠다. 다음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권좌에 물러나 우크라이나를 떠나 러시아로 이동한 후에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러시아 지역의 민중들이 분리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본다. ㄱ. 우크라이나에는 21개 주들이 있는데 서부에 친서방 9개주가 있으며 동부에 친러시아 성향의 12주들이 있다. 동부의 친러시아 성향의 모든 주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하여 러시아 연방에 가입하기를 위하여 맹렬한 투쟁을 일제히 전개하고 있다. ㄴ. 제일 먼저 크림반도에서 수천명의 대규모 집회를 열어 우크라이나에서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그들은 <우리는 크림인이며 우리의 형제는 러시아인이다.> 라고 주장했다. 결국 2014년 2월 24일에 크림반도에서는 러시아 국기가 나부꼈다. 크림반도는 인구 245만 명 중 러시아인이 59%이다. 크림반도가 러시아 연방으로 성공적으로 귀착된데 대하여여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것이 미칠 또 다른 여파에 대하여 불안에 떨고 있다. ㄷ. 미국이 주도하는 IMF는 우크라이나 동부사태가 위기에 처함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재정지원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부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될 것을 미국은 이미 기정사실로 판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ㄹ. 우크라이나 동부 12개주들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시위와 폭동 그리고 경찰과 충돌함으로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발생하지 않은 곳이 없는 위기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외신들의 보도는 2014년 5월 5일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하였다. ㅁ. 미국과 유럽연합은 일제히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여 우크라이나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책임 전가를 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보다 더 강경한 태도로 <만일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 주권에게 부당하게 행동을 한다면 보복을 당당하게 집행할 것이다>라고 맞섰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친러시아 주들은 5월 11일에 <우크라이나 분리주민투표>를 예정하고 있다. 그리고 5월 25일에는 우크라이나 대선이 계획되어 있다. 이 양대 투표와 선거가 평화적으로 무사히 진행될 것인가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푸틴 대통령의 판단과 제안들이 매우 중요한 관심사로 주목이 집중되고 있다. ㅂ.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러아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격하여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데 대하여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통제권을 상실했는가? 하고 지적했다. 하지만 천만의 잘못된 판단이다. 그들은 푸틴 대통령의 자존심을 모르는 판단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의 뿌리 깊은 역사성과 의리성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의 강직한 정치력과 역사에 대한 신뢰성은 미국과는 딴판으로 다르다. 미국의 레이건-부시- 클린턴-오바마는 약속을 포기하며 의리를 저버리고 오직 실리만을 챙기는 믿을 수 을 수 없는 대통령들이라고 세계는 공인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푸틴 대통령은 2009년에 미국에게 말하기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리틀 러시아”이다>라고 말한 그는 그의 말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도 중요하고 또 우크라이나도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크림반도는 본래 러시아 땅이었다. 하지만 소련의 후루시초는 본래 우크라이나 출신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차원에서 1954년에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게 선물로 양도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잘못된 역사적 사건을 바로 고치는 역할을 오늘 푸틴 대통령은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연합은 오직 흑해지역의 전략적 이해관계만을 중요시하면서 크림반도가 러시아 연방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를 원상복귀한데 대하여 서방 언론들을 <러시아의 개입>이라고 오히려 부당한 악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개입이 아니라 러시아 <역사 바로잡기>인 것이였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에 세번째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하여 미국의 동유럽 지배정책에 맞서면서 러시아의 재통합의 과제를 여러 모로 중요시 하고 있다. 특히 중동과 중앙아시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끝맺으며...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영국을 <형님처럼 믿고> 1994년에<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함으로서 비핵화국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영국 등 유럽연합국들이 우크라이나를 동등한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그대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때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핵보유국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제2대와 3대 대통령이였던 친미주의자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미국을 형님처럼 믿고 우크라이나의 막대한 핵보유국의 지위를 몽땅 포기했던 것이다. 북은 리비아의 카다피 실각 사태를 거론하면서 미국의 부당한 핵포기 압력에 굴복하고 친미로 돌아선 결과 결국 비참한 최후를 면치 못했다면서 북은 끝까지 선군정치를 앞세워 미국의 핵위협에 핵보유로 당당하게 맞설 것이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북은 미국의 말만 믿고 있다고 결국 미국에게 버림받은 우크라이나 친미주의자들의 최후도 핵-경제 병행노선의 정당성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한국도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조건 미국을 형님으로 떠받들면서 바지가랑이를 붙잡는다고 해도 미국은 언제든 자국의 이익과 맞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한국을 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1대-4대 역대의 대통령들은 미국 제국주의 위협과 그리고 유럽연합의 끊임없는 공갈과 유혹에 대하여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자주적인 정치적 의지를 확립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자립적 국방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어리석은 길을 걷게 된 것이다. 2015년까지 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돌려받기로 한 합의를 백지화하고 무기한 미국에게 다시 넘겨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합의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과 다를 것이 없다. 지금 러시아는 6,000명의 병력을 러시아 영토가 된 크림반도에 배치하고 있으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케리 국무장관은 현 우크라이나 사태에 당황하여 쩔쩔매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에 대하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미국이 주목으로 나오면 언제든지 주먹으로 맞선다는 특이한 카드를 오늘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끝. (유태영, 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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