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TV, 거짓과 진실, 그리고 헛소리 3
- 11월 26일 방송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하여
강진욱 <1983 버마> 저자 / 2020.12
3. 13대 대선의 의미도 모르면서!
KAL 사건은 불과 다섯 달 전 뜨거웠던 6월항쟁의 열기를 삽시간에 앗아가 버렸다. 6월항쟁으로 쟁취했다는 대통령 직선제는, 6월항쟁 당일(6.10)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를 위한 정치 쇼가 됐다. ‘죽 쒀 개 줬다’고들 했다. 필자가 살던 동네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아주머니의 짙은 한숨을 기억한다. 한 교수도 13대 대선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한열 군을 떠나보내면서 6월항쟁을 ... 6월항쟁의 성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 ... KAL 858기 사건이 일어난 때는 직선제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 <1987> 영화 모두들 기억하실 텐데 ... 12월 16일 선거를 채 20일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대형사고가 터졌죠.]
(대선 후보 4인)
[근데 .. 인제 ...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고 민주 진영 후보가 패배한 것은 ... 어 .. 전 그렇게 봅니다 .. 이게[KAL 사건이 13대 대선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지만 ..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 설혹 이런 변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 우리가 단일화 돼 있었라면 ... 지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이 .. ‘북풍 공작’ ... 아, 북풍공작이라는 표현은 좀 ... 하여튼 뭐 ... 북한의 안보와 관련된 초대형 이슈가 터졌는데 .. 이 이슈가 선거 결과를 뒤바꾸는 .. 데 .. 상당히 영향 .. 뭐 뒤바꿨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을랑가 모르겠습니다 ... 적어도.. 노태우의 당선에 양 김의 분열과 더불어서 아주 .. 엄청나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을 한 것이죠.]
(김현희 압송. 1987.12.15 조선일보)
[그러니까 이제 .. (마유미(김현희)가 서울에) 선거 전날(12월 15일) 도착을 하니까 .. 어마어마한 변수가 작용을 한 거죠 .. 그래서 .. 이게 선거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 사람들이 대단히 궁금해 했는데 ...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 ... 200만 표 차로 압승을 했습니다. .. 그 전까지는 누가 당선될지 정말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 진보 진영이나 ... 뭐.. 아직 .. 진보란 말을 쓰기가 좀 그런가요? ... 민주 개혁 진영 .. 민주 개혁 진영에서는 .. 불안했지요, 양 김이 분열돼 있기 때문에 .. 그런데도 .. 6월항쟁의 열기가 있기 때문에 .. ‘아니야 .. 그래도 민주 진영의 ... 김대중이나 김영삼이 (노태우를) 꺾을 거야 ... 누가 1등을 할지는 몰르겠지만, 노태우가 2등을 할 거고 ... 1등과 3등은 김영삼과 김대중 둘 중에서 ... 갈릴 거야.’ .. 그렇게들 예상을 많이 했었는데 .. 노태우가 1등을 했습니다 ... 개표를 해 보니까 압도적으로 ... 압도적이라는 표현까지는 좀 그렇지만 .. 여유 있게 ... 개표 초반부터 쭉 노태우가 앞서가면서 ... 여유 있게 승리를 했는데 .. 그렇게 선거 결과가 나온 데는 .. 이 마유미의 등장 ... 선거 전날 마유미가 ... 그 .. 나타났다는 ... 이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 고 사람들이 그렇게들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뭐라고 얘기를 했느냐면 .. 마유미 .. 김현희가 한국에 온 게 200만표 짜리다 ...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 그리고 ...선거는 이렇게 끝나버렸죠.]
(노태우 승리)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 선거와 KAL 858 사건은 함께 논하는 것은 당연하다(최소 몇 년 전, 이 선거일에 맞춘 어떤 각본이 짜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적 맥락을 모두 소거(消去)시킨 채 12월 16일 선거와 11월 29일 사건을 독립된 두 개 점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보면 13대 대선은 전두환이 육사 11기 동기이자 ‘절친’인 노태우에게 자리를 물려준 정치행사일 뿐이다. ‘양 김 씨’가 서로 잘났다고 싸워 표가 갈렸고, 거기다 북한이 테러를 저질러 노태우 당선을 도운 것이고. 한 교수의 장황한 해설은 이렇게 요약된다.
전두환과 노태우 둘은 친구가 맞지만, 13대 대선을 논하는 역사학자가 그렇게만 봐서야 되나. 둘은 1958년과 1960년 두 차례나 미국 정부 초청으로 군사유학을 다녀온 ‘미국의 자산’(asset)이었다. 그것도 매우 값진 자산! 4.19(1960) 후 몇 달 뒤 미국에서 돌아온 전두환과 노태우는 또 몇 달 뒤 일어난 5.16 쿠데타(1961) 때부터 박정희 권력의의 핵심으로 키워졌다.
( 전두환과 노태우 미 군사유학 시절 모습)
미국은 이 대륙 저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라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보여주며 친미 엘리트를, 특히 군부 엘리트들을 집중 양성했다. 그렇게 키워진 자들을 해당 국가 요직에 앉혀 그 나라들을 대리 통치해 왔다. 특히 남한은 여타 아시아.중남미 국가들에 비해 미국에 유학한 군부 엘리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이에 관한 한 교수의 유튜브 강연이 있으니 참조하시라). 남한에서 미국이 키운 밀리터리 보이(military boy) 셋이(박정희.전두환.노태우) 연달아 대통령이 된 것이 우연이겠나.
전두환이 별을 단 직후(전두환은 1973년 1월, 노태우는 1974년 1월 승진했다), 육사 11기의 선두주자였고 하나회 창설 멤버였던 손영길 준장이 ‘윤필용 사건’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육사 11기 선두주자’ 자리가 전두환에게 넘어가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나란히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와 행정차장보로 들어가고(1976.12), 박정희가 살해되기 6개월 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에 임명돼 유사시 입법.사법.행정권을 장악할 준비를 한 것이 우연이겠나(아니면 박정희가 전두환과 노태우를 각별이 아껴서였을까).
(전두환 1사단장이 제3땅굴을 발견했다며 존 베시 주한미군사령관이 함께 사진을 찍고(1978.10.17), 1979년 3월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 된 지 두 달 뒤 5.16 민족상을 받는 장면이 신문에 실리면서 전두환의 이름과 얼굴이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다섯 달 뒤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다. 이 모든 일이 전두환의 운이 좋아서 벌어진 일일까.)
미국은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든 뒤 남한을 동북아 전략의 교두보 삼아 소련과 북한을 벼랑 끝으로 몰았고, 이후에도 고강도 압박 전술을 계속하기 위해 자신들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군부 꼭두각시가 또 필요했을 것이다.
1983년 9월 1일 소련 군사시설 정찰 목적으로 대한항공 여객기 KAL 007편을 소련 영공에 들이밀어 승객 269명을 무주고혼으로 보낸 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소 공격의 고삐를 더 죄어야 했다. 1979년 말 소련을 아프간 내전에 끌어들인 미국은 1980년 레이건 정권 출범 이후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지출하며 소련을 압박해 왔다. 그 와중에 1985년 고르바쵸프라는 서방친화적 인물을 서기장(최고 지도자)으로 선출한 소련은 정치.경제적으로 서서히 자중지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1986.7.25 경향신문)
미국은 군사비를 계속 늘리면서 계속 압박하면 소련은 곧 내파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실제로 그렇게 됐다). KAL 858기 사건을 등에 업고 탄생한 노태우 정권은 동구권 각국에 혈세를 퍼주며 ‘북방정책’을 추진해 동구권과 소련 해체를 앞당겼다(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북방정책의 ‘부수효과’(side-effect)였다. 이를 두고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는 미국의 대소봉쇄라는 큰 틀을 간과한 소치다).
미국은 대소 공세의 고삐와 대북 공세의 고삐 둘을 양 손에 쥐고 있었다. 4년 전인 1983년 ‘버마에서의 1차 테러’(아웅 산 묘소 폭파)를 조작한 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다 실패한 터. 또 한 번의 ‘북괴의 테러’를 조작해 테러지원국의 낙인을 찍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전두환 정권이 연장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전두환의 분신’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기는 차선책도 나쁘지 않았다(노태우가 차기 대통령으로 점지된 시점은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82년 7월 수도경비사령관에서 예편한 뒤 곧바로 정무2장관이 된 때를 넘지 않을 것이다).
[강조]이처럼 미국이 대소.대북 봉쇄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남한의 군사 독재체제를 연장해 한반도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려 할 때 일어난 사건이 바로 KAL 858기 폭파 테러다.[강조] 이 사건 직후 미국은 마침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데 성공한다(1988.1). ‘버마에서의 1차 테러’를 조작한 뒤 하려다 못 한 것을 4년 뒤 ‘버마에서의 2차 테러’를 조작하고 그 책임을 북한에 뒤집어씌움으로써 마침내 북미 적대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KAL 858 폭파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의 이런 대소대북 적대전략에 적극 편승해 남한에 또 한 번의 군사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만들고, 남한 주민들을 상대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러 대북 적대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는 말이다. 헛소리! 또, 북한은 한 번의 테러(아웅 산 묘소 폭파)로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지정을 받지 못하자 재차 테러를 저질러 마침내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의 ‘영예’(?)를 획득했다는 말이다. 이것도 헛소리!
이렇게 헛소리를 남발하던 한 교수는 결국 13대 대선을 목전에 두고 왜 북한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를 자문하다 스스로 미궁에 빠지고 만다.
[저는 ... 저는 참 이상해요 ... 아직도 ... 아직도 제대로 100% 이해를 못 하는 게 ... 그래도 남쪽에서 ... 선거에서 민주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북한이 왜 저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왜 저런 몰상식한 짓을 했을까? ...88올림픽을 방해할려고 한 거는 맞는 거 같은데 ... 사실 그랬거든요, 김대중이나 김영삼이가 등장을 하며는요 ... 88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 ... 북한에 크∼은 유화책을 쓰고, 북한과 공동개최는 아니더라도 북한 선수단을 초청하고 .. 우대하고 .. 몇 개 종목은 북한에 줬을 겁니다. 그런데 왜 ... 김영삼.김대중이 당선되는 그런 상황을 돕질 않고 ... 그리고 테러를 해도 노태우가 당선된 다음에 한 게 아니고 선거 직전에 이렇게 했는지는 ... 그거는 정말 ... ]
그 역시 자신의 논설(論說)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그의 말은 요설(妖說)이 된다.
[북한에서도 닭을 많이 키운다. 닭대가리 가진 놈들이 정권에 정부에 있게 마련이고, 그런 놈들이 의사 결정을 해서 남북관계나 남쪽의 선거를 망쳐버렸다. 물론 우리의 힘이 컸다면, 우리가 단결돼 있었다면 북한이 저런 닭...짓을 해도 우리 민주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겠죠.]
한 교수가 이처럼 자신이 만든 오류의 미로를 헤매다 오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박학다식이 역사의 맥락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편에서 논했던 바로 그 ‘맥락’의 문제다. 한 예로, 한 교수는 미국이 세계 각국 군사엘리트들을 키웠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군사유학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미국 군사유학을 다녀왔다는 단편적 사실만 알 뿐, 미국의 필요에 의해 그 둘이 13대 대선에서 바통을 주고받았다는 (받도록 돼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1980년대 후반 미국이 소련과 북한을 각각 ‘악의 제국’ ‘테러지원국’으로 낙인하기 위해 얼마나 안달복달 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1983년 9월 1일 KAL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다 격추되고(소련은 ‘악마의 제국’으로 낙인되고), 3주 뒤 대구 미국문화원 문 앞에서 폭탄이 터져 고교생 1명이 숨지고(곧바로 ‘북괴의 사주에 의한 테러’라는 선전전이 개시되고), 또 그로부터 불과 18일 뒤 버마의 성지(聖地)에서 폭탄이 터져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낙인하려 했고, 그로부터 4년 뒤 다시 버마에서 또 다른 테러 사건이 일어나 결국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낙인된다는 사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무엇을 뜻하는지 해석할 능력이 없기에, ‘소련이 KAL기에 미사일을 쏘는 만행을 저질렀고 북한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미국과 전두환 정권의 선전선동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러니 13대 대선과 김현희 사건의 내막이 보일 리 없고, 그저 양 김 씨가 단일화를 못 한데다 ‘이북의 닭짓이 가세해 민주정권을 창출하지 못해 유감스럽다’, ‘그런데 이북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다’고 희떠운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4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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