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9일 화요일

[우리역사] 21. 단재 신채호, 단군조선의 대외관계사 7(三神五帝本紀)


신채호(申采浩) 선생(先生)의 상‧‧고대사에 대한 인식 이용섭 역사연구가 기사입력: 2014/09/09 [20:2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우리역사 이야기 – 21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천재사학자(天才史學者)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신채호(申采浩) 선생(先生)의 상‧‧고대사에 대한 인식. 단군조선(檀君朝鮮)의 대외(對外) 관계사(關係史) - 7(三神五帝本紀) 현대 우리사회에서의 장승(將丞)에 대한 인식(認識) 1) 들어가며 우리는 앞선 장(章)에서 외국인들에 본 장승(將丞)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번 장에서는 현대사회(現代社會)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우리의 전통사상(傳統思想)이자 종교적(宗敎的) 믿음에 의해서 탄생(誕生)된 장승에 대해서 어떤 인식(認識)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앞선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외국인(外國人) 특히 서양인(西洋人)들의 시각(視覺)에 비춰진 장승에 대해서는 몇 가지 특징적(特徵的)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첫째 – 우리의 역사(歷史)와 전통사상(傳統思想) 그리고 종교(宗敎)에 대해 무지(無知)하다 보니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적(宗敎的) 관점(觀點)에서 우리의 장승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무로 만들어서 실내(室內)도 아닌 장소(場所) 더구나 아무런 가림막이나 장식도 없이 비바람, 눈바람 다 맞아가며 난장(亂場)에서 그저 아무런 장식(裝飾)도 없이 서 있다 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神)들의 신상(神像)에 대해서 커다란 집을 지어놓고 그 앞에서 사람의 존재는 그저 피조물(被造物)로서 머리를 조아리며 허리를 굽신거리다 보니 그들의 신(神)은 사람과는 아무런 인연(因緣)도 없고 그저 아득히 꿈속 같은 세계 속에 존재하는 신(神)들과는 너무나도 판이하다. 이러한 서양인들의 신관(神觀)은 그들은 일정(一定)한 시간(時間)을 정해놓고 일정(一定)한 장소(場所)에서 정해진 제사장(祭司長)에 의해서 일정(一定)한 시간동안 자신의 신(神)을 최대한 숭배(崇拜)하며 떠받드는 의식(儀式)을 행하였던 것이다. 반면 우리겨레들이 장승에 대해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자유분방한 것이었다. 그저 정해진 시간도 없고 또 장승 앞에서 자신들의 믿음과 기원(祈願)을 함에 있어서도 뚜렷한 의식도 없이 그저 두 손 모아 살포시 빌며 잠시 동안만 그저 입속으로 중얼중얼 몇 마디하며 돌아섰던 것이다. 또 그 기원을 마치고 돌아서자마자 웃고 떠들며 그저 평소대로 하던 행동을 하였던 것이다. 위 두 가지 예(例)에서 보듯이 장승에 대한 우리겨레의 믿음이나 이를 기리는 의식(儀式)과 장승을 모신 것 등이 서양인(西洋人)들의 관점(觀點)에서는 그저 원시적(原始的)인 신앙이요, 그들의 눈에 보이는 장승 즉 신상(神像)은 그저 미개(未開)한 이들이 미개(未開)하게 믿는 미신(迷信)이요 우상숭배(偶像崇拜)였던 것이다. 둘째 – 앞선 장에서 본 것처럼 네덜란드인 하멜이나 독일인 오페르트 그리고 카나다인이자 미국인인 게일 등의 시각에서 보이는 장승의 외양(外樣)은 그들 모두는 우스꽝스럽다거나 공통적으로 야만적(野蠻的)이고 무섭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양인(西洋人)들 시각(視覺)에서 보면 충분(充分)히 그럴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신상(神像)의 외양(外樣)을 최대(最大)한 성(聖)스럽고 숭엄(崇嚴)하며 근엄(謹嚴)해야 하며 무척이나 자애(慈愛)스럽게 표현(表現)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네 전통사상(傳統思想)과 宗敎는 삼신사상(三神思想)의 핵심(核心)적인 교리(敎理)에 따라 바로 그 신(神)이 사람이요 사람이 신(神)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모시는 신상(神像)들이 굳이 자애(慈愛)로울 필요도 없고 근엄(謹嚴)할 필요도 없으며 숭엄(崇嚴) 것이다. 우리겨레가 신상을 모시는 데는 그저 자신들의 있는 모습(模襲)을 특별(特別)히 가공(加功)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겨레는 자신들이 모셔놓은 신상(神像)에 사람이 접근(接近)하지 못할 정도로 차단(遮斷)도 할 필요도 없고, 굳이 때를 정해놓고 그 신상 앞에 나아가 일정한 의례에 따라 기원을 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가 원한다면 누구라도 신상(神像) 앞에 나서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기원(祈願)하며 또 동시에 그 기원을 이루겠다고 자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것이다. 우리겨레는 신상(神像) 혹은 자신들이 모시는 대상물(對象物) 앞에 나아가는 시간도 역시 굳이 정해놓지 않았다. 그가 원하면 새벽이건 한 밤중이건 한 낮이건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신상 앞에 나아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신상 앞에 나서서 기도를 드리는 형식 역시도 정해진 바가 없다.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조용히 기원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지나가다 그 신상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고개 숙여 마음속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를 기도하였다. 이게 바로 우리겨레가 자신들이 모신 신상 앞에서 보여 온 종교적(宗敎的)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요 의례(儀禮)였던 것이다. 물론 우리겨레라고 해서 깎듯 한 예의와 범절을 갖추고 예를 지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바로 돌아가신 조상들에 대한 제례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서양인(西洋人)들은 우리네 제례(祭禮)가 우리겨레의 전통적 사상(思想)과 종교적(宗敎的)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으로 본다. 물론 21세기 현대에 와서 그들도 우리의 전통적(傳統的)인 제례(祭禮)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나마도 그 제사의 예법이 화하족의 사상인 유교적(儒敎的) 전통(傳統)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겨레가 창작(創作)하고 창안(創案)해서 마을 어귀나 신성(神聖)하다고 여기는 장소(場所)에 모셔놓은 장승에 대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관(神觀)에 따른 오만(傲慢)과 편견(偏見)에 따라 우상(偶像)이요, 무섭다느니 원시적(原始的)이라느니 하는 평(評)을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19세기~21세기에 이르는 기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무장력에 의거해서 자신들이 믿어왔거나 믿고 있는 종교(宗敎) 이외에는 모두 원시적인 종교요 믿음이요 미개한 사람들이나 믿는 미신(迷信)이라고 폄훼(貶毁)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비단 우리네 장승(將丞)에 대한 것 말고도 지구상의 모든종교( 宗敎)들에 들이미는 잣대이다. 셋째 – 우리네 장승은 그저 박물관에나 가 있을 원시적이고 미개하다는 인식이다. 특히 19세기 말 조선에 들어와서 선교활동을 한 ≪게일≫이라는 선교사는 하멜이나 오페르트보다 한 술 더 뜬다. “큰 길이나 작은 길에서 마주치는 장승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이빨과 이글거리는 눈≫을 보면 무의식중에”라고 하여 우리네 장승에 대해 극단적 반감을 표출(表出)하고 있다. 물론 게일이 처음 접(接)해보는 우리겨레의 전통적(傳統的) 문화사상(文化思想)에 대해 문화적(文化的)인 충격(衝擊)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오류(誤謬)에 빠지는 것은 자신들이 접해보지 못했고 도 처음 접해보는 문화라면 그들 스스로 끈임 없이 주장을 해오는 논증(論證) 즉 사실(事實)에 근거해서 기록도 하고 비평도 하고 비난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 생각대로 상대 나라의 전통문화(傳統文化)와 사상(思想) 종교(宗敎)에 대해서 일방적인 비난만 하였다. 또한 게일은 “미국인들은 우상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박물관이나 성경책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았지만”이라고 하면서 마치나 당시 조선이 자신들 박물관에 박제품으로나 전시되어있고 또 자신들이 철썩 같이 믿는 성경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우상(偶像)을 당시 조선의 현실 속에서 실제 경험을 하는 수십 세기 전의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描寫)를 하고 있다. 그 속에는 단지 장승에 대한 폄훼만이 아니라 그 장승에 대해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조선인들을 마치나 수십 세기 전(前)을 사는 원시인(原始人)이요 야만인(野蠻人)이라는 오만(傲慢)함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경계(警戒)를 해야 하고 또 주의(注意)를 기울여야 할 것은 서양인(西洋人)들이 위와 같이 우리겨레의 장승에 대해서 평하는데 만 그쳤다면 그래도 우리가 그들에게 자료의 제시나 그 이론적 근거를 들어 결코 우리네 전통사상(傳統思想)이나 종교적(宗敎的) 믿음이 미신(迷信)이나 야만적(野蠻的)인 것이 아니고 역사적 전통(傳統)과 논리적(論理的) 과학성(科學性)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도 자신들의 무지(無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不幸)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럴 기회(機會)가 전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한 정확(正確)한 인식(認識)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위에 열거한 서양인들과 또 그 뒤를 이은 서양인들 특히 선교사, 학자, 교사, 의사, 사업가, 인도주의 전도사 등의 온갖 외피를 쓰고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문화가 철저하게 파괴가 되었으며 이젠 우리겨레 스스로가 자신들 조상의 문화적(文化的) 혹은 종교적(宗敎的)인 창작(創作)과 믿음에 대해 스스로 우상(偶像)이요 미신(迷信)이요 하면서 배척(排斥)을 한다는데 있다. 2) 현대 우리사회에서 장승(將丞)에 대한 인식 ㉠ 장승(將丞)의 조형성(造形性)에 대(對)하여 먼저 장승의 조형성에 대하여 보기로 한다. 장승의 조형성(造形性)에 대해서 보려는 이유는 앞선 장들과 서문형식(序文形式)의 ≪들어가며≫에서 살펴본 이방인(異邦人)들의 눈에 비친 장승의 외양(外樣) 즉 조형성(造形性)이 매우 부정적(否定的)이면서도 왜곡(歪曲)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겨레가 고찰(考察)한 장승의 조형성(造形性)은 과연 어떤 것인가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기에 굳이 장승의 조형성 내지는 미학성에 대해서 알아보려는데 있다. 물론 장승에 대해서는 미학성(美學性)이나 조형성(造形性) 보다는 장승에 담긴 사상성(思想性)과 종교적(宗敎的) 믿음성에 그 중요성(重要性)이 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장승이나 우리네 전통 예술 창작품(創作品)들에 대해 서양인(西洋人)들이 왜곡(歪曲)시킨 부정적(否定的) 인식(認識)들이 우리겨레 스스로에게 광범위(廣範圍)하게 퍼져있음은 부정(否定)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승도 예외는 아니다. 얼핏 보아 장승의 외양(外樣)이 곱게 생겼다거나 아름답게 생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장승의 외양이 선이 굵고 거친 듯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매우 섬세하면서도 해학적(諧謔的)이고 풍자적(諷刺的)이면서도 뭔지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선이 굴고 크게 담아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승의 조형적(造形的) 특징(特徵)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표현한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라고 가공(加功)을 할 줄 몰라서 또는 예쁘고 곱게 다듬을 줄 몰라서 장승을 그렇게 만들었겠는가. 결코 아니다. 장승을 얼핏 보아서 험상궂고 무섭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곁에서 함께 살아오며 항상 보아왔던 옆집 아저씨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속에는 웃음도 있고 노여움도 있으며 슬픔도 괴로움도 다 품고 있는 것이다. 즉 그 장승의 외양을 어떤 마음을 보느냐에 따라 그 모습을 각각 다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장승의 가장 큰 특징(特徵)이요 자연 그대로의 미학(美學)이요 조형성(造形性)인 것이다. “장승과 벅수는 인간 생활의 기묘한 풍류와 익살이 있으면서 어느 정도 사실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민속학술자료총서, 민속공예 장승1.민병선 성신대학교 공예학부.나무(木) 형태로 본 장승과 벅수의 형상화에 관한 연구)” 그렇다. 위에서 필자도 간단히 언급(言及)을 했듯이 우리네 장승은 바로 가공(加功)되지 않은 내 주위에 살고 있는 마음씨가 좋지만 때로는 화도 낼 줄 알고 또 때로는 슬픔도 간직하고 있으며, 괴로움도 표출하는 아저씨 혹은 아짐이(아줌마)인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장승은 바로 내 이웃들에 대해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투박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섬세(纖細)하기도 하게 자연 그대로 표현(表現)을 한 것이다. 우리네 민속신앙(民俗信仰)은 삼신사상(三神思想)이 그 핵심(核心)을 이루고 있기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사람은 귀천(貴賤)이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론 후일 후조선시기(後朝鮮時期) 들어와서 반상(班常)의 갈림이 있었지만 단군조선(檀君朝鮮) 혹은 신시시기(神市時期)에 삼신사상(三神思想)이 創作되고 그 믿음이 열정적(熱情的)으로 행해지던 시기에는 하늘 ‧ 땅 ‧ 사람 즉 천신(天神) ‧ 지신(地神) ‧ 인신(人神)이 하나라는 사상에 의해서 온 누리에 존재하는 모든 이는 그 자신이 하늘이요 땅이요 우주이기에 모두 평등(平等)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계속 강조하건데 삼신사상의 핵심(核心)은 바로 사람이 하늘이요, 하늘이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우주이기에 온 누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사상이다. 위와 같은 우리네 민속신앙에 따라 창작되고 창조된 장승 역시 온 누리에 존재하는 가장 귀중한 존재인 사람 특히 내 이웃이요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투박하면서도 꾸밈없이 장승의 외형에 형상화시켰던 것이다. 물론 장승에 우리가 믿는 믿음을 담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 믿음 역시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똑같은 성정을 지니지 않았기에 그 장승을 보는 이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형상화 시켰던 것이다. “양반이나 왕족 등 특수계층의 일시적 문화현상이 아닌 서민이나 평민계층에서 장구한 세월에 걸쳐 빚어진 민속문화인 장승과 벅수에는 신앙적 요소를 가지며 신성(神聖)이 생김으로써 제의(祭儀)가 발생하게 된다( 김두하, 장승과 벅수. 대원사. 1991. 12쪽)” 물론 상기 인용 문구에는 필자가 별로 신뢰(信賴)하지 않는 문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승이 바로 모든 백성들의 신앙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 믿음에는 신성(神性)과 제의(祭儀)가 발생을 하게 된다고 논하고 있다는 점은 공감을 한다. 상기 인용 문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수계층이나 일시적인 문화현상이 아니라 서민, 평민계층에서 장구한 세월에 철쳐 빚어진 문속문화의 틀 속에 탄생을 했다는 것이다. 굳이 왕족이나 특수계층과 서민, 평민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짓기는 하였지만 우리네 전통사상은 이분법적인 구분을 해서 나눌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이미 설명을 했듯이 우리네 모든 사상과 종교적 믿음은 삼신상에서 싹이 트고 움이 났으며 그 줄기를 통해서 가지가 돋고 잎새가 피어났기 때문이다. 모두가 하나인데 굳이 계층과 계급을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장승과 벅수의 조형미(造形美) “예술은 원시적 이미지와 본능적 감정의 샘에서 솟아나오는 모든 것과 외부세계의 현실기구로부터 뛰어 들어오는 모든 생명의 통일적 흐름 속에서 용해시키는 직능(職能)을 가진다. 암시와 상징의 힘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상상적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창조한다는 점이다(최인서. 평론집. 청운출판사. 1974. 75쪽)” 필자가 참고한 논문의 저자가 위 문장에 대해 묘사를 한 문장을 인용해보도록 하자. “장승과 벅수의 형태에 나타나는 관념은 우리의 지각적 습관에서 이룩된 것이며 굳건한 동체에 힘이 넘쳐흐르는 모습은 웅장하고도 의기 넘친 신라 무사 또는 화랑들의 무장한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민속학술자료총서, 민속공예 장승1.민병선 성신대학교 공예학부.나무(木) 형태로 본 장승과 벅수의 형상화에 관한 연구. 370쪽)” 필자가 장승에 대해서 그동안 언급한 내용과는 조금은 벗어난 듯하다. 물론 장승의 외양(外樣)에서 무사(武士)의 얼굴이나 화랑도(花郞徒)들의 비장(悲壯)함을 보았다고 한 것은 서양인(西洋人)들이 가졌던 장승의 외양에서 받은 느낌과는 글도 판이하게 다르며 긍정(肯定)을 하는 의미(意味)로 평(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긍정을 하는 것을 넘어 조금 더 연구하고 자료를 찾는데 노력을 했더라면 완벽한 논증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지난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장승의 외양은 바로 신시(神市. 밝달 나라. 검불)시대 제 16대 한웅(桓雄. 한검)이신 ≪치우 한웅(桓雄. 한검)≫을 외양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앞선 장에서도 언급했듯이 신시(神市. 밝달 나라. 검불)시대 제 16대 한웅(桓雄. 한검)이신 ≪치우 한웅(桓雄. 한검)≫은 아시아를 넘어 유럽지역에까지도 전쟁(戰爭)의 신(神)으로 각인이 되어있다. 따라서 ≪치우 한웅(桓雄. 한검)≫은 우리겨레들에게는 악(惡)과 재앙(災殃) 그리고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외적(外敵)을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신(神)으로 각인(刻印)이 되어있다. 신시(神市. 밝달 나라. 검불)시대 제 16대 한웅(桓雄. 한검)이신 ≪치우 한웅(桓雄. 한검)≫은 우리전통적인 민속신앙이나 민간신앙에서 뿐 아니라 사찰에서도 차용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기와 소위 말하는 ≪귀면와(鬼面瓦)≫는 ≪귀신(鬼神)≫을 형상화 한 것이 아니고 바로 ≪치우 한웅(桓雄. 한검)≫을 기와에 새김으로서 자신들에게 미칠 액운과 재앙 그리고 침입하는 외적을 막아주어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이었던 것이다. 장승의 외양 역시 마찬가지 이다. 장승의 외양에 ≪치우 한웅(桓雄. 한검)≫을 새겨 넣음으로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 그리고 개인적인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기원하였던 것이다. 물론 필자가 계속 강조를 하지만 우리겨레는 기원을 하면서 동시에 그 기원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실행하고자 하는 다짐 즉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 그럼 장승은 어떻게 제우고 그 형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보도록 하자. “남녀 한쌍을 세우고 머리에 관(冠)을 쓰고 벽사(辟邪)를 위하여 부릎뜬 눈과 덧니를 드러내고 전신에 붉은 색을 주토(朱土)를 칠한다. 안면 아래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만장군(萬將軍)」 등으로 표기되고 그 아래는 거리를 나타내는 리수(里數)를 표기하였다. 암벅수는 관이 없고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은 것도 있고 전신주색(全身舟色)이 보통이나 청색으로 칠한 것도 있다. 표기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으로 된 것이 보통이다(김영돈. 제주도의 석상연구. 무형문화재조사 보고서 제50호. 문화재관리국. 1968. 3쪽)” 위 인용문에 대해서는 필자가 굳이 주석(註釋)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저 조사 당시 장승의 표면에 보이는 것들만 나열한 것이 불과한 것이기에 특별히 필자가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네 장승은 위에 인용된 문구처럼 설치를 했다는 것만 알아두면 될 것이다. 장승에 대해서 계속 강조(强調)를 하고 있듯이 우리네 장승(將丞)의 예술적(藝術的) 조형성(造形性)은 바로 가공(加功)되지 않는 자연미(自然美)에 있다. 따라서 장승을 대하는 일반인들 역시 그 장승에 대해서 각기 다른 감정과 믿음을 표출(表出)하게 된다. 이게 바로 자연스러운 조형예술의 특징이요 사실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사실 예술작품들이라는 것들이 모든 이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받아들인다면 그 예술작품들은 살아있는 것이 못된다. 물론 현대 예술평론가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 일반 애호가들이나 일반인들에게 거의 강조를 넘어 강요하다시피 하는 현상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그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또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차피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이 가지는 성정(性情)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 역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감정으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장승과 벅수의 모든 자태가 서서 움직이지 않고 언제나 얼굴을 관객에게 향하고 있고 이런 부동의 자세는 초인적인 기능을 가지고 사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승과 벅수는 선과 형태의 가치를 포함하는 그대로 존재이다. 자연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며 그 생활이 자연과의 조화되어있다. 환상적인 조형물로써 그곳에는 우주관과 정신관이 재내되어 있는 까닭에 갈등과 모순은 사라지고 미적으로 완숙된 사물자체로의 감동과 연구대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민속학술자료총서, 민속공예 장승1. 민병선 성신대학교 공예학부. 나무(木) 형태로 본 장승과 벅수의 형상화에 관한 연구. 370쪽)” 필자의 해석이나 인용문을 쓴 논자나 별반 다르지 않은 해석을 하고 있다. “장승과 벅수는 선과 형태의 가치를 포함하는 그대로 존재”라고 하여 장승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게 바로 우리 조상들의 신앙(信仰)의 요체요 그 대상물에 대한 표현이다. 우리 조상들은 결코 자신들과 먼 꿈속의 세계나 서양 기독교처럼 천국과 같은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세계를 믿음의 교리로 삼지 않았으며 그 믿음을 상징(象徵)하는 대상물(對象物) 역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으며, 또 손을 대어도 무방한 설사 그것을 손상(損傷)이 된다 해도 괜찮을 다시 만들어 세우면 되는 그런 대상물을 만들어 세웠던 것이다. 결국 우리겨레는 비록 그들이 믿는 신앙의 대상물이라 할지라도 결코 사람과 달리 될 수 없으며 그 대상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결코 없게 하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자연 그대로 형상화(形象化)하면서 사람들이 그 대상물에 친숙(親熟)하게 다가 갈 수 있도록 형상화시킨 장승(將丞)인 것이다. “자연에 대한 친밀감(親密感)을 느끼게 하며 그 생활이 자연과의 조화되어있다”라고 하여 논자 역시 장승이 조형(造型) 예술적(藝術的)으로 자연적(自然的)인 면에 주안점이 주어져 있음을 논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에 공감한다. 역시 사람은 자연에 대해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친숙함과 친밀감을 가진다. 또 그 자연은 사람이 일부러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푸근하게 포용을 한다. 이게 바로 자연이며 우리는 그 자연의 모습을 따라 종교도 사상도 문화 예술도 발전을 시켜왔던 것이다. 장승이 바로 이의 표상(表象)이다. ㉢ 장승의 표현(表現)에 있어서 형태(形態) ❝ 「모든 대상은 고유한 생명과 또 거기에서부터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작용을 가진 존재이며 인간은 이 심리적인 작용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다.(칸단스키이 예술론.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권영필 역. 세화당. 1992. 64쪽) 」 항시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의 환경 속의 대상은 인간의 심성을 끊임없이 진동하게 한다. 결국 예술에 있어 대상의 선택은 인간 심상의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비롯된다. 형태는 대상의 재현이거나, 또는 공간이나 평면에 대한 순수한 추상적 구획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나 이것은 외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모든 외적인 것은 무제한의 내적인 것을 자기 내부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형태 역시 내적인 내용을 갖는다. 그러므로 형태는 내적인 내용이 외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 중략 ~ 그러므로 예술이 지닌 내적 정신의 힘은 오늘날의 형태를 이용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즉. 예술의 발전은 시대 주관적인 것에서 영원 객관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참된 예술적 비례는 산출되는 것이 아니며, 예술적 평형 또한 지성적으로 발견도리 수도 없다. 비례와 평형은 예술가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칸단스키이 예술론.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권영필 역. 세화당. 1992. 72쪽)」 ~ 중략 단련되지 않은 육체가 약하고 무력하듯 정신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 이다. 예술가의 타고난 감정은 매장되어서는 안 되는 재능으로 인간의 내적인 감정을 표현하여 형태로 상징화하는 과정은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다. (민속학술자료총서, 민속공예 장승1. 민병선 성신대학교 공예학부. 나무(木) 형태로 본 장승과 벅수의 형상화에 관한 연구. 371~372쪽) ❞ 길게 인용을 해보았다. 솔직히 중언부언 했지만 모든 예술의 표현은 사람 각자가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감성(感性)과 재능(才能)을 외적(外的)으로 형상화(形象化) 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술적(藝術的)으로 형상화(形象化)된 모든 예술작품(藝術作品)들의 외형(外形)은 그 예술작품(藝術作品)을 만들어낸 예술가(藝術家)가 가지고 있는 내적(內的) 혼(魂)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위에 인용을 한 것은 순수(純粹) 예술론(藝術論)이다. 더 정확(正確)하게는 조형(造形) 예술론을 원론적(原論的)으로 거론한 것이다. 장승에 대하여 논증을 하다가 뜬금없이 조형 예술에 대하여 원론적인 것을 거론하는 이유는 우리가 장승을 어떻게 볼 것인지 그 외형이 과연 서양인들이 바라보듯 그렇게 원시적(原始的)이고 미개(未開)하며 야만적(野蠻的)인지 아니면 그 장승이 담고 있는 내적인 신앙(信仰)의 대상 그리고 그 신앙을 담아낸 장승의 외적인 형상은 결코 원시적(原始的)인 것도 아니고 야만적(野蠻的)인 것도 아니며, 미개(未開)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논증(論證)하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장승에 대한 우리겨레의 내적 믿음의 대상을 예술적(藝術的) 활동(活動)의 일환으로서 외적(外的)으로 형상화(形象化)된 외형(外形)은 결코 서양인(西洋人)들이 그렇게도 폄훼(貶毁)를 한 것처럼 원시적(原始的)이고 미개(未開)한 것이 아니며, 야만적(野蠻的)인 것도 아니다. 그건 위 예술론에서도 나오듯이 모든 예술 특히 조형(造形) 예술작품(藝術作品)들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내면(內面)에 존재(存在)하는 숭고(崇高)한 믿음의 세계를 외적(外的)으로 형상화(形象化) 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의 믿음은 바로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삼신교(三神敎)의 교리(敎理)에 의해서 創作이 되었고 또 그로부터 誕生한 것이“하늘이 곧 사람이요, 땅이 곧 사람이요, 사람은 곧 하늘과 땅 그리고 온 우주다”라는 사상과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탄생을 한 것이 오제론(五帝論)이요 오제론을 외적(外的)으로 형상화(形象化) 시킨 것이 바로 장승(將丞)이다. 결국 우리 겨레가 믿어온 삼신사상(三神思想)과 삼신교(三神敎)의 교리(敎理)에 의해서 創作이 되었고 또 그로부터 탄생(誕生)한 것이“하늘이 곧 사람이요, 땅이 곧 사람이요, 사람은 곧 하늘과 땅 그리고 온 우주다”라는 사상(思想)과 종교적(宗敎的) 믿음은 결국 ≪사람과 대자연(大自然)이 하나다≫라는 것이다. 이런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믿음의 대상물로 세운 장승 역시 자연 그대로 가감(加減) 없이 외적(外的)으로 소박하고도 투박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표현을 한 것이며, 또한 사람이 쉽게, 언제든지 접근을 해서 늘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하고 기원을 하며, 자신들이 기원하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혹은 자신의 집단속 사람들과 함께 꼭 이루리라는 맹세를 할 수 있는 장소에 장승을 세워두었다. 서양식으로 표현하는 예술론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우리네 장승은 결코 원시적이며, 야만적이며, 미개한 작품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차원이 더 높고 수준이 높은 조형 예술작품인 것이다. 여기서 잠시 민속학자인 주강헌의 솟대에 대한 글을 잠시 보도록 하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실어준다. 필자가 그 장소에 직접 가보지 못하였기에 전문을 올려주니 이해를 바란다. 주강헌의 우리문화기행 중 “풀어낸 비밀 속의 우리문화2. 259~260쪽”에서 인용. ❝ 730번 도로의 끝. 운봉에 도착한다. 여기서는 또 다른 마을주인이 기다리고 있다. 운봉의 소문난 장승들이다. 운봉에는 장승이 여러 기 있을뿐더러 조형성도 뛰어나다. 전국에 가장 얼굴이 많이 팔린 것은 서천리 서하동의 장승이 아닐까. 남원에서 운봉으로 들어오는 길목 당산거리에 방어대장군과 진서대장군이 마주본다. 방어대장군은 깔대기형 모자에 퉁방울눈, 콧방울이 좌우로 넓게 벌어졌고, 입술은 일자형으로 다물었다. 진서대장군도 모자는 깔대기형이고, 퉁방울눈 안에 눈동자를 이중으로 새겼으며, 벌어진 입숙 사이로 치아 5개를 양각하였다. 여지없는 조선후기 양식이다. 북천리 것은 동방귀축장군과 서방귀축장군이다. 나는 동방귀축장군을 볼 때마다 눈을 부릅뜬 농민군 얼굴이 떠오른다. 머리 상부에 상투와 흡사한 돌출물이 솟아 있고 눈꼬리는 다소 위로 올라갔다. 갓을 쓰고 폼을 잡고 있는 장승과 달리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맨상투 바람에 달려나온 농민군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웃 권포리에도 도합 4기의 석장승이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2기가 마주보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서 2기가 또 있다. 운봉을 비롯한 남원 일대가 석장승문화권임을 보여준다. 민중적 조형물로서 장승을 바라볼 때, 재질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장승의 수명이 오래 가기로는 역시 돌장승, 특히나 전라도와 경상도에 산재하는 벅수라고 불리는 석장승들은 그 뛰어난 조형성과 유구한 역사성으로 인하여 높이 평가받는다. 조선 후기의 장승이라고 정확히 지칭할 수 있는 증거물들이 바로 이들 석장승에서 확인된다. 돌이 지닌 특유의 질감과 내구성, 세월이 지나면서 풍상에 씻긴 형태, 연륜이 쌓인 이끼에서 완숙해질 대로 무르익은 장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솜씨 좋은 장인은 바로 당대 민중이었던 셈이다. 이들 장승의 민중적 조형성은 바로 민중적 미의식의 압권으로 그 자체 “토종 조선사람”의 얼굴이자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 위에 예를 든 주강헌의 “우리문화 기행 중 ≪풀어낸 비밀 속의 우리문화2≫에서 남원지역의 장승”에 대해서 저자(著者)도 논(論)하듯이 우리겨레의 예술(藝術) 세계(世界)는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表現)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표현의 기법(技法)은 바로 예술작품(藝術作品)을 만드는 작가(作家) 자신(自身)이요, 그의 주위(周圍)에 울고 웃고, 슬퍼하며, 분노도 하는 그런 일반적(一般的)인 사람들의 넋을 작가(作家)가 그의 작품(作品)에 불어넣는다는 것이 특징(特徵)이다. “눈을 부릅뜬 농민군 얼굴이 떠오른다. 머리 상부에 상투와 흡사한 돌출물이 솟아 있고 눈꼬리는 다소 위로 올라갔다. 갓을 쓰고 폼을 잡고 있는 장승과 달리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맨상투 바람에 달려나온 농민군의 모습이라고나 할까”라는 표현은 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그 장승의 외양을 보면서 “≪농민군 얼굴≫이 떠오른다”고 하였지만 장승을 보는 이가 작가 주강헌이 아니고 또 다른 이 즉 그가 현시대(現時代)의 노동자(勞動者)였다면 아마도 그는 “노동자(勞動者)”의 고달픈 모습과 또 그 삶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겨레의 예술작품의 세계는 특정한 이 또는 ≪특정계층≫의 ≪특별한 면(面)≫만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고 이 땅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얼과 넋을 그 예술작품에 불어넣는다. ≪장승(將丞)≫을 만들어내는 과정(過程) 역시 같다. 따라서 우리네 장승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의 얼과 넋을 불어넣은 령적(靈的) 표현(表現)의 대상으로서의 조형물(造形物)이다. 굳이 예술작품(藝術作品)으로 규정(規定)을 하면 예술작품(藝術作品)이 된다. 하지만 필자는 굳이 ≪장승(將丞)≫을 예술작품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예술작품으로 규정하는 순간 ≪장승(將丞)≫은 또 다른 울타리 속으로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산재하는 벅수라고 불리는 석장승들은 그 뛰어난 조형성과 유구한 역사성으로 인하여 높이 평가받는다”라고 하여 우리가 전 장에서 본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본 장승에 대한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가 있다. 필자가 강조하듯이 어떤 대상물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그 대상물(對象物)이 탄생(誕生)하게 되는 배경(背景)과 그 대상물을 만들어내는 집단(集團)의 의식(意識)이 과연 무엇인가를 아는가 모르는가에 따라서 그 대상물(對象物)에 대한 평가(評價) 또한 180도 다르게 나온다. 작가 주강헌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의 석장승(石將丞)들에 대해 “뛰어난 조형성과 유구한 역사성으로 인하여 높이 평가 받는다”라고 하였지만 똑같은 대상물인 ≪장승(將丞)≫을 본 서양인들은 무섭다거나 미개(未開)하다거나 원시적(原始的)인 것이라고 평(評)을 한다. 즉 서양인상징성(西洋人)들의 눈에 비친 ≪장승(將丞)≫은 그다지 예술적(藝術的)이지도 않고 또 어떤 상징성(象徵性)을 담아내는 조형물(造形物)이라고도 평가(平家)를 하지 않는다. 그건 위에서도 언급(言及)을 했지만 그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집단 내지는 사회(社會)의 얼과 넋이 생성(生成)되어 발전(發展)되어온 과정(過程)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誤解)와 편견(偏見)으로 인하여 빚어지는 현상(現像)일 뿐이다. “연륜이 쌓인 이끼에서 완숙해질 대로 무르익은 장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솜씨 좋은 장인은 바로 당대 민중이었던 셈이다. 이들 장승의 민중적 조형성은 바로 민중적 미의식의 압권으로 그 자체 “토종 조선사람”의 얼굴이자 시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이라고 하여 작가 역시 작가 자신이 배달겨레 이외의 다른 종족일 수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표현이다. 특히 작가가 남원지역의 석장승(石將丞)을 보면서 받은 감동(感動)은 그 석장승들이 곧 당대를 사는 민중(民衆)의 얼굴을 형상화(形象化) 했다고 하는 데에서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는 그 석장승을 만들어낸 작가가 당대의 민중들의 즉 조선인(朝鮮人)의 얼과 넋을 자신이 제작(製作)하는 석장승들에 완벽하게 불어넣어주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3) 우리겨레의 예술창작 기법 그럼 우리겨레가 창작(創作)하고 창조(創造)해낸 삼신사상(三神思想) ‧ 삼신교교리(三神敎敎理)에 의해서 탄생된 오제론(五帝論) 그리고 그 오제론을 구체화(具體化)시켜주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드러내는 형상적(形相的) 조형물인 ≪장승(將丞)≫은 어찌하여 꾸밈이 없는 우리겨레의 일반적인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는지 우리겨레의 예술적(藝術的) 토대(土臺)를 살펴보기로 한다. 1) 꾸밈없는 자연미(自然美)의 표현(表現) ㉠ 단순미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는 1929년 사상 최초로 한국 미술에 관한 책(「한국 미술사」)을 출간하였다.(Andreas Eckardt, Geshichte der koeanischen Kunst. Leipzig. 1929) 에카르트는 이 책에서 한국미의 특성을 잘 나타내었다. 에카르트는 중국, 일본, 한국 미술에 나타나는 각각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중국의 미술은 과장과 왜곡된 미술형식을 표방한다. 일본의 미술은 감정에 치우쳐 있고 틀에 박힌 미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 민족은 고전미를 추구한다. 중국의 전족(纏足- 여성을 발을 크지 않게 하려고 어려서부터 신기는 아주 작은 신발)과 일본의 분재(분재)와 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를 미의 이상으로 삼지 않고, “미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권영필,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미술사관, 「미술사학보」 제4집, 미술사학연구회, 17쪽). 결국 에카르트가 본 동양 3국의 미술의 특징은 중국의 과장과 왜곡, 일본의 감정에 치우친 틀에 박힌 미의 세계이지만 한국의 미술은 고전미를 추구하고 과장과 왜곡이 없다는 말로 된다. 또 한국미술은 일본의 틀에 박힌 정형성과도 거리가 먼 자유분방하고 무한대의 표현의 세계를 가졌다고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미술의 특징은 과장도 왜곡도 없고 틀에 박힌 것도 없는 고전미 즉 자연스러운 표현은 곧 단순미와 소박성을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또 이 단순미와 소박성은 달리 표현하면 단아한 예술적 특성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미술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을 만드는데도 적용이 된다. 특히나 우리겨레의 전통 옷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단아하고 선이 부드러우면서도 자세히 보면 화려하기까지 한 우리의 전통 옷은 오랫동안 옷을 다루어왔던 필자가 보기에 지구상의 옷 가운데에 최고의 옷이다. ㉡ 기교(技巧)를 부리지 않는 기교의 극치(極致) 우리겨레의 미학사상은 특별히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선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반면 기교를 부리지 않고 단순한 듯한 예술적 기교는 매우 쉬워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막상 우리네 전통 예술작품을 창작하려는 이민족이 있다면 그야말로 그 예술적 기법은 난해하기 그지없다. 즉 대자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늘상 접해오고 또 그 속에서 살아와서 너무나도 단순한 듯하다. 하지만 막상 그 대자연속으로 들어가서 해부를 하려고 하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소박하고 또 기교가 없는 듯 하지만 기교의 극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겨레의 예술혼이다. “ 고유섭의 미학의 중심개념은 1940년과 1941년에 발표한 「조선 고대 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 문제」에서 논의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다.)고유섭(1963), 조선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 「韓國美術史及 美學論, 통문관, 3~13쪽) 위 고유섭의 미학(美學)의 중심개념에서 보듯이 조선 아니 우리겨레의 미학(美學)의 개념(槪念)은 특별(特別)하게 기교(技巧)를 부리지 않는 듯하다. 또 자신들이 형상(形象)하고자 하는 작품(作品)들에 대해서 그다지 특별히 계획(計劃)을 잡고 하지 않는 듯하다. 이는 대개 일반인들이 인식(認識)하는 우리의 미술세계나 미학(美學)의 세계(世界)는 그다지 예술성(藝術性)이 없다고 보는 것과 일치(一致)한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우리겨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상에 대해서 무지하던 시절에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얼핏 보기에 도대체가 너무나도 단순하다. 또한 섬세(纖細)하지 못하고 화려(華麗)하지가 않아보였다. 따라서 우리겨레의 전통 예술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제는 우리겨레가 창작(創作)했던 작품(作品)들을 보는 눈이 달라지다 보니 그동안 우리겨레의 미학(美學)에 대해 무지(無知)했던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과장이 아니고 필자가 받아들이는 우리겨레가 창작(創作)한 예술작품(藝術作品)은 지구상 그 어느 민족(民族) 그 어느 나라가 창작(創作)한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필자 역시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녀왔고 또 그 나라들의 전통건축물(傳統建築物)들이나 조각(彫刻) 작품(作品)들 그리고 회화작품(繪畫作品)들을 보았다. 이민족의 작품들은 대개 처음 보는 순간 대단히 화려하고 섬세하게 보인다. 또 그 복잡성 얼마나 대단한지 기가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서 약간만 감상하기 시작하면 처음 느꼈던 화려함은 사라지고 만다. 또 섬세함 역시 반복적인 선과 면 그리고 입체성으로 하여 그다지 감상을 할 기분이 사라진다. 또 복잡하리라고 여겼던 복잡성 역시 매우 단순해진다. 반면 우리겨레가 창작한 건축물들이나 회화작품 그리고 조각들은 처음 보면 무척 단순하고 소박하며 초라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우리의 전통 건축물을 처음 보는 순간 그다지 예술성이 없어 보인다. 또 화려하지 않고 단순해 보여 드러내놓고 예술작품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겨레가 창작한 작품의 세계로 들어가서 감상하기 시작하면 그 화려함과 복잡함 그리고 예술성은 끝이 없다. 건축물에 있는 문(門)을 장식(裝飾)하고 있는 문살 하나하나 또 그 문에 가해진 조형예술 하나하나 셀 수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복잡하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 조각상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이 점이 바로 우리겨레의 미술작품의 세계의 특징이다. 즉 자연그대로 꾸미지 않은 듯하면서 꾸며지고 화려하지 않은 듯 하면서 화려한 작품의 세계가 바로 우리겨레의 미학의 세계이다. 이는 다른데 있지 않고 단순성, 무기교성, 무계획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단순성, 무기교성, 무계획성이라고 하니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오해는 하지말기 바란다. 우리겨레의 예술혼 미학성은 진정한 무기교가 아니요, 무계획이 아니요 단순성이 아니다. 극치의 기교와 복잡성 그리고 계획성이 존재를 한다. 그건 곧 자연 그대로의 예술적 세계관과 미학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 순리(順理), 해학(諧謔), 익살, 풍자(諷刺) 우리겨레의 예술혼 가운데 순리, 해학, 익살, 풍자는 빼 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징이다. 최순우는 우리의 예술적 특성 가운데 순리(順理)와 익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을 하였다. ❝ 순리의 아름다움이란 억지가 없는 아름다운 사물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아름다움의 자세를 뜻하는 말이며, 익살의 아름다움은 한국의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모든 분아에 흔히 느껴지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 익살스런 표현은 민중적인 경향으로 표현된 조선 시대의 도자기, 민화, 자수 등에서 더 자주 다루어 졌고, 그런 경우 그 효능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사물 표현에서 대담한 생략과 왜곡과 과장을 자연스럽게 다룬 솜씨와 둥근 것이 지니는 좌우 대칭에 대한 무신경, 그리고 이지러진 둥근 맛이 주는 공간미 등은 한국 공예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익살의 세계이다. 또한 한국 미술이 풍겨주는 맵시나 색감이나 공간 구성은 모두 수수하며 소박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과분하지 않고 자연 환경이나 자신의 체도(體度)에 가장 알맞은 형질미(形質美)를 가늠할 줄 아는 분수에 맞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그 표현의 본성이 허욕을 금기하는 자연스러운 몸짓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관조적인 자세에서 근시안적으로 코 앞에다가 놓고 보는 것보다 물러서서 바라볼 대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바라보아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에 지나친 잔재주를 부릴 필요도, 분에 안 맞는 과분한 재질도, 필요 없는 수고도 저절로 생략될 수 있다. 특히 우리 미술의 단순미 간소미(簡素美)라는 점에서 이 말이 뒷받침된다.(최정우. 1993. 「분谷 崔淳雨」 제1권. 학고재. 41~46쪽) ❞ 길게 인용을 하였지만 최순우의 우리겨레의 예술작품에 반영하는 특징은 왜곡하지 않고 순리대로 흐르는 그대로 표현을 하는 것이며, 또 그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 자신 혹은 주위 사람들의 익살스러움을 자신이 창작하는 작품에 반영을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람 그대로의 모습과 같은 작가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얼과 넋을 자연스레 불어넣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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