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우주 강국이 되려면 올드 스페이스에서 뉴 스페이스로의 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 올해 3월27일자 헤럴드경제 기사의 한 대목이다. 최신 시사용어에 어두운 독자라면 혹자는 ‘오래된 우주에서 새로운 우주로 나아간다는 뜻인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또는 올드(old)가 뉴(new)보다는 확실히 과거이니 어쨌든 뉴 스페이스로 전환한다는 것은 일단 좋은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도 있겠다.
독자가 다음으로 ‘서울대서 <오픈 스페이스 계획과 설계>에 대한 학생 발표회 예정’이란 기사 제목을 읽었다고 가정해 보자. ‘열린 우주?’ ‘열린 공간?’ ‘오픈 스페이스’란 단어를 본 순간 분명 쉬운 영어 단어의 조합임에도 무슨 뜻인지 명확히 쉽게 와 닿지 않아 다양한 유추를 거듭하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정답을 공개하자면 올드 스페이스(old space)는 정부가 주도하는 우주 개발을 뜻하며 뉴 스페이스(new space)는 민간이 주도하는 우주 개발을 의미한다. 반면 오픈 스페이스(open space)는 열린 쉼터를 의미한다. 도시계획에서 사람들에게 놀이 활동을 하게 하거나 마음의 편안함을 줄 목적으로 마련한 공간을 말한다. 즉 우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국어원)은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1~11월 사이 22차례 전문가 논의와 국민 수용도 조사를 거쳐 46개의 외국어 용어를 다듬었다. 이 중 올해 가장 적절하게 다듬은 우리말로 ‘열린 쉼터’가 손꼽혔다. 하나의 영단어도 다양한 뜻을 내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전문용어라도 때론 정확한 우리말로 대체하는 것이 더 명확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금융·경제 용어에는 유독 영어 표현이 많다. 특히 신산업이 등장하거나 신기술이 떠오르면 기존의 영어로 된 용어를 조합하거나 축약한 파생어가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경제 뉴스에 등장하는 어려운 영어 표현을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자는 주장이 항상 제기된다.
최근 경제 분야에서 많이 거론된 용어들 중에는 킹달러(달러 초강세)·에스크로 시스템(안전결제 시스템)·빅테크(IT대기업)·핀테크(금융기술) 등과 같은 영어식 표현이 정말 많다. 괄호 안의 표현은 MBC 아나운서국 우리말위원회에서 권고하는 한글로 풀어쓴 우리말이다. 위의 용어들은 원어를 제시한 뒤 우리말 뜻을 함께 기재하는 게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도한 우리말 전환이 오히려 본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올해 들어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마다 한국도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며 경제 상황을 예의 주시해 오고 있다. 금리를 0.25%p 인상 또는 인하할 때는 ‘베이비 스텝’이라고 하고, 0.5%p 인상·인하는 ‘빅 스텝’, 0.75%p 인상·인하는 ‘자이언트 스텝’이라고 한다. 국어원 새말모임에서는 위 대상어를 다듬은 말로 각각 ‘소폭 조정’ ‘대폭 조정’ ‘광폭 조정’을 제시했다.
사실 ‘베이비 스텝’ ‘빅 스텝’ ‘자이언트 스텝’이란 용어는 미국의 공식 경제부처나 현지 언론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며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다. 사실상 원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용어인데 그것이 영어라고 해서 또다시 우리말로 다듬은 것이다. 그나마 경제계와 언론에서 관행적으로 써 오던 것을 한글로만 소폭·대폭·광폭 조정으로 표기한다면 본질적인 내용이나 그 중요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혼란을 줄 우려가 있다.
2020년 공식 출범한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국어 표현을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대체어를 연구·선정하는 위원회다. 대학교수·번역가·언론인·시민단체 등 각계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국민이 정보 습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전문용어나 외래어를 쉬운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을 담당해 오며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외래어 남용을 경계하기 위해 우리말 표기 연구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때론 과도한 우리말 전환이 해석의 오류를 낳을 수 있기에 더욱 세심한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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